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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현장에 묻다] “규제에 막힌 한국, 자칫 정보 좀비 국가될 수 있다”

중앙일보 2020.08.28 00:24 종합 26면 지면보기

첨단기술 법률 자문 시장의 강자, 법무법인 린

권혁주 논설위원

권혁주 논설위원

“교도소식 규제”“행정부를 국민보다 위에 두는 관점”“정보 좀비 국가”….
 

글로벌 100대 스타트업 중 31곳
한국에선 규제에 막혀 사업 제한
혁신 벤처들 성장 발목 잡힌 사이
데이터는 유튜브 등 외국기업 손에

조금 보태 규제에 정나미가 떨어진 듯했다. 독설 같은 표현들이 수시로 튀어나왔다. 법무법인 ‘린’의 임진석(55) 대표 변호사와 구태언 테크앤로(신기술) 부문장을 만난 자리에서였다. 린은 첨단기술 관련 법률 자문에 정평 난 로펌이다. 정부 기구의 신기술 관련 사업에는 법률 담당으로 단골 참여한다. “글로벌 100대 스타트업 가운데 31곳은 한국에서 사업하려면 규제를 받는다”는 보고서도 냈다. 벤처·스타트업을 자문하며 누구보다 많이 규제의 벽에 부딪히기도 했다. 임 대표와 구 부문장이 한이라도 맺힌 양 규제를 공박하는 이유다. 이들을 만나 한국의 규제 현실을 들어봤다. 얘기는 ‘타다 금지법’에서부터 시작했다.
  
규제 피하려면 비혁신적이어야 한다는 역설
 
2년 전인 2018년 8월, 대통령은 “붉은 깃발 규제”를 거론하며 규제 혁파 의지를 드러냈다. 그런데 그 뒤로 멀쩡히 하던 타다 서비스가 막혔다.
▶임진석 대표=“타다는 이용자가 170만 명이었다. 국회가 타다 금지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170만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택시 수보다 더 많은 이용자가 있다는 현실이 반영되지 않는 시스템은 문제다.”

▶구태언 부문장=“소비자가 받아들인 것, 그래서 성공한 것일수록 강한 규제를 받는다. 이용자가 늘고 사회적으로 퍼지면 전통산업이나 기득권과 부딪혀 마찰이 생기니까. 그러면 정부가 나선다. 시장이 받아들인다는 것은 정말 잘 키워야 할 사업이라는 얘기인데, 우리는 규제부터 들어온다. 역설적으로 혁신이 아닌 것은 시장에서 사라지니까 정부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법무법인 린의 임진석 대표(왼쪽)와 구태언 테크앤로 부문장. 이들은 ’규제 개혁에 이바지해 기술 스타트 업과 함께 성장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임현동 기자

법무법인 린의 임진석 대표(왼쪽)와 구태언 테크앤로 부문장. 이들은 ’규제 개혁에 이바지해 기술 스타트 업과 함께 성장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임현동 기자

스타트업이 대형 기업으로 자라나기 힘든 환경이라는 얘기로 들린다.
▶구 부문장=“이건 스타트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규제에 막혀 대형 기업이 나오지 못하면 자칫 우리나라가 ‘정보 좀비 국가’가 될 수 있다. 스마트폰을 꺼내 보라. 페이스북·유튜브·넷플릭스·인스타그램 등등을 사용할 때마다 데이터가 해외로 쏙쏙 빠져나간다. 데이터와 정보에 관한 한, 영혼을 장악당한 것과 마찬가지다. 플랫폼 전쟁에서 밀린 결과다.”

▶임 대표=“대형 플랫폼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유튜브는 ‘내가 볼 것 같은 동영상’을 추천해 계속 유튜브에 머물도록 한다. 페이스북 뉴스피드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의 서비스에 몰입하도록 하는 알고리즘이다. 알게 모르게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비트코인 같은 암호 화폐는 어떤가. 규제론이 비등했으나 정부가 명시적으로 조치한 건 거래 때 실명계좌를 쓰도록 한 것뿐이다.
▶구 부문장=“암묵적인 규제가 많다. 정부에서 연구비를 딸 때 순수한 블록체인 분야는 허용하고 암호 화폐와 연관한 것은 막는 식이다.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암호 화폐 규제는 비트코인 광풍 때문이었다. 과거 닷컴 버블과 비슷하다. 당시에도 투자 손실이 막심했지만, 개발자 같은 기술 인력은 많이 늘었다. 그게 한국 정보기술(IT)의 자산이 됐다. 암호 화폐를 막으면 관련 기술 인력이 클 수 있겠나. 얼마 전 주요 20개국(G20) 중앙은행 총재들이 디지털 화폐 발행을 논의했다. 나중에 실제 디지털 화폐를 발행할 때, 한국은 기술 인력이 없어 외국에 의존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린의 고객사 중에도 규제에 막혀 좌절한 사례가 꽤 있을 것 같다.
▶구 부문장=“스마트폰을 신용카드 결제 단말기로 사용하는 아이디어를 시현한 벤처가 있었다. ‘무슨 무슨 페이’처럼 스마트폰을 카드로 쓰는 게 아니라, 반대로 카드를 스마트폰에 대면 결제가 되는 거다. 이거면 노점상들도 간단하게 결제 시스템을 갖출 수 있다. 특허도 냈다. 그런데 쓰지 못했다. 신기술이어서 사용할 수 있다고 금융위원회 유권해석을 받아야 했는데, 거기에 1년 가까이 걸렸다. 다음엔 결제 단말기로 쓸 수 있다는 인증을 받아야 했다. 여기서 또 문제가 생겼다. 인증 기준이 없다고 했다. 하드웨어만 인증을 내주다가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을 처음 본 거였다. 총 3년 넘게 기다리다 결국 접었다. 투자금으로 버티는 스타트업에게 3, 4년은 ‘죽음의 시간’이다.”

