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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불륜 체념한 처용은 페르시아 출신 전염병 전문가?

중앙일보 2020.08.23 16:00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했던 '새보물 납시었네'라는 특별전시에는 국보 제325호로 지정된 '기사계첩'이 소개됐습니다.
'기사계첩'은 숙종이 노년의 신하들을 예우하기 위해 열었던 행사 이모저모를 담은 그림입니다. 한쪽에는 재미있는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까만 피부에 턱이 툭 튀어나온 탈을 쓴 무리, 바로 처용무를 추는 것이죠. 처용무는 무려 신라시대부터 시작되어 고려, 조선을 거쳐 지금까지 전해진 무용입니다. 처용은 왜 이런 독특한 외모로 기억되고 있을까요.

[픽댓]히스토리


'기사계첩'

'기사계첩'

'기사계첩'

'기사계첩'

 
'처용가'의 주인공  
우리에게 '처용가'의 주인공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아내를 범한 역신(疫神)을 노래와 춤으로 물리친 것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죠. 

 
서울 달 밝은 밤에  

밤늦도록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구나
둘은 내 것이지만 둘은 누구의 것인고?
본디 내 것이지만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 ('처용가')
 
“왕이 개운포(開雲浦, 지금의 울산항)에서 놀고 있는데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길을 잃고 말았다. 일관(日官)의 조언에 따라 절을 세우도록 하자 구름과 안개가 걷혔다. 동해의 용이 기뻐하며 일곱 아들을 거느리고 왕 앞에 나타나 기이한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하였다. 그중 한 아들이 왕을 따라 서라벌로 들어와 정사를 도우니, 이름은 처용(處容)이라 하였다.” (『삼국유사』 기이편, 처용랑 망해사조)
 
뱃길을 통해 울산항에 도착한 이슬람 교도? 
『삼국유사』에 따르면 처용은 헌강왕 때 뱃길을 통해 개운포, 그러니까 지금의 울산항으로 들어온 이방인으로 추정됩니다. 그에 대해선 일찌감치 서역에서 온 외국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각종 사서에 언급된 그의 외모 때문입니다.
『삼국사기』도 처용에 대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네 사람이 왕의 수레 앞에 와서 노래 부르고 춤을 추는데 생김새가 달랐다”며 익숙한 외모가 아니란 걸 분명히 하죠. 그래서인지 처용무(處容舞)에 사용되는 가면도 검은 얼굴과 매부리코, 길게 튀어나온 턱이 특징입니다. 
 
“왕은 나라의 동쪽 지방의 주 군에 행차하였다. 이때 알지 못하는 사람 4명이 어전에 나타나서 노래하고 춤추는데 그 모양이 괴이하고 의관도 다르므로 사람들이 말하기를 ‘산해(山海)의 정령(精靈)’이라 하였다.” (『삼국사기』)
 
화무. 이진호 처용무.

화무. 이진호 처용무.

얼마 전 오만의 문화부장관이 한국 관료들을 만난 자리에서 “처용은 오만 사람이다”라고 주장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처용을 서역, 그러니까 이슬람 세계에서 온 외국인으로 추정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이슬람인들이 남긴 기록에는 “신라로 간 외국인들은 아무도 그곳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든지 “여러 가지 이점 때문에 이슬람교도들은 신라에 와서 영구정착했다”와 같은 내용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신라에 정착했을까요. 
건조하고 사막으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살아온 그들에게 신라는 낙원처럼 보였던 것 같습니다. 실제 각종 기록에도 신라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가 남아있습니다. 
 
“그곳 백성들은 병들지 않는다. 주민들의 모습도 매우 아름답고 건강하다. 환자는 아주 드물게 발견된다.” (『제국(諸國) 유적기(Athar al-bilad)』)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신선한 공기, 맛있는 물 같은 완벽한 위생 덕분에 백성들은 병들지 않고 건강하며 집집마다 호박 향내가 난다” (『대왕들의 업적과 경이의 요약』)
 
최근에 알려진 이란의 중세 서사시 『쿠쉬나메』의 내용은 더욱 재미있습니다. 7세기 중엽 멸망한 페르시아의 마지막 왕자 아비틴이 중국 당나라를 거쳐 신라로 도망간 뒤 신라의 공주와 결혼해 정착한다는 내용입니다. 두 사람 사이엔 파리둔이라는 아이가 태어났고 훗날 파리둔은 신라의 도움을 받아 나라를 되찾습니다. 어쩌면 처용은 이 왕족 아비틴의 일행이었던 것은 아닐까요. 
 『 쿠쉬나메』의 필사본에 등장하는 삽화. 아비틴이 신라왕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 [중앙포토]

