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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하는 거 빼고 하자"...보광동의 작은 카페가 서울 커피씬을 바꾼 비결은

중앙일보 2020.08.22 00:30
보광동 언덕길에 자리한 헬카페는 ‘커피 좀 마신다’는 사람들에겐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꼽힌다. 그만큼 커피 맛 좋기로 유명하다. 맛집 소개 TV 프로그램과 허영만 화백의 만화에 소개되며 대중적 인지도까지 쌓았다. 하지만 헬카페를 단순히 커피 맛 좋은 곳으로만 바라보기엔 부족하다. 커피 업계에선 서울의 커피씬을 바꿔놨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임성은 대표는 “요즘은 카페를 열 때 쉽게 여는데 헬카페를 열 당시만 해도 대기업 프랜차이즈 외에는 스몰 브랜드 커피전문점이 드물었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리스타 대회에서 수상하거나, 실력 있다고 소문이 나면, 기업에서 스카우트해가는 일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헬카페 창업 당시 8년 차 바리스타였던 임 대표는 “회사에 속하면, 커피에 쏟는 시간보다 매니저로서 관리나 문서 작업을 주로 해야 하는데 현장에 있고 싶었다”고 했다. 
보광동 언덕길에 자리한 헬카페로스터스. 커피 매니아들에겐 커피 맛집으로, 업계에선 커피씬을 바꾼 곳으로 유명하다. [사진 헬카페]

보광동 언덕길에 자리한 헬카페로스터스. 커피 매니아들에겐 커피 맛집으로, 업계에선 커피씬을 바꾼 곳으로 유명하다. [사진 헬카페]

같은 뜻의 권요섭 바리스타와 함께 2013년 지금의 자리에 헬카페를 열었다. “한달 동안 용산구 곳곳을 다니며 시세를 알아봤는데 지금 가게에 와보니, 이 정도 시세면 망해도 좋을 것 같다”는 이유였다. 카푸치노를 앞에서 내려주고, 잔을 얼리고, 좋은 얼음을 쓰는 등 우리가 해보고 싶은 걸 다 해봐도 가게가 작으니 크게 손해 보지 않겠다는 마음이었다고. 가게를 열고 임성은 대표는 에스프레소 커피를, 권요섭 바리스타는 전통 드립 방식으로 커피를 만들었다. 망해도 된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지만, 커피를 향한 두 사람의 애정과 열정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커피 한잔 맛보기 위해 높은 언덕길을 마다치 않고 찾아오는 사람이 늘었고 주말엔 줄이 늘어섰다. 헬카페 처럼 매장에 꽃을 꽂고, 좋은 스피커를 들이는 카페도 늘었다. 헬카페는 규모는 작지만, 자신들만의 명확한 철학을 보여줌으로써, 커피 업계를 바꿔가고 있다. 지식 플랫폼 폴인이 9월 7일부터 여는 〈폴인스터디 : 스페셜티 커피로 배우는 비즈니스 전략〉에서 작지만 강한 브랜드의 탄생을 주제로 임 대표에게 강연을 부탁한 이유다. 다음은 임 대표와의 일문일답.  
헬카페 임성은 대표. [사진 헬카페]

헬카페 임성은 대표. [사진 헬카페]

 
망해도 된다는 생각으로 매장을 열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망하려면 잘 망해야겠다는 생각이었죠. 이상한 짓 하지 말고요. 예를 들어 오픈과 마감 시간을 지키고 함께 일하는 직원들의 임금을 제대로 챙겨주는 것처럼 기본적인 것을 잘 지키자고 생각했어요. 가게를 연 지 8년 됐는데, 전날 술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지각한 적이 없어요. 직원들에게도 “월급이 하루 밀리면 내가 까먹은 걸 수도 있으니 전화하고, 이틀이 돼도 입금 안 되면 신고하라”고 해요. 대표가 둘 다 현역 출신이고 계속 커피를 만드는데 직원을 착취하면서 우리 미래를 위해 희생해달라고 하면 안 되잖아요. 제가 망하는 건 괜찮아도 직원들 월급은 줘야 하니 더 열심히 일해야죠.
 
헬카페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요. 
처음부터 남들이 하는 걸 따라 하고 싶지 않았어요. 한국은 유행이 강한데 유행을 따르면 그만큼 자주 바꿔야 하죠. 예를 들어 2015년에 옆 가게를 터서 확장했는데, 저는 기존 매장과 똑같이 하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권 대표가 요즘 뭐가 유행하는지 묻더라고요. 티크 목과 에디슨 전구가 유행이라고 했더니 그걸 다 빼고 하자고 해서 그렇게 하니 쉽더라고요. 남들이 하는 대로 하지 않다 보니 지금의 헬카페가 된 것 같아요. 커피도 마찬가지죠. 지금도 저희처럼 핸드드립과 기계로 추출하는 에스프레소를 같이 먹을 수 있는 곳은 드물어요. 늘 경계하지만 어쩔 수 없이 어딘가와 늘 비교되죠. 요즘 커피를 잘하는 친구들이 다이렉트로 좋은 원두를 가져와 약배전으로 이게 좋다고 하면 저는 그 대신 반대에 있는 걸 생각하려고 노력해요.
 
