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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판사님” 콕 집은 총리···與 비판 참던 판사들 격앙시켰다

중앙일보 2020.08.27 05:00
정세균 국무총리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뉴스1]

정세균 국무총리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뉴스1]

코로나19(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가 다시 확산세를 펼치면서 지난 15일 광화문 집회에서 주최측의 손을 들어준 서울행정법원의 결정을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집회금지를 막은 판사를 탄핵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글부터 시작해 여권에서는 판사 이름을 딴 '금지법'을 만들자는 논의도 나왔다.  
 
여기에 정부 2인자 국무총리까지 가세했다. 25일 정세균 총리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잘못된 집회 허가를 했다”며 “(방역이)다 무너지고, 정말 우리가 상상하기 싫은 일이 벌어졌다”고 해당 판사 비판에 힘을 보탰다. 정 총리는 ‘그 판사님’이라고 해당 재판부를 언급하며 “(의도와는 달랐지만) 결과적으로 확진자가 생기고 전파되는 잘못된 판단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도 뛰어들었다. 추 장관은 “비상 상황에서 사법 당국이 책상에만 앉아있을 게 아니라 국민과 협조해야 한다”며 “(법원이) 사태를 안이하게 판단한 것으로 상당히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판 감내’는 판사 숙명이라지만

전광훈 목사의 보석과 일파만파 집회를 허용해준 판사를 해임시키자고 주장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전광훈 목사의 보석과 일파만파 집회를 허용해준 판사를 해임시키자고 주장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잇따른 정치권의 십자포화에 법조계에서는 “사법부 독립 침해”라는 반발이 나온다. 서울행정법원 11부(재판장 박형순)가 인용한 집행정지 인용 결정문에는 감염병예방법과 집회의 자유 사이에서 결정을 내린 재판부의 설명이 적혀있다.

 
당시 재판부는 집회의 자유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고,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집회를 제한할 때도 필요한 최소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결정했다. 서울시가 개별 집회의 집회 시간이나 규모를 개별적ㆍ구체적으로 살피지 않고 각기 다른 8월 15일 자 집회를 24시간 서울 시내 전역에서 금지하는 것은 과잉금지 원칙에 반한다는 취지다.  
 
박 재판장의 연수원 동기인 한 법조인은 “표현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차원에서 집회를 허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특정 성향으로 결정할 사안은 아니고, 다만 판사라면 자신의 판결에 대해 책임을 지고 비판도 감내한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정치권에서 오는 ‘센 발언’에 판사들이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최대한 받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국민이 재판에 대해 비평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총리의 비판은 결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행정부가 이미 결과가 나온 재판에 대해 판사 개인을 언급하며 비판하는 것은 그 무게감과 의미가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사법부가 행정부의 신하라고 보는 것인지, 자신의 말을 들어야 하는 공무원이라 보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여권의 비난이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연일 이어진 비판 속 말 없는 법원

[사진 Pixabay

[사진 Pixabay

일부 판사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정치권 등의 발언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했다. 정 총리가 ‘그 판사님’이라고 특정 판사를 지칭한 것은 충분히 사법부 독립에 영향을 줄 수 있는데도 침묵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다.  
 
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평소 대법원장이 ‘좋은 재판을 하라’고 구성원들에게 당부해 왔는데 판사들이 좋은 재판을 소신껏 할 수 있는 환경이 침해받은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이 국회 연설에서 법관들을 비판하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이의 있으면 항소하시오”라고 맞선 일화를 언급하며 “동료 판사들끼리는 정치색이 있는 것처럼 비칠까 봐 말을 못 꺼내고, 독립성 침해에 대해 공개적인 반박도 들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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