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부산 태종대 '한복 입은 모자상'···40여년째 한자리 지킨 이유

중앙일보 2020.08.22 11:00
 
요즘도 하루 한 차례 도개식을 벌이는 부산 영도대교(영도다리). 다리 왼쪽에 보이는 갈색 건물은 애초 자살 방지 초소가 있던 자리에 들어선 관리시설이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요즘도 하루 한 차례 도개식을 벌이는 부산 영도대교(영도다리). 다리 왼쪽에 보이는 갈색 건물은 애초 자살 방지 초소가 있던 자리에 들어선 관리시설이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밤늦게 영도다리 난간에 왔다 갔다 해요. 한 몇 개월 근무해보면 이기 다운할(뛰어내릴) 건지 아닌지 눈치 보이거든. 그럼 불러가 경찰서에 가서 설득시키가 이야기 물어보면 이게 다운하러 왔다는 얘기 나오는 거죠.”

 

피란민·이주민 뒤섞여 산 역사의 흔적
국립민속박물관, 부산시와 공동 보고서

억센 부산 사투리로 그 시절을 술회하는 이 사람은 전직 경찰 출신 김말봉(남, 1939년생)씨. 뛰어난 수영 실력과 인명구조 능력 덕에 특채돼 영도경찰서 소속의 영도다리 초소에서 1966년부터 4년간 일했다. 초소는 다리에서 사람들이 뛰어들기 전에 미리 막거나 물에 경비정을 띄워 투신자 목숨을 구하는 용도로 운영됐다. 얼마나 자살하는 사람이 많았는지 이곳 초소지킴이인 경찰을 ‘자살방지특공대’라고 불렀다고 한다.  
 
김씨가 야간 순찰하며 ‘자살 방지’를 수행했던 영도다리의 정식 이름은 영도대교. 중구 남포동과 영도구 사이의 연륙교다. 1980년 부산대교가 생기기 전까지 섬인 영도와 육지를 잇는 유일한 다리였다. 6.25 전쟁 때 각지에서 온 피란민들이 전쟁통에 흩어진 가족을 찾기 위해 모인 약속장소이기도 했다. 지금도 인근에 이를 상징하는 동상이 있다. 
부산 영도다리 인근에 세워진 피란민 모습의 동상. 부산 사투리를 살려 ‘영도다리 거~서 꼭 만나재이’라고 쓰여 있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부산 영도다리 인근에 세워진 피란민 모습의 동상. 부산 사투리를 살려 ‘영도다리 거~서 꼭 만나재이’라고 쓰여 있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산업화시대 농촌을 떠난 이주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건너던 ‘희망의 다리’이자 생활고 등을 비관해 뛰어내리던 ‘죽음의 다리’이기도 했다. 바로 옆 부산대교(1980년 준공)까지 두 다리를 동시에 내려다볼 수 있는 호텔이 ‘전망 좋은 숙소’로 각광받는 요즘은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개통 직후부터 투신…'방지 초소'까지 둬 

이런 영도의 애환과 역사를 훑어볼 수 있는 민속보고서가 나왔다. 국립민속박물관이 부산광역시와 함께 ‘2021 부산민속문화의 해’ 사업의 하나로 낸 『부산 영도 민속조사 보고서』다. 지난 20일 홈페이지에 공개된 보고서는 부산의 민속문화 전체를 아우르되 지역으론 영도를 특정해 깊숙이 들여다봤다. “바다와 조선소, 해녀와 노동자, 어민과 선원, 전국 각지로부터 온 피난민과 산업이주민 등이 어우러진 부산의 축소판”(윤성용 국립민속박물관장)이라는 판단에서다. 이를 도시민속, 해양민속, 구술생애사로 나누어 총 5권으로 꾸렸다.
개통 때부터 도개교로 유명했던 부산대교(영도다리)를 부산명소로 소개한 사진엽서(부산시립박물관 소장). 공식 명칭이 영도대교인 영도다리는 처음 건설 땐 이름이 부산대교였다. [사진 부산시립박물관]

개통 때부터 도개교로 유명했던 부산대교(영도다리)를 부산명소로 소개한 사진엽서(부산시립박물관 소장). 공식 명칭이 영도대교인 영도다리는 처음 건설 땐 이름이 부산대교였다. [사진 부산시립박물관]

 
이 가운데 제4권 『영도에 살다: 삶과 생활』에서 영도다리와 태종대 자살바위를 심층 취재한 내용이 눈에 띈다. 영도다리는 2016년 총선을 앞두고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현 미래통합당) 대표가 이른바 ‘옥새 파동’을 벌인 현장으로 더 유명해졌지만 실은 1934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도개식(跳開式)으로 개통할 때부터 명소였다. 
 
