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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공산주의자" 무죄→유죄…양승태에 사표낸 판사가 뒤집었다

중앙일보 2020.08.27 17:48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한국 개신교회 지도자 초청 간담회에서 참석자 소개를 받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한국 개신교회 지도자 초청 간담회에서 참석자 소개를 받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 말해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고영주(71)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1심의 무죄 판결이 뒤집힌 것이다. 고 전 이사장은 27일 항소심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장 "文대통령으로부터 어떤 압력도 없었다"

고 전 이사장은 2013년 한 신년하례회에서 당시 야당 의원이던 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부림사건의 변호인""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적화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 말해 2015년 문 대통령에게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했다. 
 

2심 재판장 "文대통령 압력 없었다" 

항소심 재판장인 서울중앙지법의 최한돈(55) 부장판사는 "동족상잔과 이념 갈등에 비춰 보면 공산주의자라는 표현은 다른 어떤 표현보다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표현"이라며 고 전 이사장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최 부장판사는 판결의 사회적 논란을 의식한듯 "법률과 양심에 따라 결론을 냈다. 피해자(문 대통령)로부터 어떤 압력도 받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는 이례적 입장도 냈다.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고 발언해 문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를 받는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2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2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고 발언해 문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를 받는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2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2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최 부장판사는 2017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불거질 당시 양 전 대법원장을 공개 비판하며 사직서를 제출했던 판사다. 판사 출신인 이탄희·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소속됐던 법원 내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이기도 하다. 2018년엔 전국법관대표회의 부의장도 역임했다. 이에 고 전 이사장 측은 이날 판결을 "청와대의 하명 판결"이라 반발했고 문 대통령 측은 "명예훼손 법리에 부합하는 판결"이란 입장을 냈다. 
 

'공산주의자'에 대한 엇갈린 판단 

고 전 이사장의 판결이 뒤집힌 건 그의 '공산주의자' 발언에 대한 1·2심의 판단이 엇갈렸기 때문이다. 2년 전인 2018년 8월 무죄를 선고했던 1심 재판부(김경진 부장판사)는 "한국전쟁 세대가 생각하는 공산주의와 전후 세대가 생각하는 공산주의가 같을 수 없다"며 "고 전 이사장과 문 대통령이 공산주의에 대해 일치된 의견을 보일 수 없다"고 밝혔다. 공산주의자에 대한 판단이 시대적 상황과 사람마다 다르니 '허위 여부' 자체를 가릴 수 없다고 본 것이다. 
 
2심 재판부도 '공산주의자'란 단어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고 전 이사장이 '공산주의자'를 발언할 당시 자신이 부림사건의 수사검사인 점을 밝혔고, 부림사건의 피의자들이 자신에게 "우리나라가 곧 공산주의 사회가 될 것"이라 말한 뒤 연이어 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 지칭한 점을 문제삼았다. 
 
2심 재판부는 "(그런 전제하에서) 공산주의자란 표현은 북한을 추종하고 이를 실천에 옮겨 대한민국의 전복을 꾀하는 과격한 공산주의자로 이해된다"며 "피해자의 정치적·도덕적 이미지에 중대한 타격을 입히는 행위"라 밝혔다.
 
2018년 4월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의장단 후보인 최한돈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28기)가 자리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8년 4월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의장단 후보인 최한돈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28기)가 자리하고 있다. [중앙포토]

'부림사건 변호인' 판단도 엇갈려 

두 재판부는 고 전 이사장이 문 대통령을 '부림사건의 변호인'이라 말한 점에 대한 판단도 엇갈렸다. 문 대통령은 부림 사건의 변호인이 아닌 부림 재심 사건의 변호인이었다. 1심 재판부는 "고 전 이사장이 문 대통령이 부림 사건의 변호인인지, 재심 사건의 변호인인지 특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문 대통령이 부림 사건의 변호인이었다"는 고 전 이사장의 주장은 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 표현하기 위한 핵심 전제라며 '허위사실 여부'의 판단 대상이 된다고 봤다. 
 

무죄와 유죄의 이유  

1심 재판부는 이런 판단을 바탕으로 "검사와 피고인이 제출하는 한정된 자료로 법정에서 정치인의 사상과 정치철학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그 능력과 판단을 넘어서는 것"이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2018년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을 당시 고영주 전 이사장의 모습. [연합뉴스]

2018년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을 당시 고영주 전 이사장의 모습. [연합뉴스]

2심 재판부는 "피해자(문 대통령이) 공산주의자라고 볼 근거는 피고인의 논리비약 외에는 없다"라며 "피고인은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수호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이념 갈등을 부추겼고, 이는 헌법 정신에 명백히 어긋난다"고 유죄라 판단했다.
 

판결에 대한 평가 

원심을 뒤집은 항소심 판결에 대해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공산주의란 표현 자체를 명예훼손의 판단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라 말했다. 이어 "표현의 자유를 확장하고 있는 최근 대법원의 판례와 배치되는 측면도 있다"고 평가했다. 대법원은 지난달 허위사실유포 혐의로 지사직 상실형을 받았던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무죄 취지의 판결을 했다.
 
반면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분단이 현실인 한국사회에서 '공산주의자'란 표현은 여전히 부정적 인식이 강한 단어"라며 "대법원에서 표현의 자유 범위를 넓히고 있을지라도 각 명예훼손 사건마다 재판부의 판단이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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