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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남의 퍼스펙티브] 국내 진출 외국 기업인이 만족해야 외자 끌어올 수 있다

중앙일보 2020.08.24 00:13 종합 20면 지면보기

K방역 다음은 기업 하기 좋은 나라

기업 그래픽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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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사이에서도 정의하기 쉽지 않은 용어의 하나가 ‘선진국’ 개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인당 국민총생산(GDP), 수출 상품 다양성, 금융시장 발달 정도 등을 기준으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구분한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이 같은 IMF의 개념 정의에 의구심을 갖게 한다. 대표적 선진국인 미국에서 코로나19 확진 환자와 사망자가 가장 많이 나오고, 선진국의 별칭처럼 여겨지던 선진 7개국(G7) 국가들의 상황을 지켜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투자 늘려야 일자리 만들고 구매력 키워 내수 튼튼해질 수 있어
기업 환경 개선하면 국내외 투자 늘어 아시아 허브로 도약 가능
디지털 경제 시대 맞아 제조업 규제는 과감하게 손 보고
경쟁국보다 과도한 세금 부담 줄여 기업가정신 살아나게 해야

우리나라는 올해 2월 코로나19 확진자가 대폭 늘어나면서 100개 이상의 국가에서 우리 국민의 입국을 제한했다. 이때만 해도 이러다가는 우리나라 이미지가 나락으로 추락하는 것 아닐까 우려됐다. 하지만 정부의 노력과 희생을 마다치 않는 의료진, 국민의 협조로 세계가 대한민국을 코로나19 방역의 모범국가로 평가할 정도가 됐다. 최근 급격한 확산이 다시 한번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이 또한 곧 잡힐 거라 믿는다.
 
우리나라는 성공적 K방역 덕분에 ‘살기 안전한 나라’ 기준으로 선진국 대열에 확실히 합류했다. 그뿐 아니라 일상생활의 제약 정도를 비교할 때도 우리나라는 단연코 선진국 수준이라 할 만하다. 필자와 친한 다국적기업의 최고경영자(CEO)는 한국에서 3개월가량 살 생각으로 8월 말 입국할 의향을 전했다.
  
국내 유치의 5배 수준인 해외 투자
 
지난 5월 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를 수습하고 소비를 진작시키는 차원에서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그런데 지속해서 내수를 튼튼히 하려면 소비보다는 기업 투자를 늘려 일자리를 창출하고 구매력을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 일자리가 늘어 취업자 소득이 증가하면 복지 정책을 위한 재정 부담도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기업 투자를 늘리는 일은 경제 정책의 핵심이다. 세계은행의 2020년 ‘기업환경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평가 대상 190개국 중 ‘기업 하기 좋은 나라’ 순위에서 5위로 나와 있다. 하지만 기업인들이 느끼는 체감과는 큰 괴리가 느껴진다. 지난해  국내 기업의 해외 투자는 해외 기업의 국내 투자(FDI)의 4.8배 수준일 정도로 국내 기업 환경은 열악하다.
 
2500년 전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 섭(葉)땅을 다스리던 섭공(葉公)은 자기 고을 사람들이 자꾸만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이탈하자 공자에게 방책을 묻는다. 이 질문에 대한 공자의 답은 간단명료하다. “자기 백성을 기쁘게 다스리면 이웃 나라 백성도 소문을 듣고 찾아올 것이다”(近者說遠者來).
 
한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의 애로사항을 듣다 보면 이들이 느끼는 기업 환경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이들이 한국 기업 환경을 좋게 평가하면 투자가 늘고 아시아본부를 한국으로 옮기려는 움직임도 활발해질 것이다.
 
최근 홍콩은 중국 본토와의 갈등에 코로나19 문제마저 겹쳐서 매력도가 예전 같지 않다. 이런 때 우리의 기업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면 우리 기업도 다국적기업도 공히 한국에 투자를 늘리는 계기가 되지 않겠는가. 뉴욕타임스가 디지털 뉴스 아시아 편집 거점을 홍콩에서 서울로 옮긴다는 뉴스는 매우 고무적이다.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경제 시대를 맞아 종래 제조업에 초점을 맞춘 규제는 과감하게 손볼 때가 됐다. 이제는 세계 경제전쟁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스포츠로 치면 경기 종목이 바뀐 셈이다. 경기 종목이 바뀌었는데 과거 종목의 코치가 규칙을 정하고 지도하는 것은 맞지도 않고 효과도 없을 것이다. 정책 당국은 새로운 산업에 맞는 규칙을 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가장 잘 대처한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에도 그때처럼 몇몇 핵심 분야에 대한 규제는 유연하게 적용하면 어떨까? 주당 52시간 근로 시간제, 대형 마트의 의무 휴업일과 온라인 판매 금지 같은 규제는 상황에 맞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경제 시대의 패러다임에 맞게 혁신적 사업 아이디어를 가로막는 규제나 기득권 보호 정책은 과감히 손 보아야 할 것이다.
  