무거운 철제 다리가 들린다는 소식에 개통식이 구름 인파로 넘쳤다. 당시 부산인구가 14만명이었는데 개통날 인파가 16만이었다는 믿지 못할 기록도 있다. 이후에도 다리 들리는 시간에 맞춰 구경오는 사람들이 즐비했다. 지금도 매일 오후 2시에 ‘다리 들림 쇼’를 한다. 앞서 다리 노후화 등 이유로 1966년 중단했다가 교량 정비 후 2013년부터 일종의 관광 상품으로 다시 선보이고 있다.
 

“다리 안 내려올까봐 눈물 뚝뚝 울었다”

평소엔 일반 도로처럼 느껴지니 도개교란 걸 몰랐다가 곤경에 빠지는 경우도 있었다. 보고서에 소개된 함경남도 출신 김금복(여, 1923년생)씨의 사례가 생생하다. 김씨는 6.25 전쟁 때 피난 와서 1951년 영도에 정착했다. 어느 날 아이 하나만 들쳐 업은 채 쌀 사러 자갈치시장에 다녀오는데 갑자기 다리가 들려있더란다. 
 

“나는 그게 들었다가 안 놓는지 알고 막 울었다. 아(아이)를 하나 배 안에다 옇어(넣어) 놓고 왔는데 영도다리 드니까. 내가 눈물 뚝뚝뚝 하니까 어떤 사람이 ‘좀 있으면 놓습니다. 시방 중간에 들리지 다리 놓으면서 걸어갑니다.’ 그래서 내가 울음을 그쳤다.“

 
1934년 부산 중구 용두산에서 바라본 영도대교 사진. 부경근대사료연구소 소장.

1934년 부산 중구 용두산에서 바라본 영도대교 사진. 부경근대사료연구소 소장.

통상 영도다리로 불리지만 정식 이름은 영도대교. 부산 중구 남포동과 영도구 사이의 연륙교다. 1980년도 부산대교가 생기기 전까지 섬인 영도와 육지를 잇는 유일한 다리였다. 2013년 확장 공사 후 지금 모습을 갖췄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통상 영도다리로 불리지만 정식 이름은 영도대교. 부산 중구 남포동과 영도구 사이의 연륙교다. 1980년도 부산대교가 생기기 전까지 섬인 영도와 육지를 잇는 유일한 다리였다. 2013년 확장 공사 후 지금 모습을 갖췄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조선시대까지 영도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섬이었다. 개항기 이후 어업기지로, 근대도시 부산의 배후공업지로 발달했고 이에 맞춰 영도다리 개설은 필연적이었다. “너는 영도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말이 흔한 놀림거리일 정도로 부산의 삶에 밀착해 존재해왔다. 
 
현재 영도다리 인근에 노래비가 서 있는 ‘굳세어라 금순아’는 흥남철수 작전을 통해 부산으로 넘어온 피란민이 영도다리에서 헤어진 가족을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별한 이들의 안부를 묻고, 살아갈 날을 막막해 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이니 다리 아래 점집이 성행했다. 이를 두고 ‘점바치 골목’이라 불렀다. 점집과 피란민 판잣집이 엉킨 가운데 종종 대화재가 발생해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앞서 언급했듯 영도다리엔 자살명소라는 오명도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준공된지 10여일 만에 첫 투신자살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영도경찰서는 다리 양옆에 ‘잠깐만!’이라는 팻말을 붙여 놓기도 했다. 어떤 경찰관은 부임 10여년간 248명에 이르는 사람을 구출했다고 전해진다. 
 
반면 또 다른 이들은 뛰어내린 이들 모두가 자살 시도는 아니었고 실족한 경우도 많았다고 증언한다. 아예 소문이 부풀려졌다는 시각도 있다. 김말봉씨의 경우 초소 근무 4년간 투신해서 죽은 사람은 한 명이었고, 죽으러 온 사람도 17명 정도로 기억한다. 점차 투신하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초소는 관리시설로 변했다. 김씨가 마지막 자살방지초소 지킴이였다.  
전국 유일의 도개교인 부산 영도대교가 2013년 복원·개통을 기념해 처음으로 야간에 상판을 들어올리는 모습. 영도대교는 2013년 11월27일 47년 만에 복원·개통했고 현재는 매일 한 차례, 오후 2시부터 15분 동안 상판을 들어올리고 있다. [중앙포토]

전국 유일의 도개교인 부산 영도대교가 2013년 복원·개통을 기념해 처음으로 야간에 상판을 들어올리는 모습. 영도대교는 2013년 11월27일 47년 만에 복원·개통했고 현재는 매일 한 차례, 오후 2시부터 15분 동안 상판을 들어올리고 있다. [중앙포토]

 

자살바위 위에 지었던 암자 '구명사' 

