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설처럼 읽히는 베르베르의 희곡

중앙선데이 2020.08.22 00:21 700호 21면 지면보기
심판

심판

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열린책들
 
병원 침대에 파자마 차림의 60대 남자가 앉아 있다. 이 남자는 조금 전 폐암 수술을 받은 주인공, 아나톨 피숑이다. 그의 직업은 판사‘였다’. 그는 천상에서 피고인이 되어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심판을 받는 중이다. 아나톨의 수호천사는 변호사가 되어 재판장에게 그의 좋은 면을 부각하려 노력하지만, 검사는 아나톨의 살아생전 죄목을 조목조목 짚어낸다.
 
어린 시절 친구를 때린 죄, 섭리에 어긋나는 연을 맺은 죄, 873번의 신호 위반과 1525번의 속도위반을 한 죄, 권태를 느끼면서도 행복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죄…. 그중에서도 최악은 자신의 재능을 직업으로 삼지 않은 죄. “지나치게 평온하고 지나치게 틀에 박힌 삶을 선택하고,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등한시하고, 운명적 사랑에 실패함으로써 피숑씨는 배신을 저질렀습니다. 자기 자신을 배신한 셈이죠.”
 
지난 생의 대차대조표 앞에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나톨과 그의 수호천사는 ‘삶의 형’, 즉 다시 태어나는 형벌을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윤회와 업보, 삶의 고행이라는 설정이 등장한다. 동양적 사상과 서구적 가치관, 미래적 상상력을 맛깔나게 버무릴 줄 아는 작가답다.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두 번째 희곡 작품이다. 3개월 전 국내 출간된 소설 『기억』에서 전생에 대해 다뤘던 작가가 이번에는 환생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왔다. 희곡이지만 소설처럼 읽힌다. 무대 장치나 연극적 상상력보다는 흥미로운 주제의식, 주고받는 대사의 힘이 크다.
 
“인간들은 자신의 행복을 일구기보다 불행을 줄이려고 애쓰죠.” 인간이라는 존재를 타자적 관점에서 이리 돌려보고 저리 뜯어보는 베르베르의 특기는 이번에도 잘 발휘됐다. 특유의 비틀기와 유머도 여전하다. 두어 시간이면 책장을 덮을 정도로 단숨에 읽힌다. 마지막에 반전도 심어뒀다. 2015년 프랑스 출간 후 세 차례 무대에 올려진 이 작품을 국내에서도 공연으로 만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최은혜 기자 choi.eunhye1@joongang.co.kr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