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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TV에 나가 이혼 고백한 ‘부부의 날 대상’ 부인

중앙일보 2020.08.28 13:00

[더,오래] 박혜은의 님과 남 (82)

올해 세계 부부의 날 '일반인 부부 대상'을 받은 부부가 있습니다. 동갑내기 부부로 30년의 세월을 함께 살아온 노태권·최원숙 부부가 그 주인공입니다. 부부의 날 대상 상장에서도 ‘바보온달 남편과 평강공주 아내’로 불린 것처럼 부부가 대상의 주인공으로 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아내의 노력이 컸습니다.
 
결혼 후 신혼여행을 떠난 자리에서 자신의 난독증을 고백했던 남편, 그땐 연민의 정이 있었고 어떻게든 정상적인 생활을 하도록 만들어야 했기에 기꺼이 평강공주가 되기로 마음먹고 살아왔다는 아내. 집을 계약할 때도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해 크게 손해를 봤던 일과 숫자를 잘못 읽어 간단한 은행업무도 어려웠기 때문에 모든 일상에 아내가 동행해야만 했습니다.
 
결혼 30주년에 부부의날 대상까지 받은 올해 아내는 눈 맞춤을 통해 그동안 못한 말을 나누는 TV 프로그램에 남편을 초대합니다. 아내의 눈 맞춤 초대로 스튜디오에 도착한 남편은 특별한 이유는 없는 것 같고 결혼 30년이 되었으니 부른 것이 아니겠냐며 사람 좋은 미소를 선보입니다.
 
그리고는 아내가 짐승을 사람으로 만들어 준 것이라며 난독증으로 글을 읽지 못해 중학교 졸업에서 멈춘 학력에, 17살부터 공사장 막노동을 하며 알코올 중독에 빠졌던 밑바닥 인생을 고백합니다. 그러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만은 없지 않겠냐는 아내의 권유로 43살에 글자 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되고, 2006년 수능 모의고사에서 7번 연속으로 만점을 받으며 ‘공부의 신’으로 거듭나게 되죠.
 
자신감을 얻는 남편은 아들 둘을 직접 가르쳐 국내 최고의 명문대에 입학시키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게임중독으로 둘째는 게임과 더불어 심한 아토피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중학교 졸업에서 학력이 멈춘 상태였기에 더 화제가 되었죠.
 
이 긴 시간 동안 남편의 글공부부터 경제 활동까지 온통 아내가 그 몫을 해내야 했습니다. 옆에서 들여다보지 않아도 짐작되는, 아내의 희생과 노력 없이는 힘들었을 과정입니다.
 
블라인드가 열리고 자신이 아주 애처가이고 아내를 지극히 사랑한다는 남편은 설레는 마음, 애정 가득한 표정으로 아내를 바라봅니다. 하지만 고백할 게 있다고 말을 꺼낸 아내는 그게 바로 이혼 고백이라고 말합니다.
 
아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혼 선언이었습니다. 아내는 정말 중요한 것은 앞으로 인생이라며 남편을 보필하느라 못한 일을 이제는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사진 채널A '아이콘탠트' 캡처]

아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혼 선언이었습니다. 아내는 정말 중요한 것은 앞으로 인생이라며 남편을 보필하느라 못한 일을 이제는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사진 채널A '아이콘탠트' 캡처]

 
결혼 후 30년을 남편의 뒷바라지로 살아왔다는 아내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이제는 뒷바라지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며 이번 만큼은 양보가 없다는 뜻을 비쳤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청년인 줄 안다며 꿈이 많은 남편이 꿈을 이루기 위해 늘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데, 그렇게 살다 보니 자신은 없었다고 했죠. 남편의 입장에서 들여다보았을 때는 ‘부부의 날 대상’으로 더 없이 어울리는 완벽한 부부였지만, 한없이 남편을 위해서만 시간을 보내왔던 아내에게는 힘에 부치는 시간이었던 셈입니다.
 
프로그램의 진행자 이상민 씨는 부부가 이혼을 이야기하는 순간 굉장히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며 합의가 되지 않으면 법원으로 향하게 되고 결국 협의하게 된다고 설명하며 이 상황을 안타깝게 바라봅니다.
 
