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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규미술관 건립은 언제?...작품들 유족에게 다시 가는 사연

중앙일보 2020.08.25 18:06
권진규, ‘지원의 얼굴’ 1967년작, 테라코타, 50x32x32cm.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권진규, ‘지원의 얼굴’ 1967년작, 테라코타, 50x32x32cm.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조각가 권진규(1922~1973)의 작품 700여점이 춘천지역 기업에서 유족 품으로 돌아간다.  
 

대일광업 상대 소송서 유족 승소
"미술관 건립 약속 지키지 않아"
유족 "국가 공공기관에 기증할 것"

25일 권진규기념사업회에 따르면, 춘천지법 민사2부(장두봉 부장판사)는 지난 19일 권진규 유족 대표인 권경숙·허경회씨가 대일광업과 대일생활건강을 상대로 낸 '미술품 인도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대일광업과 대일생활건강은 권씨 등으로부터 양도대금인 40억원을 받고 미술품을 돌려주라"고 선고했다. 
 
권진규 유족과 대일광업은 2015년 5월 30일 권진규미술관을 설립하기로 합의했으며, 유족은 대일광업에 조각·유화를 비롯한 작품 522점과 메모 196점 등 총 718점을 양도했다. 이후 2015년 12월 대일광업은 춘천시 동면 월곡리에 운영 중인 '옥산가' 달아실미술관 내에 권진규미술관 문을 열었다. 
 
문제는 그동안 유족들은 대일광업 대표가 약속한 독립된 권진규미술관의 건립을 기다려왔으나, 이 약속이 이행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 유족들은 "대일광업은 2020년 12월 30일까지 독립된 권진규미술관을 새로 짓겠다고 합의한 바 있으나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후 재판 변론 과정에서 작품이 대일생활건강 주식회사로 소유 이전되었고 대일생활건강 주식회사는 이를 담보로 제공하고 대부업체에서 거액의 자금을 대출받은 사실이 드러났다"고 덧붙였다. 유족들은 다시 대일생활건강 주식회사를 피고로 하여 같은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정에서 대일광업의 의견은 달랐다. 대일광업 측은 "미술관을 건립하는 것은 계약의 부수적인 내용에 불과해 위반이 있더라도 (계약) 해제 사유가 될 수 없다"며 "계약에서 정한 기간 내에 미술관을 건립할 수 있으므로 의무 이행이 불가능하다고 할 수도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권진규미술관을 별도의 건물을 새로 건립하고 개관해야 하는 것은 계약상 피고의 주된 의무였다"고 명확히 밝혔다. 결국 재판부는 대일생활건강이 상당한 금액을 빌리면서 각 미술품을 담보로 제공한 점, 대일광업 대표이사가 언론 인터뷰에서 2016년에 독립된 건물을 착공하겠다고 말한 점, 미술관 건립에 4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보임에도 설계용역조차 하지 않았던 점 등을 종합해보면 독립된 미술관 개관 의무는 이행불능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또 대일광업이 대일생활건강에 각 미술품을 이전했더라도 계약의 해제로 인한 원상회복 의무를 부담한다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생전에 서울 성북구 동선동 아틀리에에서 작업하던 권진규의 모습. [사진 내셔널트러스트]

생전에 서울 성북구 동선동 아틀리에에서 작업하던 권진규의 모습. [사진 내셔널트러스트]

권진규기념사업회 측은 15일 보도자료를 내고 "유족 대표들은 피고들이 조속한 시일 내 그리고 온전하게 미술품을 가져올 것을 촉구한다"며 "피고들이 작품을 가져와 원고들에게 인도할 준비가 되는 대로 대금을 지급하고 작품을 인도받아 오겠다"고 밝혔다. 유족은 작품을 국가 공공 기관에 기증할 뜻도 밝혔다. 권진규기념사업회는 "작품을 인도받은 후 현재 별도로 소장하고 있는 작품을 포함해 권진규 작품들을 역량 있고 신뢰할 만한 국가 공공기관에 기증할 것"이라며 "권진규의 미술사적 위상에 걸맞은 독자적 위상을 가진 권진규미술관이 설립 ‧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권진규는 1922년 함흥에서 태어나 춘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쾌대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웠으며 일본 무사시노미술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했다. 권진규미술관 건립 추진은 이미 10년 전에도 한 번 좌절된 바 있다. 유족은 2004년 하이트에 작품들을 양도했으나 하이트의 경영난 때문에 미술관 건립이 어려워져 2010년에 작품을 돌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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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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