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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한방에 휘청한 아베…빛 바랜 역대 최장수 총리 기록

중앙일보 2020.08.23 17:40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4일 역대 일본 총리 가운데 연속 재임일수 최장수를 기록한다. 2012년 12월 26일 2차 집권에 성공한 아베 총리의 연속 재임일수는 이날 2799일로, 자신의 외종조부(외할아버지의 동생)인 사토 에이사쿠(佐藤栄作) 전 총리가 세운 기록(2798일)을 경신했다.
 

연속 재임 2799일…내각 지지율 34%
"'하는 척' 정치 약점 단번에 드러나"
'정치적 유산' 삼으려던 개헌도 올스톱
본인 건강 악화로 정권 운영 악재 더해

하지만 23일 발표된 마이니치 신문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34%를 기록하는 등 정권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낙제점에 가깝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책에 대한 국민적인 실망과 총리 본인의 건강 악화설까지 겹쳐 아베 정권은 최대 고비를 맞고 있는 것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건강 악화설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지난 19일 관저로 출근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건강 악화설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지난 19일 관저로 출근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흔들림 없던 '아베 1강' 한 때 지지율 76%였는데…

 
2차 집권기를 맞은 아베 정권이 주로 높은 평가를 받은 분야는 경제와 외교였다. ‘아베노믹스’에 대한 기대로 2013년 4월 당시 니혼게이자이 신문(닛케이)의 여론조사에서 내각 지지율은 무려 76%를 기록했다. 2018년 닛케이평균 주가는 한때 집권 직전의 2배가 넘는 2만4000엔대까지 올랐다. 
 
외교 분야에서도 총 81회에 걸친 외유와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밀월관계를 과시하며 “아베의 주특기는 외교”라는 말이 나올 만큼 국내적으로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아베는 선거에도 강했다. 전국 단위 선거에서 6연속 자민당이 승리를 거두면서 ‘아베 1강(强)’은 흔들릴 줄을 몰랐다. “아베의 다음은 아베”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자민당 안팎에서는 내심 아베 총리의 4선을 기대하는 시선도 있었다. 
 

코로나로 휘청…GDP 전후 최악, 지지율 34% 급락

 
바람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한 건 올해 들어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치면서다. 지난 17일 발표된 일본 4~6월 국내총생산(GDP)은 전후 최악인 -27.8%를 기록했다. '부흥 올림픽'을 외쳤던 도쿄올림픽은 내년 7월로 1년이 연기됐지만, 코로나19의 확산 세가 수습되지 않으면 개최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베노마스크’로 대표되는 거듭된 코로나19 정책 실패로 정권에 대한 지지율도 급락했다. 이날 마이니치 여론조사에서 정부의 코로나19 대책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63%가 “잘못했다”고 답했다. “잘했다”고 답한 응답자는 20%에 그쳤다.
 
미쿠리야 다카시(御厨貴) 도쿄대 명예교수는 닛케이에 “지금까지 정권이 잘해온 비결은 계속해서 정책의 간판을 바꿔 ‘하는 척’ 하는 느낌을 줬기 때문인데, 코로나19 확산으로 ‘하는 척’ 하는 정치가 멈춰버렸다”면서 “단번에 약점이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10월 일본 와카야마현 와카야마시에서 헌법 개정을 목표로 하는 실내 집회가 열린 가운데 행사장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동영상 메시지가 소개되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지난해 10월 일본 와카야마현 와카야마시에서 헌법 개정을 목표로 하는 실내 집회가 열린 가운데 행사장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동영상 메시지가 소개되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개헌? 올림픽?…최장수 총리지만 '정치적 유산'은?

 
최장수 총리로 기록됐지만 정작 ‘정치적 유산’이라고 꼽을 만한 것도 없는 상황이다. 숙원 과제인 개헌은 아베 총리가 내년 9월까지 재임하더라도 사실상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전후(戦後) 외교 총결산이라고 외쳤던 북한 납치·핵·미사일 문제 해결, 러시아와 평화조약 체결, 중·일 관계 정상화 모두 이렇다 할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연속 재임일수가 긴 역대 총리 중 사토 전 총리는 임기 중 오키나와 반환을 실현했고, 비핵 3원칙을 제창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연속 재임일수 2248일로 역대 3위인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전 총리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미·일 안보 조약을 체결한 것이 업적으로 꼽힌다.
 
아베 총리는 역대 정권이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봤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는 각의 결정을 내렸고, 여론의 강한 반대에도 안보 관련법을 통과시킨 것 정도가 업적으로 꼽힌다. 최근엔 총리 본인이 언급한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 관련 논의를 두고 "정치적 유산을 남기고 싶은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여기에 총리 본인의 건강 악화라는 악재까지 덮친 상태다. 한 주간지 보도로 시작된 건강 이상설은 지난 17일 아베 총리가 대학병원을 찾으면서 거의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자민당은 오는 27일 ‘역대 최장수 총리 재임 축하 모임’도 일단 연기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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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 반전’ 카드로 준비하고 있었던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도 11월 미국 대선 이후로 미뤄진 상황이어서, 관저 주변의 분위기는 밝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교도통신은 아베 총리의 연속 재임기록 경신과 관련해 "기치로 내건 경제 살리기 등은 아직 목표를 이루지 못했고,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비판은 그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내년 9월 자민당 총재 임기가 다가오는 가운데 건강 불안설이 부상해 정권 운영에 역풍이 불고 있다"고도 했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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