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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사드, 피의 암살 공작 벌였던 아랍에미리트 설득해 수교 임무 완수하다

중앙일보 2020.08.22 08:30
이스라엘이 아랍 국가인 아랍에미리트(UAE)와 수교하면서 가장 바빠진 인물이 해외 정보·공작 기관인 모사드의 요시 코헨 국장이다. ‘더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 ‘예루살렘 포스트’ 등 현지 매체를 종합하면 코헨은 현재 아랍에미리트 수교 절차 마무리는 물론, 다음 수교국을 물색하고 접촉·협상하느라 바쁘다. 모사드의 인기가 상종가를 치고 있다는 이야기다. 모사드는 이스라엘이 지난 8월 13일 아랍국가인 아랍에미리트(UAE)와 수교하는 과정에서 활약한 것은 물론 바레인·오만·모로코·수단 등과 추가 국교 협의를 하는 과정도 주도하고 있다.  

정보기관 모사드, 아랍권 수교 주도
코헨 국장,바레인 총리와 직접 통화
아랍에미리트로 날아가 절차 마무리
두바이는 10년 전 암살공작 벌인 곳
이스라엘 병사 살해 팔 요원 암살공작
어제의 공작장소가 오늘의 수교지로
바레인과는 보안 지원하며 끈 유지해
오만에는 2차례 이스라엘 총리 방문
모로코는 왕실 보안 돕고 관계 유지
일부 아랍군주국은 모사드 먼저 찾아
상대 수요 찾아 제공하고 외교 연결

이스라엘 해외정보기관인 모사드의 요시 코헨 국장. 외모가 출중하고 옷을 잘 입어 '모델'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히브리어 외에도 기본어인 영어와 프랑스어, 그리고 아랍어를 농통하게 구사한다. 해외정보기관 수장의 기본 능력이다. 이스라엘이 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 아랍 국가로는 처음 수교한 아랍에미리트(UAE)에 가장 먼저 날아가 관련 보안 협의를 진행했다. 다음 수교국으로 거론되는 바레인의 총리와 직접 통화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의 아랍권 수교는 해외정보기관인 모사드의 오랜 노력이 만든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AFP=연합뉴스

이스라엘 해외정보기관인 모사드의 요시 코헨 국장. 외모가 출중하고 옷을 잘 입어 '모델'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히브리어 외에도 기본어인 영어와 프랑스어, 그리고 아랍어를 농통하게 구사한다. 해외정보기관 수장의 기본 능력이다. 이스라엘이 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 아랍 국가로는 처음 수교한 아랍에미리트(UAE)에 가장 먼저 날아가 관련 보안 협의를 진행했다. 다음 수교국으로 거론되는 바레인의 총리와 직접 통화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의 아랍권 수교는 해외정보기관인 모사드의 오랜 노력이 만든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AFP=연합뉴스

 

10년 전 암살공작 현장에 날아간 모사드 수장  

코헨 국장은 아랍에미리트 수교 직후 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 연안의 또 다른 아랍 국가인 바레인의 할리파 빈 술만 알할리파 총리와 통화했다. 누가 봐도 수교와 관련한 통화로 짐작할 수 있다. 아랍 세계에서 가장 증오하는 이스라엘의 해외정보 수장이 아랍 국가인 바레인의 총리와 대놓고 통화할 만큼 그동안 모사드의 활동 반경이 넓고도 깊었음을 보여준다.  
지난 8월 13일 수교를 발표한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왼쪽 사진)와 아랍아메리트(UAE)의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흐얀 왕세제. AFP=연합뉴스

지난 8월 13일 수교를 발표한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왼쪽 사진)와 아랍아메리트(UAE)의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흐얀 왕세제. AFP=연합뉴스

코헨은 아랍에미리트와 수교 관련 보안 협상을 마무리하기 위해 아랍에미리트로 날아갔다. 아랍에미리트는 10년 전인 2010년 모사드가 암살 공작을 편 현장이다. 당시 모사드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무기공급 책임자로 이스라엘 군인 2명을 납치·살해하기도 했던 마무드 알마부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한 호텔에서 살해한 것으로 지목받는다. 
중동에서 발생산 의문의 암살 ( 캴레드 메샬 , 이마드 무그니예 , 무사드알리 모하마디 , 마흐무드 알마부 )