프로그램에서는 이 부부가 다른 부부들과 함께 어울리는 장면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아내는 내내 남편 대신 일을 해결하고 보필하느라 한 시도 편히 앉아있지를 못합니다. 남편은 본인이 자신의 계좌번호조차 알지 못하지만, 이조차 아내가 있어 가능하다는 것을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합니다. 대신 전화를 받고 일을 처리하는 동안 남편은 홀로 상을 받았던 이야기를 늘어놓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부부의 날 대상을 받은 기사를 코팅까지 해서 들고 다니며 만나는 사람마다 꺼내 자랑하느라 바쁩니다.
 
인생역전 이후 강연 등으로 바빠지고 유명해진 남편은 원래 본인의 꿈이 국제 변호사였다며 로스쿨 진학을 꿈꾸고, 책을 내고, 해외봉사를 떠나고, 거기에 가수의 꿈까지 해내고 싶은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돈을 많이 벌어 80이 되면 매년 30명씩 청소년이 꿈을 이루게 돕고 싶다는 야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그 모든 일을 아내가 함께할 것이라고 말하죠.
 
하지만 아내는 지쳤습니다. 다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앞으로 인생이라고 말한 아내는 남편을 보필하느라 못한 내 일을 이제는 하고 싶어합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일 년 간 안식년을 통해 나를 찾고 싶고, 그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혼도 불사하겠다고 말합니다.
 
재킷 안쪽에서 늘 들고 다니는 부부의 날 대상 기사를 꺼내 든 남편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가 이혼한다면 큰일 나는 일이라고 손사래를 치죠.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어떻게 이혼이라는 말을 꺼낼 수 있느냐는 남편은 그와 동시에 자신이 남들보다 30년이 뒤처졌는데 여기서 잠깐이라도 멈출 수 없다며, 그렇다면 좁혀진 간격만큼 다른 사람들은 또 앞으로 가게 될 것을 걱정합니다. 사람 좋은 미소로 가득했던 남편의 얼굴에서 미소는 사라지고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입은 바짝 말라갑니다.
 
아내의 이혼 선언에도 자신의 도전을 걱정하는 듯 보여 답답해집니다. 내가 사업을 하고 당신의 꿈은 나중에 이루라, 당신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아내가 자신의 모든 계획에 함께여야 한다고 얘기를 이어갑니다. 어차피 100세 시대이니 그때도 늦지 않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부부를 대표해 건강한 부부문화 확산에 기여한 공로로 받게되는 큰 상의 주인공인 부부이지만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사진 pixabay]

수많은 부부를 대표해 건강한 부부문화 확산에 기여한 공로로 받게되는 큰 상의 주인공인 부부이지만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사진 pixabay]

 
팽팽히 맞서던 남편은 그동안 할 만큼 했으니 이제는 정말 자신의 삶을 찾고 싶다는 아내의 계속되는 요구에 말을 멈추고 곰곰이 생각을 이어갑니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30년간 당신이 어땠을까 싶다며 무식하고 철이 없어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본인의 꿈을 미루고 당신을 도울 테니 이제 이혼이란 말은 없는 것이냐며, 본인에게 스승이자, 멘토, 구세주인 아내인데 이혼이란 말은 없이 살자며 아내와 포옹합니다.
 
아내 편에서 생각하지 않고 긴 시간 너무 내 편에서만 생각했다는 남편과 30년만인 오늘에야말로 진심으로 소통한 날이라고 생각했다는 아내. 부부의 앞으로의 시간이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수많은 부부를 대표해 건강한 부부문화 확산에 기여한 공로로 받게 되는 큰 상의 주인공인 부부이지만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딱 적합한 상황은 아닐 수 있겠지만 문득 영화 ‘부당거래’의 유명했던 대사가 생각납니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물론 어디까지가 호의이거나 권리인 줄을 주관적으로 판단해 편파적으로 주장할 수도 있기에 말을 꺼낸 대상자가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부로 돌아와 이 말을 되새겨 봅니다. 긴 시간 함께 시간을 보내며 나도 모르게 나를 위한 상대가 기꺼이 이어온 노력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굿커뮤니케이션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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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은 박혜은 굿 커뮤니케이션 대표 필진

[박혜은의 님과 남] 은퇴 후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낼 집에서 자주 함께할 상대는 누구인가요? 그 상대와의 관계는 지금 안녕하신가요? 가장 가까운 듯하지만, 어느 순간 가장 멀어졌을지 모를 나의 남편, 나의 아내와 관계 향상을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강의와 코칭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고민을 바탕으로, 닿을 듯 닿지 않는 서로의 심리적 거리의 간격을 좁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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