사업적으로 보면 원두납품의 수익성이 좋을 텐데, 그동안 하지 않은 이유는요.   
납품 문의는 많았는데 시기상조라고 생각했어요. 급하게 수익이 욕심나서 원두를 납품하면 제대로 브랜드가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선 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헬카페라는 브랜드가 확실하게 자리잡힌 후에 하고 싶었거든요. 요즘 본격적으로 로스터리를 준비하고 있고 곧 납품도 할 계획이에요.  
 
헬카페는 업계를 불문하고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해 굿즈를 만든다. 사진은 조상권도자문화재단과 협업해 만든 라떼 잔. [사진 헬카페]

헬카페는 업계를 불문하고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해 굿즈를 만든다. 사진은 조상권도자문화재단과 협업해 만든 라떼 잔. [사진 헬카페]

헬카페를 얘기할 때 볼펜이나 코스터 같은 콜라보레이션 굿즈도 빼놓을 수 없죠.   
JEFF와 함께 가죽 코스터도 만들고 프릳츠, 펠트, 세컨드커피 등 친한 커피 업계 동료들과 달력도 만들었고 모나미랑 볼펜도 만들었어요. 바른생각과 콘돔도 만들고요. 사실 수익성만 따지면 굿즈는 대부분 실패예요. 안 팔렸다는 게 아니라, 이윤을 남기려고 한 게 아니라는 거죠. 남들이 많이 하는 것 말고 다른 것을 하고 싶고, 잘 만들면 선물도 할 수 있어서 좋잖아요. 무엇보다 굿즈도 브랜딩에 도움이 돼요. 좋은 걸 팔면, 브랜드 이미지가 좋아지니까요. 브랜드를 설명하려면 그 과정이 쉽지 않은데 좋은 제품은 경험하면 바로 알잖아요. 운 좋게도 주변에 진심으로 응원해주시고 도와주려는 분들이 많으세요. 전화 한 통으로 “이런 걸 해보죠”라고 하면 같이 해주세요.  
 
카페 폐업률이 높아요. 오래 사랑받는 카페 비결이 뭘까요.   
카페가 오래 가려면 계속 고민해야 해요. 카페도 사람처럼 나이 들고 늙으니까요. 그런데 카페를 하면 나르시시즘에 빠지기 쉬워요. 나르시시즘에 빠지면 변화가 없죠. 저도 늘 고민해요. 예를 들어 센터 피스는 손님에게 하는 인사라고 생각해서, 늘 신경 쓰죠. 이 작은 매장에 들이는 꽃값만 1년에 1000만원이 넘어요. 
 
카페 창업을 고민하는 분들이 많아요. 업계 계신 분들은 다들 말리고 싶다고 하시던데,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으세요.  
먼저 정말로 카페가 좋은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세요. 이걸로 밥 먹고 사느냐는 나중에 생각해도 돼요, 사업은 운도 따라야 하고 무엇보다 산업 전망은 제가 할 얘기가 아닌 것 같아요. 다만 자신이 그 공간에 1년, 5년 있을 수 있는지 먼저 생각해야 해요. 카페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건 정말 지루해요. 갇혀 있는 거랑 같죠. 카페를 만드는 건 자기 감옥을 만드는 일이거든요, 예쁜 감옥. 카페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어요. 손님으로 가면 말이죠. 그런데 한 매장에서 5일 내내 가보세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리 잡고 앉아서, 2시간마다 음료 주문하면서 그렇게 5일 해보시면 잠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업무 볼 때와는 다른 점을 느껴집니다.
폴인은 조원진 커피칼럼니스트와 함께 9월부터 스페셜티 커피를 주제로 다양한 비즈니스 전략을 배울 수 있는 폴인스터디 〈스페셜티 커피로 배우는 비즈니스 전략〉을 연다. [사진 폴인]

폴인은 조원진 커피칼럼니스트와 함께 9월부터 스페셜티 커피를 주제로 다양한 비즈니스 전략을 배울 수 있는 폴인스터디 〈스페셜티 커피로 배우는 비즈니스 전략〉을 연다. [사진 폴인]

 
임성은 대표는〈폴인스터디 : 스페셜티 커피로 배우는 비즈니스 전략〉에서 더 구체적인 브랜딩과 비즈니스 전략을 이야기할 예정이다. 조원진 커피 칼럼니스트가 이끄는 스터디엔 이종훈 커피그래피티 대표가 비즈니스 모델 차별화 전략, 어니언의 김성조(패브리커) 작가와 김준연 이사가 사람을 끄는 공간과 커피, 커피플레이스의 정동욱 대표가 상생하는 프랜차이즈 전략, 베르크 로스터스가 로컬 브랜드의 생존법 등 스페셜티 커피를 주제로 한 다양한 비즈니스 관점과 브랜딩 전략을 배울 수 있다. 참여 신청은 폴인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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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 송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