중동에서 발생산 의문의 암살 ( 캴레드 메샬 , 이마드 무그니예 , 무사드알리 모하마디 , 마흐무드 알마부 )

당시 모사드 요원으로 짐작되는 남녀가 호텔을 드나드는 CCTV가 공개됐다. 이들은 유럽 국가의 여권을 사용해 아랍에미리트를 드나들었는데 모두 가짜로 밝혀졌다. 유럽 국가는 이스라엘에 항의했지만 모사드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런 어두운 공작의 현장에 모사드 수장이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수교 절차 마무리를 위해 날아간 것이다.  
바레인의 할리파 빈 살만 알할리파 총리.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의 수교 발표 직후 이스라엘의 해외정보기관인 모사드의 요시 코헨 국장과 통화한 것으로 이스라엘 언론에 보도됐다. 로이터=연합뉴스

바레인의 할리파 빈 살만 알할리파 총리.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의 수교 발표 직후 이스라엘의 해외정보기관인 모사드의 요시 코헨 국장과 통화한 것으로 이스라엘 언론에 보도됐다. 로이터=연합뉴스

 

모사드 국장, 바레인 총리와 통화

그를 태운 전용기는 사우디아라비아 상공을 지난 아랍에미리트로 향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공식적으로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은 적성국가다. 하지만 코헨이 국장으로 있는 모사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그 동맹국인 아랍에미리트에 보안이나 예멘 반군 관련 정보를 수시로 넘겨주면서 신용을 쌓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는 수니파 연합군을 결성해 2015년 3월부터 예멘 내전에 개입해 시아파로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족 반군과 전투를 벌여왔다.  
코헨 국장은 2016년 모사드 12대 국장에 오른 그는 30년간 모사드에 근무하며 해외 정보수집에 주력했다. 모국어인 히브리어는 물론 영어·프랑스어·아랍어에 능통하다. 그의 외국어 실력은 관련 언어를 사용하는 지역에서 활약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모사드 재임 중 총리 안보보좌관으로 잠깐 옮겼다가 국장으로 복귀했다. 외모가 뛰어나고 옷을 잘 입어 별명이 ‘모델’이다. 하지만 모사드 요원을 겉모습으로만 평가할 순 없다. 코헨은 유능한 현장요원이자 엄격한 보스로 알려졌다. 어떤 일을 어떻게 했기에 이런 평가를 얻었는지는 비밀이다. 건국 전 시오니스트 민병대인 이르군 요원에서 활약했던 아들로 태어났다. 대를 이어 나라에 충성하는 셈이다.  
 
모로코의 무함마드 5세 국왕. 모로코는 이스라엘과 미수교국이지만 선대 국광인 하산 2세 때부터 보안과 정보 분야에서 모사드와 비밀리에 접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은 서로 조문 사절을 보내는 등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모로코의 무함마드 5세 국왕. 모로코는 이스라엘과 미수교국이지만 선대 국광인 하산 2세 때부터 보안과 정보 분야에서 모사드와 비밀리에 접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은 서로 조문 사절을 보내는 등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아랍 군주들, 정보·보안 위해 모사드 찾아

코헨의 활약에서 보듯이 이스라엘이 아랍권 국가인 아랍에미리트(UAE)와 수교를 이끈 데는 해외 정보·공작 기관인 모사드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모사드는 단순히 정보를 수집하고 판단하는 것을 넘어 이스라엘의 국익을 위해 적성국가·미수교국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펼쳐왔다. 입지가 불안한 일부 아랍 군주국가는 모사드가 보유한 막강한 정보력과 공작 능력, 보안 능력을 탐내 비밀리에 협력을 유지해왔다. 이런 비밀 접촉과 비공식 관계가 쌓이고 쌓여 마침내 아랍에미리트와의 수교를 얻어낸 셈이다. 특히 바레인, 모로코, 오만과는 국교는 없지만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비수교국, 비승인 국과의 접촉은 모사드가 담당해왔다.  
하미드 빈 이샤 알할리파 바레인 국왕. 사진=위키피디아

