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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가 있는 아침] (35) 강호한정가(江湖閑情歌)

중앙일보 2020.08.27 00:19 종합 27면 지면보기
유자효 시인

유자효 시인

강호한정가(江湖閑情歌)
월산대군 (1454-1488)
추강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치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노매라
- 청구영언
 
왕의 형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참으로 서경적인 작품이다. 가을 강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다. 낚시를 드리우나 고기는 물지 않는다.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 배를 저어 온다.
 
물욕과 명리를 벗어나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가을 밤과 찬 물결, 달빛, 빈 배가 형성하는 한적한 심상이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이런 류의 시를 강호한정가라 부른다.
 
월산대군(月山大君) 이정(李婷)은 세조의 장손이다. 아버지 의경세자가 일찍 세상을 떠, 세조가 승하하자 장자 승계의 조선조 법도에 따르면 왕이 될 수도 있었으나 어리다는 이유로 숙부가 즉위했으니 예종이다. 그러나 예종마저 즉위 1년 여만에 세상을 떠 왕위 계승 순위는 왕세자 제안대군과 월산군 순이 되었다. 그러나 세조비 정희왕후는 월산군의 동생 자을산군을 지명했다. 조선의 9대 왕 성종이다. 이의 배후는 당대 최고 권신이자 자을산군의 장인인 한명회였다.
 
이후 월산대군은 양화도 북쪽 언덕에 망원정(望遠亭)을 짓고 풍류적인 생활을 했으니 오늘날의 망원동이다. 그는 동생의 왕위 계승에 일체 불만을 나타내지 않았으며, 성종과 의가 좋았다. 어미 잃은 어린 연산군을 거두기도 했다. 어머니 인수대비의 신병을 극진히 간호하다 과로로 자신이 병들어 35세로 숨졌다. 이 비바람 지나면 천하는 가을이다.
 
유자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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