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박재현 논설위원이 간다] “식당도 재료 공개하는데…주택 시장이 못할 이유 없다”

중앙일보 2020.08.24 00:28 종합 23면 지면보기

건설원가 공개한 SH공사

김세용 SH공사 사장은 ’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 민간업체들도 건설원가를 공개토록 적극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SH공사]

김세용 SH공사 사장은 ’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 민간업체들도 건설원가를 공개토록 적극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SH공사]

지난달 말 부동산 시장에선 의미있는 시도가 있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서울 구로구 항동 공공주택지구 4단지 분양 아파트의 건설 원가를 공개한 것이다. 공사 측은 앞으로도 준공 이후 건설 원가를 모두 밝히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시장의 반응을 살펴본 뒤 민간 건설업자들에게도 원가 공개를 유도키로 했다. 부동산 가격 안정화를 위해선 긍정적 신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항동 4단지 387억여 건설비 공개
평당 750만원으로 폭리 못취해
싼 자재 사용은 감리로 감시해야
설계부터 시공·준공 과정도 공개

이번에 SH공사가 공개한 ‘준공 이후 건설 원가’는 모두 61개 항목이다. 기존에 일부 공개한 분양가격 공시 내역과는 다르다. 분양가 공시는 모집공고 시점에 추정 원가 비율을 배분한 것으로 실제 공사비와는 차이가 많이 난데다 실효성도 크지 않았다.
 
SH공사 김세용 사장은 “우리가 식당에서 음식을 사 먹더라도 재료가 무엇인지, 어떠한 요리 과정을 거쳤는지를 아는데 주택시장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공개를 강행한 배경을 설명했다. SH공사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부터 공사의 신뢰도를 높일 방법을 찾았다는 그는 공공기관이 가지고 있는 정보에 대한 개방성을 확대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최근 급등한 주택가격을 안정화시키기 위해선 공급가격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필요성을 느꼈다, 원가 공개를 못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SH공사는 모두 387억여 원의 공사비가 들어간 항동 공공주택지구 4단지 분양아파트에 대한 준공 건설 원가를 공개했다. [SH공사]

SH공사는 모두 387억여 원의 공사비가 들어간 항동 공공주택지구 4단지 분양아파트에 대한 준공 건설 원가를 공개했다. [SH공사]

SH공사는 모두 387억여 원의 공사비가 들어간 항동 공공주택지구 4단지 분양아파트에 대한 준공 건설 원가를 공개했다. [SH공사]

SH공사는 모두 387억여 원의 공사비가 들어간 항동 공공주택지구 4단지 분양아파트에 대한 준공 건설 원가를 공개했다. [SH공사]

이번에 SH공사가 공개한 61개 항목 중 59개는 직접 공사비이며, 나머지 2개는 건설자금 이자와 직접 인건비 및 경비 등이다. 직접 공사비는 47개 항목의 도급 공사비와 각 6개 항목의 지급 자재비와 기타 직접 공사비로 분류된다. 〈표 참조〉
 
12~15층 규모의 4개동 총 190세대 중 분양아파트 건설비는 387억여원으로 가구당 평균 2억300만여 원의 공사비가 들어간 것으로 집게됐다. 2년6개월의 공사기간을 감안할 때 적당한 비용이라는 것이 공사 측의 설명이다.
 