영도의 또 다른 자살명소는 ‘자살바위’다. 조선시대부터 명승지로 이름 날려온 태종대의 기암절벽 한 곳을 이른다. 태종대가 있는 해안지대는 군사요충지로서 오랫동안 민간 출입이 통제됐고 덕분에 빼어난 산세를 유지했다. 종종 짙은 안개가 끼는 벼랑이 어떤 이들에겐 자살 충동을 불렀는지 바위 위에 임자 없는 신발만 나란히 목격되는 일이 허다했다.  
부산 영도 태종대의 아찔한 기암절벽, 일명 '자살바위'. 현재 태종대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모습이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부산 영도 태종대의 아찔한 기암절벽, 일명 '자살바위'. 현재 태종대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모습이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1959년 이곳에서 관광객에게 음식을 팔며 아픈 남편이 회복되기를 기도하던 정영숙이란 여성이 있었다. 기도하러 발걸음하는 동안 숱하게 자살하려는 이를 마주쳤고 만류도 했다. 3년 만에 남편이 회복되자 은공을 갚는 마음으로 10년 걸려 작은 암자를 지었다. 
 
자살바위 부근에 자리잡은 암자 이름은 구명사(救命寺). 암자 간판 뒤 게시판엔 ‘죽음은 비겁하다 잠간(잠깐)만 참자’라는 글귀를 새겼다. 얼마 후 태종대 관광지구 정비 사업에 따라 구명사는 다른 부지로 옮겨갔다. 지금은 정영숙의 아들인 호은스님이 암자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애초 태종대 자살바위 부근에 지었다가 순환도로 공사로 인해 1972년 동삼2동 산 29번지로 이전한 암자 '구명사'.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애초 태종대 자살바위 부근에 지었다가 순환도로 공사로 인해 1972년 동삼2동 산 29번지로 이전한 암자 '구명사'.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부산시는 자살바위의 오명을 씻고자 구명사를 철거한 자리에 전망대와 함께 모자상을 건립했다.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은 모성이다. 모성을 조각에 담으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통한다”라고 조언을 따라 당시 박영수 부산시장이 홍익대 교수이자 조각가인 전뢰진에게 의뢰해 만들었다. 
 

한복 입은 모자상, 1976년부터 한자리 

3개월에 걸쳐 완성한 대형 모자상은 한복을 입은 어머니가 아들과 딸을 품에 안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젊은 사람은 온화한 표정의 어머니 얼굴에 마음을 돌리게 하고, 나이 든 사람은 자식 생각에 목숨을 지키도록 하자”는 의도였단다. 1976년 제막식을 한 모자상은 이후 태종대 전망대가 재건축된 뒤에도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부산 태종대 자살바위의 오명을 씻기 위해 1976년 만들어진 모자상. 한복을 입은 어머니가 아들과 딸을 안고 앉아 있는 모습으로 당시 홍익대 교수였던 조각가 전뢰진의 작품이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부산 태종대 자살바위의 오명을 씻기 위해 1976년 만들어진 모자상. 한복을 입은 어머니가 아들과 딸을 안고 앉아 있는 모습으로 당시 홍익대 교수였던 조각가 전뢰진의 작품이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부산 영도 태종대 전망대의 재건축 전 모습. 1976년 제막식을 한 모자상이 중심에 자리한 모습이다. 현재 전망대는 1997년부터 1년2개월 간 공사를 거쳐 지하1층, 지상 3층 규모의 현대식 건물로 변신했지만 입구엔 여전히 모자상이 안치돼 있다. [사진 새마을운동아카이브]

부산 영도 태종대 전망대의 재건축 전 모습. 1976년 제막식을 한 모자상이 중심에 자리한 모습이다. 현재 전망대는 1997년부터 1년2개월 간 공사를 거쳐 지하1층, 지상 3층 규모의 현대식 건물로 변신했지만 입구엔 여전히 모자상이 안치돼 있다. [사진 새마을운동아카이브]

국립민속박물관의 지역보고서는 2007년 제주를 시작으로 전국 9개 도별 보고서가 나왔고 특별 및 광역시로는 세종‧울산‧인천에 이어 부산이 네 번째다. 김호걸 학예연구사는 “지난 1년여에 걸쳐 민속박물관 직원 5명이 매달 열흘~보름씩 부산에 내려가 현지인 100여명을 만났다. 신문기사 등 사료에다 외부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5권짜리 보고서를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 18명의 이야기는 구술생애사의 관점에서 제3권 『영도에 오다: 이주와 정착』에 심층 인터뷰로 수록했다. 4대째 살고 있는 영도 토박이부터 일본 귀환동포, 이북 피란민, 타 지역 이주민 등 다양한 삶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김 연구사는 “신석기 시대 동삼동 패총이 보여주듯 영도에 사람이 산 건 오래지만 토박이는 거의 없다”면서 “개항 이후 여러 격변기를 거치면서 모여든 영도 사람들이 곧 우리 근현대사”라고 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이번 보고서를 토대로 내년 ‘부산민속문화의 해’에 관련 전시를 계획 중이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