하미드 빈 이샤 알할리파 바레인 국왕. 사진=위키피디아

 

바레인, 국왕이 미국에 모사드 연결 부탁

중동 군주국가 바레인은 오랫동안 모사드를 통해 이스라엘과 비밀 관계를 유지해왔다. 국민은 대부분 이슬람 시아파를 따르는데, 군주는 수니파이기 때문에 왕실의 보안이 시급한 상황이다. 2011년 아랍의 봄 당시에는 다리 하나를 맞댄 수니파 중심국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군대와 경찰을 보내 왕실을 보호했다. 불안한 바레인 왕실은 보안과 정보 분야에 노하우가 많은 모사드를 필요로 했을 것이고, 실제 비밀리에 도움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추측은 2010년 11월 28일 위키리크스가 ‘1996년부터 2010년 말까지 미국 국무부가 전 세계 274개 미 대사관과 주고받은 공식 외교문서’를 공개하면서 이미 기정사실화했다. 2005년 바레인의 하마드 빈 이사 알할리파 국왕이 미국 대사와 만나 모사드 요원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 공개됐다. 바레인과 모사드 요원을 비롯한 이스라엘 관리들과의 비밀 접촉이 간접적으로 드러난 셈이다. 국왕은 관리들에게 이스라엘을 ‘적’이나 ‘시온주의자 놈들’로 부르지 말라고 지시한 것으로 보도됐다. 아랍국가 관리들이 이스라엘을 부를 때 일상적으로 쓰는 용어다.  
그 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아랍권과 수교를 추진하면서 바레인 여권 소지자는 도착 비자를 받고 이스라엘을 방문할 수 있게 됐다. 바레인은 이관과의 긴장이 고조되자 더욱 이스라엘에 밀착했다. 2018년 이스라엘의 ‘존재 권리’를 인정했다. 다른 아랍권은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부인한다.  
2019년은 양국 관계가 무르익은 해로 통한다. 현재 아랍에미리트 다음 수교국이 바레인이 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이 많은 근거다. 2019년 6월 바레인 당국은 자국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경제·평화 워크숍을 열었다. 경제·평화 개념은 이스라엘이 경제적인 도움을 주면서 평화를 얻는다는 개념으로 네타냐후가 주장해온 방식이다. 7월에는 바레인의 할리드 빈 아메드 알할리파 외교장관이 미국에서 이스라엘의 아스라엘 카츠 외교장관을 만날 정도로 관계가 무르익었다. 12월에는 바레인에서 열린 종교 간 대화에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랍비(유대교 지도자)인 숄모 아마르가 참석했다. 양국 사이에 이미 금기가 사라진 지 오래다. 양국 사이에 끈을 이어준 일등 공신이 모사드란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비밀이 됐다.  
2018년 10월 오만의 카부스 국왕이 자국을 방문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만나고 있다. 오만은 이스라엘와 미수교국이지만 아랍권의 군사개입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오만을 찾은 이스라엘 총리는 2명이나 된다. AP=연합뉴스

2018년 10월 오만의 카부스 국왕이 자국을 방문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만나고 있다. 오만은 이스라엘와 미수교국이지만 아랍권의 군사개입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오만을 찾은 이스라엘 총리는 2명이나 된다. AP=연합뉴스

 