『 쿠쉬나메』의 필사본에 등장하는 삽화. 아비틴이 신라왕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 [중앙포토]

 
처용은 어떻게 파격적 대우를 받았을까 
그런데 처용은 신라에서 파격적인 대우를 받습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헌강왕이 (처용에게) 예쁜 여성을 아내로 삼게 하고, 급간(級干) 관직도 주었다”고 말합니다. 처용 외에 아랍인 중 벼슬을 받았다는 기록이 딱히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봐서 매우 특별한 경우였을 것입니다. 게다가 급간은 신라에서 성골·진골 다음으로 높은 계급인 6두품이 받을 수 있는 관직입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신라는 철저한 계급사회였습니다. 그러니까 박·석·김 등 왕족을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계급인 6두품으로 대우받았다는 것은 처용이 그저 길을 잃은 외국인이 아니라 비범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을 암시합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요.
 
헌강왕 때 서라벌에는 큰 전염병이 돌았습니다. 처용이 어느 날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와 함께 있는 역신을 보고 밖에서 춤을 춰 내쫓았다고 하죠. 그것은 처용이 역병에 걸린 신라인 아내를 치료한 사실을 설화적으로 남긴 것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아마도 신라는 이전에 없었던 전염병에 큰 혼란에 빠졌고, 처용의 대처는 당황한 신라인들 사이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 모양입니다. 그것은 이후 신라 사람들이 처용의 형상을 문에 그려 붙여서 역병 등 나쁜 기운을 물리치려 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국왕도 처용에게 급간이라는 벼슬을 내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처용은 어떻게 전염병에 대처할 수 있었을까요. 역사적으로 중국이나 한반도의 역사를 보면 천연두와 홍역 같은 전염병이 주로 중앙아시아나 중동 지역에서 접촉하는 과정에서 전파되곤 했습니다. 그래서 중국 사서에서 페스트나 천연두 사례를 전하는 기록을 보면 ‘서쪽에서 들어왔다’는 표현이 많습니다. 특히 외국인과 빈번히 교류하는 항구는 그런 위험에 늘 노출되는 곳입니다. 예를 들어 642년 중국의 큰 항구인 광저우에는 큰 페스트가 퍼졌는데, 내륙 지역은 피해가 없었다는 기록도 남아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 대외무역 경로

통일신라시대 대외무역 경로

 
이슬람 세계의 의학지식이 신라를 구하다 
한편 신라는 8~9세기에 외국과의 교역을 활발히 벌였는데 흥덕왕 9년 사치 풍조를 막기 위해 내린 교서를 보면 에머랄드(瑟瑟), 비취모(翡翠毛), 공작의 꼬리(孔雀尾) 등의 사용을 제한한다는 내용이 있을 정도입니다. 모두 국내에서 나지 않는 수입품이죠. 또, 신라의 수입품목에는 약재도 있었는데 주로 아랍과 페르시아에서 들어왔습니다. 이 무렵 이슬람 세계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의학 지식을 갖고 있기도 했습니다. 
특히 무역에 종사하면서 이곳저곳을 다녔던 서역인들은 역병에 대한 대처법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처용은 무역을 하러 왔다가 눌러앉은 약재상이었을 가능성도 제기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 울산항은 경주와 연결되는 가장 가까운 항구 중 하나였습니다.  
 
울산 남구 개운포에 떠 있는 바위섬 처용암의 표지석. 처용이 바다에서 올라온 바위라고 알려져 있다. [중앙포토]

울산 남구 개운포에 떠 있는 바위섬 처용암의 표지석. 처용이 바다에서 올라온 바위라고 알려져 있다. [중앙포토]

처용이 앞서 소개한 ‘쿠쉬나메’ 속 아비틴 왕자의 일행이었는지, 아니면 약재를 팔러 신라에 온 페르시아의 약재상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신라에 큰 전염병이 돌 때 등장한 처용이 신라의 전염병 대처에 큰 도움을 줬을 거란 추측은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전염병 대처능력이 뛰어나 벼슬에 올랐던 아랍의 이방인 처용을 보면 신라의 전염병 대처방식은 매우 적극적이면서 유연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계급, 출신 지역을 떠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에게 일을 맡겼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또, 이러한 대처는 결국 신라를 미증유의 위기에서 구하는 길이 됐습니다. 또 신라는 그의 공적에 대해 걸맞은 대우로 보상했습니다. 처용에게 이례적으로 급간이라는 높은 관직을 안겼고, 신라인들은 처용의 형상을 붙이고, 무용으로 남기며 그 공적을 잊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와 같은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우리도 참고해볼 만한 지점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유성운·김태호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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