▶임 대표=“신기술을 갖고 가면 정부는 ‘이런 게 가능하구나. 한 번 해보자’라고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반대로 미루면 뒤처진다. 예전엔 좀 늦어도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 산업 발전 속도가 느렸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세돌과 알파고가 겨룬 게 2016년인데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인공지능(AI)은 그사이 무섭게 발전했다. 좋은 참치를 고르는 데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참치 집이 일본에 등장했을 정도다.”
 
원격진료 같은 해묵은 과제도 많다. 
▶임 대표=“정부가 명확하지 않은 법규를 나름대로 해석해 규제한 경우다. 의료법은 직접 진찰을 받은 환자만 처방전을 받도록 했다. 여기서 ‘직접’이 무슨 뜻인가가 문제다. 정부는 이걸 얼굴을 맞대는 것으로 해석했다. 화면 진찰은 의사와 환자가 직접 얘기를 나눠도 ‘직접’이 아니다. 지금은 언택트 시대인데….”

▶구 부문장=“약국이 약을 전화로 주문받아 배달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비슷한 규제다. 근거는 1964년 개정한 약사법 조항이다. ‘약국 또는 점포 이외의 장소에서 의약품을 판매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 조항은 떠돌이 약장수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조항이 만들어진 64년은 전화도 별로 없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이게 지금 전화 판매, 인터넷 판매 금지의 근거가 됐다. 우리의 규제는 시대에 맞지 않는 법령을 확장 해석하는 방식으로 진화(?)한다.”
 
한국은 포지티브 규제가 문제라고들 한다.
▶임 대표=“허락한 것만 하게 하는 포지티브 규제는 못 하는 게 많다. 선진국은 반대로 금지한 것 말고는 다 할 수 있는 네거티브 규제다.”

▶구 부문장=“민간 규율은 네거티브 시스템이다. 워터파크에 가 보라. 해서는 안 될 것만 적어놓지 않았나. "요것만 하라”고 하는 건 교도소식 규제다. 정부가 포항제철(포스코)을 만들던 시절처럼 산업이 규제에 묶여 있다. 아직 ‘산업의 민주화’가 안 됐다.”
  
법률제도 개선은 변호사의 사명
 
우리나라는 최고경영자(CEO)들이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다’고 한다. 규제를 비롯해 걸릴 수 있는 법령이 많아서다.
▶구 부문장=“선진국은 규제 같은 행정법규를 위반했을 때 기업에만 벌금을 물리는데, 우리는 기업과 사람을 모두 처벌한다. 최악이다. 행정부를 국민보다 우위에 두는 관점에서 나온 규제 시스템이다.”
 
로펌으로서 법률 자문에 더해 규제 개혁을 위한 노력도 하는 게 있나.
▶임 대표=“구 부문장이 정부 부처의 규제혁신 기구에 참여해 목소리를 낸다. 국회를 찾아가 설명하고 입법을 촉구하기도 한다. 변호사법 1조 2항은 변호사들이 법률제도 개선에 노력해야 한다고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
 
임진석 대표와 구태언 부문장
임진석 대표변호사는 1994년 김앤장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금융이 전문 분야로 은행·증권사·자산운용사·저축은행을 두루 망라했다. 기획재정부 고문변호사로도 활동했다. 2017년 린의 대표변호사로 취임했다.
 
구태언 테크앤로 부문장은 학창 시절 정보기술(IT) 얼리 어댑터였다. 법조인이 된 뒤에는 검찰에서 사이버수사를 담당했다. 김앤장에 들어가 IT 분야 법률 자문을 주로 맡았다. 2012년 첨단기술 전문 로펌 테크앤로(Tek&Law)를 세워 운영하다가 2019년 초 린과 하나가 됐다. ‘테크앤로’라는 이름은 현재 린의 부문 명으로 그대로 남아 있다. 구 부문장은 국무총리실 신산업규제혁신위원, 4차산업혁명위원회 사회제도 혁신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공유경제협회 규제혁신 분과위원장이기도 하다.
 
임 대표와 구 부문장은 “로펌 업계에도 4차 산업혁명 바람이 불고 있다”고 전했다. 예컨대 법률 자료 검색과 분석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것 등이다. 임 대표는 “린도 외부 전문 연구소와 함께 인공지능 법률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
 
법조계에는 변호사와 의뢰인을 연결해주는 ‘로톡’ 같은 서비스도 등장했다. 변호사의 전문분야와 상담료·후기·평점 등을 올려놓고 의뢰인이 변호사를 선택하는, 일종의 법률서비스 장터 플랫폼이다. “강력한 플랫폼이 생기면 로펌과 변호사가 예속될 수 있지 않으냐”고 두 사람에게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위너(승자)는 플랫폼을 이용해 더 크게 성장하지 않나.”
 
권혁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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