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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오바마 각인시킨 그 무대…美민주 전대 나선 한국계 의원

중앙일보 2020.08.25 15:57
지난 20일(현지시간) 막을 내린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공동 기조연설자로 나선 샘 박 조지아주 하원의원. [사진 샘 박 의원]

지난 20일(현지시간) 막을 내린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공동 기조연설자로 나선 샘 박 조지아주 하원의원. [사진 샘 박 의원]

 
2004년 7월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 기조연설자는 버락 오바마 당시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이었다. 주(州) 상원의원을 8년 지냈지만, 전국적으로는 '무명'인 43세 오바마를 발탁해 무대에 세운 사람은 존 케리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다. 

20일 막내린 민주당 전당대회 기조연설자 17명 중
유일한 아시아계 샘 박 조지아주 하원의원 인터뷰
어머니 암 투병 계기 정치 입문, 3선 공화당 현역 꺾어
주의회 첫 성소수자 "사람으로 평가받는 세상 만들 것"
"투표하라, 원하는 후보 없다면 스스로 출마하라"

 
이 자리에서 오바마는 "(나처럼)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가진 깡마른 소년도 꿈을 꿀 수 있는 나라", 그리고 "담대한 희망"을 이야기하며 대중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여세를 몰아 4년 뒤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고, 미국 첫 흑인 대통령이 됐다. 
 
 지난 18일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미국 전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정치인 17명이 공동으로 기조연설을 했다. 샘 박 조지아주 하원의원은 유일한 아시아계 의원이었다. [AP=연합뉴스]

지난 18일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미국 전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정치인 17명이 공동으로 기조연설을 했다. 샘 박 조지아주 하원의원은 유일한 아시아계 의원이었다. [AP=연합뉴스]

 
민주당 전당대회 기조연설은 미래에 당을 이끌 정치 유망주를 발굴하는 무대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막 내린 올해 대회는 한 명이 아닌 17명을 기조연설자로 세웠다. 미 전역에서 선발한 차기 유망주의 메시지를 담은 영상이 올해 대회의 기조연설이 됐다. 17명 가운데 아시아계 정치인은 단 한 명, 한국계 샘 박(35) 조지아주 하원의원이었다. 한국계 정치인이 민주당 전당대회 무대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박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기회를 갖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인정받은 데 대해 감사하고 겸허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가족은 1980년대 초반 미국에 이민했다. 박 의원은 "싱글맘이었던 어머니는 내게 믿음과 가족, 노력의 중요함을 가르쳐줬다"면서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가치들"이라고 말했다.  
 
지난 20일 막을 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상영된 기조연설. 샘 박 조지아주 하원의원은 17명의 공동 기조연설자 가운데 유일한 아시아계 정치인이었다. [민주당 전당대회 영상]

지난 20일 막을 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상영된 기조연설. 샘 박 조지아주 하원의원은 17명의 공동 기조연설자 가운데 유일한 아시아계 정치인이었다. [민주당 전당대회 영상]

 
그가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어머니의 투병이었다. 조지아주립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지 몇 달 지난 2014년 12월, 어머니가 말기 암 진단을 받았다. 치료나 화학요법 없이 생존할 수 있는 기간이 4~6개월이라는 청천벽력같은 통보를 받았다. 이때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건강보험(메디케이드와 메디케어), 일명 오바마케어가 한 줄기 희망이 됐다고 한다.
 
박 의원은 "보험 덕분에 어머니는 병마와 싸울 기회를 얻게 됐다"면서 "남은 기간을 고통 없이 평화롭게 보낼 수 있었고, 아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는 것도 보셨다"고 말했다. "어머니와 긴 작별을 할 수 있는 축복"을 얻었음에 감사했다. 
 
2주에 한 번 어머니를 모시고 화학치료를 다니면서 건강보험은 생사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공화당 반대로 여전히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주민 수십만 명을 위해 싸워야겠다고 결심하고 선출직에 도전했다. 
 
2016년 조지아주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주의회 역사상 민주당 소속으로 선출된 첫 아시아계 의원이며, 동성애자임을 밝힌 첫 의원이다. 어머니는 이듬해 돌아가셨다. 
 
당시 선거는 다윗과 골리앗 싸움이었다. 상대는 백인인 3선 공화당 현역의원이었다. 조지아주는 1996년 이후 대통령 선거에서 내리 5차례 공화당 후보를 뽑은 일명 '적색 주(Red State)'다. 2016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5%포인트 차이로 이겼다.
 
박 의원은 "승산은 희박했지만 내게는 야심이 있었다"면서 "정치적 절차에서 종종 무시되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다양한 연합을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수만 가구 문을 두드려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고 약속하고 받아낸 표였다.
 
정계에 입문한 뒤 가장 큰 업적으로 다른 아시아계 지도자들이 선출되도록 도운 것을 꼽았다. 그는 "내가 당선된 이후 조지아주에서 첫 베트남계, 방글라데시계, 중국계, 필리핀계 지도자들이 선출됐다"면서 "차세대 주자들이 힘을 합쳐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올해 기조연설자로 박 의원을 선택한 것도 젊은 층과 아시아계 미국인들, 소수자들이 정치에 참여하도록 격려하며 그가 보여준 리더십과 다채로운 배경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보수적인 지역에서 성 정체성을 밝히고 활동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내 지역구는 원래 나이 많은 백인이 많이 거주하는 보수 성향이었는데 인구 구성이 젊어지고 다양해졌다. 빠르게 변화하는 미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음 세대를 위해 계속해서 봉사하고 장벽을 무너뜨리는 걸 사명으로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피부색이나 누구를 사랑하느냐가 아니라 사람의 콘텐츠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매우 실망스럽고 부끄럽다. 트럼프는 자신의 이익을 위한 사진을 찍기 위해 김정은 같은 독재자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고 친하게 지낸다. 동시에 미국의 오랜 동맹이자 민주주의의 모범인 한국은 비판한다. 주한미군은 지역 전체의 평화 유지에 도움을 주는데, 그 비용을 한국에 더 지불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해법은. 
 
"전문가 말을 듣고 문제의 복잡성을 이해하며, 통일까지 이어지는 한반도 평화 육성을 위한 장기적이고 복합적인 계획을 실행할 수 있는 진정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민주주의와 자유를 증진하고, 권위주의와 독재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를 차기 대통령이자 자유 세계의 지도자로 선출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기조연설 후에 대선에 출마했는데.
 
"내게 기회를 준 조지아주 유권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봉사하고 그들을 대변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다른 공직에 출마할 계획보다는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살려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이다."
 
한국과 미국의 또래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말은.
 
"민주주의의 정치적 과정에 참여하면 세상에서 원하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투표하고 원하는 후보를 지지하라. 만약 후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스스로 공직에 출마하라."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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