오만, 미승인 이스라엘 총리 두 차례나 맞아  

서쪽으로 사우디와 접경하고 중동 군주국가 오만은 아랍 세계에서 독특한 입장을 보여왔다.  서쪽으로 이슬람 수니파 중심국가 사우디아라비아와 658㎞에 걸쳐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북쪽 역외영토인 무산담은 호르무즈 해협을 경계로 시아파 핵심국가인 이란과 마주 보고 있다. 정작 오만 국민은 대부분이 수니파도 시아파도 아닌 관용의 종파인 이바드파를 따른다. 이는 국제관계에도 이어져 오만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어느 한쪽을 편들지 않고 양쪽을 중재하는 입장이다.  
대이스라엘 정책도 독특하다. 다른 아랍권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을 승인하지도 않지만 아랍권과 이스라엘 간의 무력 충돌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왔다. 이 때문에 양국은 별도의 원한 관계가 없다. 오만은 모사드 측과 필요하면 대화와 접촉을 해왔다.  
그 결과 1994년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오만을 방문해 카부스 빈 사이드 알사이드 술탄(이슬람 군주)와 만났다. 모사드가 다리를 놓았음은 물론이다. 물이 부족한 오만은 이스라엘의 발달된 수리 기술을 도입하는 데 관심을 보였다. 1995년 라빈 총리가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상에 불만을 품은 예멘 출신의 유대인 극우주의자에게 살해되자 오만은 유수프 빈 알라위 빈 압둘라 외교장관을 예루살렘에 보내 조문했다.  
하이삼 빈 타리크 오만 국왕. 카부스 국왕의 좌카로 지난 1월 왕위를 계승한 그가 이스라엘과 관계 개선에 나설지 주목된다. 로이터=연합뉴스

하이삼 빈 타리크 오만 국왕. 카부스 국왕의 좌카로 지난 1월 왕위를 계승한 그가 이스라엘과 관계 개선에 나설지 주목된다. 로이터=연합뉴스

그 뒤 1996년 오만과 이스라엘은 상호 대표부 설치에 합의했다. 공식 관계는 2000년 팔레스타인에서 제2차 인티파타가 벌어지면서 끊겼다. 그럼에도 2008년 카타르에서 오만의 유수프 빈 알라위 빈 압둘라 외교장관과 이스라엘의 트지피 리브니 외교장관이 만나는 등 관계의 끈을 유지하고 있다. 모사드가 두 나라를 연결했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2018년 10월에는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비밀리에 오만을 방문해 카부스 빈 사이드 알사이드 국왕을 만나고 돌아오는 극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미수교국과 이런 사건을 만들어 내는 것은 누가 봐도 모사드의 작품이다. 당시 양국 수교의 기대가 있었지만 카부스 국왕이 암 투병을 하면서 이뤄지지 못했다. 카부스 국왕이 지난 1월 11일 서거하자 이스라엘은 “위대한 인물”이라는 성명을 내놨다. 카부스의 뒤를 이어 조카인 하이삼 빈 타리크 알사이드 국왕이 즉위했다. 아랍에미리트와 이스라엘의 수교 이후 그 다음으로 오만이 유력해지는 상황이다.    
익스라엘과 관계 개선에 적극적이었던 하산 2세 전 모로코 국왕. 왕실 보호를 위한 보안과 정보 등에 모사드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반정부 인사가 프랑스에서 갑자기 사라지는 일도 있었는데 공작 때문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사진=네덜란드 국립문서보관소

익스라엘과 관계 개선에 적극적이었던 하산 2세 전 모로코 국왕. 왕실 보호를 위한 보안과 정보 등에 모사드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반정부 인사가 프랑스에서 갑자기 사라지는 일도 있었는데 공작 때문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사진=네덜란드 국립문서보관소

 

모로코 왕실, 모사드 접촉해 도움 얻어  

모로코 왕실은 전통적으로 모사드를 통해 이스라엘과 비밀 관계를 유지해왔다. 여기에는 역사적인 연유가 있다. 17세기 이래 알라위 왕조가 지배하던 이슬람 국가 모로코는 20세기 초 프랑스·스페인·독일 등 제국주의 국가의 침탈과 충돌로 1912년 국토 대부분이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었으며 일부는 스페인이 지배했다. 모로코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립운동을 벌인 결과 1956년 독립을 이루고 알라위 왕조가 지배권을 회복했다. 알라위 왕조는 모하메드 5세에 이어 1961년 하산 2세(1929~1999년, 재위 1961~1999년)가 즉위하면서 권력을 강화했으며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국민과 충돌했다. 하산2세의 모로코는 다른 아랍국가처럼 이스라엘과 국교를 맺지 않았지만 뒤로는 정권 안정을 위해 모사드에 도움을 청했다. 한 반정부 인사가 프랑스에서 갑자기 실종되는 사건도 발생했는데 공작 때문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산 2세는 1971년과 1972년 두 차례의 쿠데타와 암살 기도를 넘겼다. 2차 쿠데타 때는 타고 있는 여객기가 쿠데타 군 전투기의 기총소사를 받아 정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정도다. 그 뒤 모로코 왕실은 모사드와 비밀리에 접촉해 정보 등에서 협력을 받아왔다.  
그럼에도 1973년 욤 키푸르 전쟁(제4차 중동전쟁) 당시 모로코는 다른 아랍국가와 마찬가지로 이집트에 파병했다. 비밀리에 모사드로부터 왕실 보호에 도움을 받았지만, 겉으로는 아랍민족주의의 대의를 따를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전 대통령. 총리도 여러 차례 지냈다. [중앙포토]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전 대통령. 총리도 여러 차례 지냈다. [중앙포토]