김 사장은 “공사비를 공개하면 건설업체가 얼마의 이윤을 남겼는지를 다 알 수 있어 입주자들을 상대로 폭리를 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다”며 “이는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는 효율적인 방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5평 아파트를 기준으로 할 때 평당 통상 공사비는 750만원으로 모두 2억250만원의 공사비가 합리적이라는 말이다. 여기에 지역의 땅 값을 감안해 분양가가 산정돼야 하는데도 대부분의 주택 소비자들은 ‘깜깜이 공사비’에 손해를 보거나 피해를 볼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4단지 입주주민들도 이번 조치에 상당한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일선 민간 건설업체들은 SH공사 측의 방침에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건설원가 공개가 부실 공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또 대형 건설업체 위주로 주택시장이 개편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고도 했다. 이들은 “건설업자들이 건설 원가를 낮추기 위해 싼 자재 등을 사용할 수 있는데다 엉터리 공개로 인해 시장 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원가 공개로 인해 규모가 작은 건설업체들은 재정적 압박으로 인해 경영의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에 대해 김 사장은 “준공 이후 건설원가 공개가 싸구려 자재사용으로 둔갑하는 논리 자체가 모순”이라며 “건설 프로세스에는 엄연히 감리의 과정이 있는데 어떻게 부실 공사를 할 수 있겠느냐”고 반박했다. 대형 건설업체들이 시장을 지배하게 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정보공개로 인해 시장이 투명화되면 오히려 영세 건설업체들이 더 이익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업자들에 대한 오해가 풀리고, 건설산업을 선진화시키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SH공사는 앞으로도 준공 및 정산이 완료되는 단지에 대해 순차적으로 건설 원가를 공개할 예정이다. 보통 준공 이후 정산까지 1년 안팎의 기간이 소요되는 것을 감안할 때 올해 말 준공 예정인 고덕 강일4, 8, 14단지는 내년 하반기쯤 건설 원가를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 사장은 “건설 원가 공개는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는 아파트 건설과 관련된 모든 과정을 하나로 묶어 공개해 서울시민들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공사 측은 시범적으로 아파트 준공단지를 선정해 설계부터 시공,준공 등 건설 공정 전 단계의 비용과 기간, 변경사항 등에 대한 공개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설계 변경 과정에서 발생하는 추가 비용과 공기 지연 등 작은 부분까지 모두 밝혀 소비자들의 권익을 최대한 보호키로 했다.
 
이를 위해 공사는 홈페이지에 별도의 특집 카테고리를 만들어 관심 있는 아파트에 대한 정보를 한번의 클릭만으로도 전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세부적으로는 해당 사업의 지구 지정과 관련된 고시 및 토지 이용 계획을 게재하고 아파트 설계의 조감도, 평면도, 유형별 세대수, 시공 추진 현황 등을 세밀하게 수록하고 업데이트 한다는 것이다.
 
후분양과 공공재 건축 등 공급 혁신 필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3년반 동안 나온 23차례의 부동산 대책은 실패만 거듭했다. 시중엔 자금이 넘쳐나는데 공급 문제는 등한시 한 채 아파트 구입자만 탓했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대부분의 제품이 완성 뒤 구매를 하는 것을 고려하면 주택 선분양제도는 후진적이고, 소비자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SH가 하는 것처럼 후분양제도를 적극 시행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볼 때 분양주택 공정률이 60~80%에 이르렀을 때 입주자 모집공고를 시행하면 실제 건축 현장과 실물주택을 확인한 뒤 청약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분양시장의 측면에선 선분양이 입주시까지 통상 2년6개월에서 3년이 걸리는 반면 후분양은 8~10개월로 짧기 때문에 불법 전매가 감소하고 실수요자 위주로 청약이 이뤄지는 효과가 있다. 투기가 가능한 기간을 최대한 단축시키는 효과도 있다.
 
김 사장은 또 한국교육개발원 부지 등 지방 이전으로 장기방치되고 있는 공공재 건물 등을 활용해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개발제한구역 내에 새롭게 주택을 짓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방식이어서 법률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SH가 갖고 있는 서울 지역의 임대주택 34곳을 재건축해 신혼부부와 3040의 무주택자, 노후생활이 어려운 5060을 위해 공급을 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중이라고 했다. 자산이 부족한 무주택자를 위해 매년 지분을 적립하는 식으로 분양을 해주는 지분적립형 분양주택도 대안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부재로 서울시 주택공급 사업이 표류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김 사장의 개혁안이 제대로 먹혀들지는 미지수다. 부동산 시장에선 벌써부터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등 재보선이 예정된 내년 4월까지만 버티면 강남 재건축 사업 인허가가 날 수 있다”는 소문이 나오고 있다. 때문에 부동산 정책을 지금처럼 땜질 방식으로 계속할 경우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박재현 논설위원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