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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이념에 희생된 금속활자

중앙일보 2020.08.26 00:27 종합 29면 지면보기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1998년 미국 잡지 라이프는 지난 1000년 동안 가장 위대한 발명품으로 금속활자를 꼽았다. 주인공은 고려가 아닌 독일 구텐베르크였다. 하기야 우리의 금속활자는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특허권이 발달한 서구와 달리 개인의 능력은 오롯이 집권층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제대로 쓰이지도 않았다. 인쇄술은 궁중에서나 쓰였다. 조정의 허락이 있어야 했다. 기득권을 위협하면 안 됐다. 오죽하면 국가 개조 프로젝트가 담긴 『반계수록』을 간행하는 데 100년이 걸렸다. 서점은 철저하게 봉쇄 내지 통제됐다. 집권층과 사대부에 의해서였다. 백성의 지식 함양을 꺼려서다. 그들에게 지식은 ‘일반 지식’이 아니라 ‘특권 지식’이었다. 표현의 자유가 있을 리 없었다. 아이러니하게 조선시대에 가장 많이 찍은 책은 『삼강행실도』였다. 백성에게 널리 전파했다. 인쇄술이 유교라는 이념을 지배도구로 공고히 하는 쪽으로만 쓰였다는 얘기다. 최첨단 기술이 기득권의 이념과 그것에서 파생된 독점욕에 사장된 셈이다.
 

편 가르기 이념 통치, 국가에 독
갈등, 경제 피폐 등 부작용 만연
규제를 억압 수단으로 쓰면 안 돼

이념에 기반을 둔 통치는 억압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고려와 조선시대 금속활자의 서글픈 역사가 그랬다. 서점과 인쇄술 규제는 억압의 또 다른 표현과 다름없다. 자유에 제한을 가하는 건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만큼 아는 자를 두려워했다는 뜻이리라. 확신범에게 이보다 위험한 건 없다. 논리가 안 되면 숙청으로 기득권을 지키려 든다. 토론이 있을 수 없고, 다른 의견이 개진될 리 없다. “적폐니 개혁이니 하며 청산을 강조하는 건 따지고 보면 숙청의 다른 이름이다. 그런 면에서 민주화 이후 가장 숙청이 많은 정권 아닌가 싶다”는 어느 학자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서소문 포럼 8/26

서소문 포럼 8/26

이념은 지배계층에겐 고무줄 같은 편리한 존재다. 유교가 강조하는 안빈낙도(安貧樂道)도 한 꺼풀 벗기면 성리학 이념에서 나온 뜬구름일 뿐이다. 청빈한 이상적 철학 세계는 사실상 백성에게만 강요됐다. 풍요함을 가져다줄 상공업 같은 경제활동은 천시됐다. 경제 논리가 없는 상황에선 빈부 격차가 커질 수밖에 없고, 좁혀지지도 않는다. 노력한다고 해서 부가 축적되지 않으니 시기 질투만 확산한다. ‘분배’의 논리가 ‘평준화’로 확장하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지경에 이른다. 부를 일군 과정은 깡그리 무시된다. 기득권은 이 틈을 놓치지 않는다. 적을 만들고 공격한다. 그 진영논리에 자신의 잘못은 쏙 뺀다. ‘자화자찬’ ‘내로남불’을 녹여낸다. 그 당당함에 기가 찰 노릇이다.
 
2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선 소득주도성장론이 출발부터 통계 조작 내지 오류로 시작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 정부가 소주성 기치를 치켜들며 내세운 가장 중요한 논리가 노동소득분배율의 지속적 하락이었다.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주장했다. 한데 통계청장을 지낸 유경준 의원(미래통합당)이 한국은행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0년부터 노동소득분배율은 꾸준히 증가했다”였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이 지적에 “맞다”고 했다. 이 총재는 “그 분들(홍 전 수석, 장 전 실장)이 주장했을 때는 나름대로 다른 논거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면서도 “한국은행은 원칙대로(분석했다)”고 덧붙였다.
 
현 정부 경제정책의 가장 중요한 근간이 정부 공식 통계인 한국은행의 자료와 정반대였던 셈이다. 경제정책의 뿌리가 허물어진 꼴이다. 이쯤 되면 경제가 갈피를 못 잡고 헤매는 이유를 추정하기에 어렵지 않다. 왜 정부의 통계 해석이 오락가락하고, 자화자찬과 포장술이 변신을 거듭하며 구사되는지도 짐작할만하지 않는가.
 
얼마 전 만난 모 기업 대표는 이렇게 한탄했다. “이 정부에 경제 논리가 있는가. 이념만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니 시장이나 산업현장, 고용 문제를 적과 동지로 나눠 접근하고, 현실을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는 것 아닌가 싶다. 온 산을 깎아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금수강산이 참혹하게 변했다. 그래도 그들의 전통적인 동지가 문제 삼는 걸 못 봤다. 권력자로부터 성추행당한 여성에 대해 정부조차 입을 다문다. 피해호소자라는 희한한 말을 만드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참 편리한 게 이념 기반 정책이다.”
 
어디 이뿐인가. ‘비정규직 제로 선언’의 성지인 인천공항공사의 정규직화를 위해 역대 정부가 22년에 걸쳐 없애려고 공들였던 청원경찰제라는 유령까지 꺼내 들었다. 하다 하다 국무위원이 판사마저 공격하는 시대다. 논리가 부족하고, 그래서 자신감이 없을수록 ‘탓’하는 데 익숙해지는 법이다. 21세기에 통합 대신 내 편 네 편의 시대를 경험할 줄이야.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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