하지만 양국은 정상 외교를 통해 관계 개선을 추구했다. 1986년 하산 2세는 이스라엘의 평화주의자인 시몬 페레스 당시 총리를 초청해 회담했다. 아랍권 국가가 이스라엘 총리를 받아들인 것은 이집트의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다. 미수교국인 모로코와의 이런 외교활동은 해외정보기관인 모사드의 주요 업무다.  
이집트를 방문한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총리(왼쪽)에게 알리 르티피 이집트 총리가 회담 도중 담배불을 붙여주고 있다. [중앙포토]

이집트를 방문한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총리(왼쪽)에게 알리 르티피 이집트 총리가 회담 도중 담배불을 붙여주고 있다. [중앙포토]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오슬로 협정을 맺고 팔레스타인 자치에 합의하자 모로코는 이스라엘과 연락 사무소를 상호 설치했다. 1999년 하산 5세가 서거하자 당시 이스라엘 총리였던 에후드 바라크는 모로코 수도 라바트 출신의 이스라엘 외무장관 다비드 레비와 함께 장례식에 참석했다.  
하지만 2000년 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 알아크사 사원을 둘러싸고 팔레스타인인들이 2차 인티파타(민중봉기)를 일으키면서 모로코-이스라엘 연락 사무소는 폐쇄됐다. 하지만 무함마드 6세는 2016년 9월 시몬 페레스 전 총리가 별세하자 개인 보좌관인 앙드레 아줄라이를 보내 국장에 참가하게 했다. 모사드가 여전히 모로코와 채널을 유지했다는 이야기다.  
모사드 로고. 모사드는 '정보 및 특수작전 연구소'라는 뜻의 길다란 헤브루어 이름의 약자다. 이름은 연구소지만 연구보다 실천이 우선인 조직이다.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지략이 많으면 평안울 누리느니라"라는 구약성서 잠언 11장 14절을 실천하는 조직이다. 정보기관의 성과는 국가안보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실증한 조직이기도 하다. [모사드 홈페이지]

모사드 로고. 모사드는 '정보 및 특수작전 연구소'라는 뜻의 길다란 헤브루어 이름의 약자다. 이름은 연구소지만 연구보다 실천이 우선인 조직이다.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지략이 많으면 평안울 누리느니라"라는 구약성서 잠언 11장 14절을 실천하는 조직이다. 정보기관의 성과는 국가안보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실증한 조직이기도 하다. [모사드 홈페이지]

 

모사드 작전·공작이 화해의 문 열어

이처럼 이스라엘의 해외 정보기관 모사드는 아랍의 적성국가에서 줄기차게 활동하며 이스라엘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오랜 시간에 걸친 기다림, 지치지 않는 노력, 끊임없는 도전, 그리고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채고 접근하는 감각이 오늘날 이스라엘과 아랍세계의 화해의 문을 열고 있는 셈이다. 모사드의 활약은 해외정보기관이 왜 존재하는지를 보여주고, 어떻게 활동해야 하는지를 웅변한다. 만일 이스라엘과 아랍권과의 수교가 일부 군주국가에 머물면서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치더라도 모사드는 끈질기게 그다음을 또 준비할 것이다. 역사와 임무는 계속되기 때문이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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