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찬호 논설위원
진심어린 참회, 호남 호응 높지만
김종인 물러나면 도루묵될 우려
비가역적 개혁 밀어붙여야 살 길
보수정당이라고 광주 챙기기를 안 한 건 아니다. 2004년 한나라당 대표에 오른 박근혜의 첫 행선지는 광주였다. 그래선지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는 호남에서 역대 최고인 10% 안팎의 득표를 올렸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김영삼 정부에서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한 5·18에 대한 후임 보수 정권들의 인식은 갈수록 뒷걸음질 쳤다. 급기야 황교안이 이끈 자유한국당 치하에선 5·18에 대한 막말이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그러나 당은 해당 의원들에게 솜방망이 징계에 그쳐 국민의 분노를 샀다. 이뿐 아니다. 4·15 총선을 앞두고 호남 28개 지역구 중 12곳만 공천하는 죄를 범했다. 민주화 이후 4차례, 근 20년이나 집권한 책임정당으로서 용서받을 수 없는 패착이었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통합당은 수도권 121석 중 16석만 얻는 궤멸적 참패를 당하고, 상임위원장 한명 없는 난쟁이 야당으로 전락했다. 선관위 고위 소식통의 분석이다. “호남이 고향인 수도권 유권자들이 유달리 똘똘 뭉쳐 민주당에 몰표를 줬다. 이낙연 효과도 있었겠지만 ‘너희는 없어도 돼’라며 호남을 대놓고 버린 통합당을 응징한 측면이 더 컸다”
그런 만큼 김종인의 무릎 꿇기로 상징되는 통합당의 ‘호남 껴안기’는 시작일 뿐이다. 선거 때만 호남을 위하는 척하다 돌아선 보수정당의 흑역사를 국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정치 좀 안다는 호남 인사들은 “김종인만 물러나면 도로 영남당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대놓고 한다. 그런 만큼 통합당은 5·18에 대한 사과와 존중을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원칙’으로 못 박아 대대손손 이어 가야 한다. 그 원칙을 정강·정책에 못 박는 건 물론 광주에서만 열려온 5·18 기념식을 서울에서 치러 ‘전국화’하는 걸 대선 공약으로 제시해야 한다. 5·18은 광주만이 아니라 전 국민의 역사임을 통합당이 선제적으로 선언한다면 무릎 꿇기의 진정성은 절로 입증될 것이다.
김종인은 팔순이다. 당내에 목숨 걸고 충성하는 측근도 없다. 그런 그가 권위를 갖는 건 지금 보수에 요구되는 시대정신에 유일하게 부합하는 행보를 해왔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김종인도 대표직을 내려놓을 것이다. 그때에도 통합당이 수권 가능한 정당으로 살아남으려면 김종인이 지금 추진 중인 개혁을 지지하고, 되돌릴 수 없는 것으로 굳히는 것 외엔 방도가 없다.
강찬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