투자 유치의 걸림돌 노사 관계
 
경쟁국보다 과도한 기업의 세금 부담도 기업가 정신을 해친다. G7 국가들은 기업 투자 유치를 위해 법인세를 꾸준히 인하하는 추세다. 그런가 하면 세금 부과 방식인 세정에 대해 하소연하는 목소리도 많다. 본사와 지사 간의 ‘이전 가격(transfer price)’에 대한 다툼이 그 예다. 수입 가격을 낮게 책정하면 관세는 적게 내지만 대신 법인세를 많이 납부하게 돼 국가 세수 면에서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세관과 기업 간에 ‘이전 가격’을 놓고 다투는 경우가 많다. 이런 하소연을 듣다 보면 좀 더 나은 조세 부과 방법은 없을까 묻게 된다.
 
노사 관계도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면 좋겠다. 2019년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우리나라 노사 관계는 141개국 중 130위로 최하위권이다. 이러다가는 해외 기업의 아시아본부 유치는 고사하고, 우리 기업의 국내 유턴에도 걸림돌이 될까 걱정이다.
 
우리 정부도 기업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각종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줄 안다. 하지만 기업인들을 만나 보면 여전히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많이 들린다. 공자의 가르침처럼 이미 우리나라에 와 있는 기업인들이 기업 환경을 만족스럽게 평가할 때(近者說), 외국인 투자도 늘고 아시아 허브도 가능하게 된다(遠者來).
 
K방역 뒷받침한 e커머스, 세계 시장서도 승산 있어
이번 코로나19 위기는 우리에게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초기에 우리나라는 코로나19의 급격한 확산으로 위기를 맞았으나 봉쇄 없는 방역에 성공함으로써 ‘한국은 살기 안전한 나라’라는 인식을 대내외에 각인시킬 수 있었다. 정부가 특정 지역을 봉쇄하지 않고도 빠른 진단키트 승인, 다양한 선별 진료소와 생활 치료소 운영 등으로 신속하게 확산을 통제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체주의적 감시 체제가 아닌 ‘시민 역량 강화’에 기초한 K방역은 선진국들도 모범 사례로 인정할 정도다.
 
또 한 가지 특징은 사재기 현상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 같으면 이 정도 위기에 생필품 사재기가 있었을 법한데 이번에는 그런 일이 전혀 없었다. 무엇 때문일까? 두 가지 요인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봉쇄 없는 방역 시스템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이상의 봉쇄는 없었기 때문에 누구도 생활에 큰 불편을 겪지 않았다. 또 하나는 훌륭한 배달 시스템이다. 수퍼마켓은 물론, 전국 물류망을 갖춘 쿠팡·배달의민족 같은 기업들이 주문만 하면 생필품과 음식을 문 앞까지 배달해주니 굳이 사재기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 사례를 보며 4차 산업혁명에 기반을 둔 미래 플랫폼 경쟁을 생각해본다. 미국·일본·유럽·인도 등 주요 플랫폼 시장은 이미 유튜브와 아마존이 장악하고 있다. 중국과 한국 시장만 알리바바와 쿠팡이 그나마 시장을 지키고 있는 정도다. 서점으로 출발한 아마존이 세계 플랫폼 경쟁에서 이 정도의 강자가 되리라고 예견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K방역의 성공은 한국도 IT 인프라를 바탕으로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힘을 길러 해외로 진출하면 세계 플랫폼 경쟁에서 승산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위해 정부는 어떤 정책을 펼쳐야 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19세기 후반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쇄국정책으로 국제 경쟁에서 뒤떨어진 뼈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이다.
 
오종남 SC제일은행 이사회 의장·전 IMF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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