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모델 서고 2억, 당뇨 알아채고 멍멍…‘개바쁜’ 개들도 있다

중앙선데이 2020.08.22 00:02 700호 24면 지면보기

견공, 직업의 세계 〈1〉 프롤로그

견공, 직업의 세계

견공, 직업의 세계

얼마 전 지인이 내게 말했다. “다음 생에는 너의 개로 태어나겠어!”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요즘, 개와 함께 안 해본 것이 별로 없는 나를 보면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다 싶다. 5년 전, 나는 사람과 반려견이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문화를 지면에 담아 보겠다며 일명 ‘개 잡지’를 창간했다. 매거진 시장이 내리막인 상황에서도 많은 것을 시도하며 전문화와 고급화를 추구한 결과 나름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다. 그 사이에 나의 반려견들의 나이는 이미 10살, 9살로 노령기에 들어섰다.  
 

반려동물 양육인구 1000만 시대
탐지견·의학경보견 등 직업 다양

개의 유전자 속 ‘열일 DNA’ 잠재
테라피 독은 치료하며 행복 느껴

애완견, 사람 기분 맞추는데 혼신
잠자리·먹이의 대가 치르는 셈

소형견의 경우 장수하면 20살까지는 살 수 있다고 하니 이제 견생의 반을 막 넘긴 셈이다. 생의 고단함 없이 그저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기만 하면 감사한 나의 개들이 남들 눈에는 부러워 보일 수도 있겠다. 반려동물 트렌드 최일선에서 일하는 내 눈에도 호사스러워 보이는 것이 오늘날의 반려견 시장이다. 주인의 부를 대신 과시해줄 다이아몬드 장식 목줄이 나오더니, 최근에는 웰빙을 고려한 친환경 소재로 집이나 가구를 만드는 것이 대세다. 반려견 동반 레스토랑이나 여행 패키지 상품은 물론 집 전체를 반려동물과 함께 살기 좋도록 리뉴얼하는 인테리어 상품까지 등장했다. 이런 모습을 보면 문득 의문이 든다. 개들이 호강하는 시대가 온 것일까, 아니면 이 모든 것을 함께 누리고 있으니 내가 호강하는 시대인가.
  
# 개는 원래 일하는 동물이었다
 
개와 인간이 관계를 맺은 1만 5000년의 역사 중 개들이 지금과 같이 ‘반려견’으로 지낸 시간은 겨우 100여 년에 불과하다. 그 100여 년 동안 인간의 사랑을 받으며 특유의 재능이 다소 약해졌다고는 하나, 개의 유전자 속에는 여전히 많은 능력이 잠재되어 있다. 쉽게 말해 ‘열 일 DNA’ 가 흐르는 것이다.
 
맹인안내견·경비견·군견·구조견·목축견 등 전통적인 분야에서부터 치유견모델견 등 최근 주목받고 있는 직업견까지 …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개들의 직업 세계 또한 사람만큼이나 다양하다. 반려견의 호강시대에도 열 사람 몫을 거뜬히 해내는 이 직업견들의 이야기를 잠깐 해보고자 한다. 우선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대표적인 개의 직업은 탐지견,  인명 구조견, 맹인 안내견 등으로 사람이 하지 못하는 어려운 일을 해내는 공익적 임무를 수행한다.
 
특히 지난 4월 총선에서 미래한국당 비례대표로 시각장애인 김예지씨가 당선되며 안내견 ‘조이’는 헌정사상 최초로 국회 본회의장에 입성한 개로 기사화되기도 했다.
 
비교적 덜 알려졌지만, 우리 일상 속으로 깊게 파고들어 삶의 질을 높여주는 새로운 직업군의 개도 있다. 해외에서 주목하는 특수 직업인 의학 경보견은 놀라운 후각 능력으로 사람의 신체에 나타나는 미세한 변화를 감지해 알려준다. 당뇨나 각종 발작 등을 사전에 파악해 주인에게 이를 알리거나, 약물을 직접 가져다주는 식이다. 최근에는 폐암까지 경고가 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다.
 
광고계의 러브콜을 받는 모델견 또한 주목할 만하다. 광고계에 따르면 반려동물 양육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서면서 동물들이 점점 더 많이 광고에 등장하는 추세로, 뉴욕에 거주하는 세계에서 가장 맵시 있는 시바견 ‘보리(인스타그램@Menswear dog)’의 경우 페라가모, 코치, ASOS 등의 모델로 활약하며 2억원이라는 연봉을 자랑한다.
 
마지막으로 다소 생소하게 들릴 수 있으나 최근 주목받는 ‘테라피 독’을 소개한다.  치매 노인이나 자폐 아동, 우울증에 걸린 청소년 등 상처를 입은 이들을 위로하는 일을 하는 개다. 이를 동물매개 치료라고 부르는데, 음악치료나 미술치료 등 다른 비약물요법보다 효과가 빠른 것으로 알려졌다.
 
동물매개치료사인 이웅종 교수가 치료견을 훈련하는 모습. [라이프앤도그]

동물매개치료사인 이웅종 교수가 치료견을 훈련하는 모습. [라이프앤도그]

동물 매개 치료는 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를 앓고 있는 환자나 주변 사람들에게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이를 대상으로 시행한다. 펫 테라피(Pet therapy) 또는 애니멀 테라피(Animal therapy)라고도 부르며 주로 개나 고양이가 많이 활동한다. 혹자는 동물매개치료 활동에 참여하는 매개견, 매개묘들을 ‘사람의 목적을 위해 희생당하는 가여운 존재’로 여기는 경우가 있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감정을 받아 주는 일이 동물에게 고통을 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물매개치료사로 활동 중인 워크독의 이웅종 교수를 만났을 때 그의 의견은 다음과 같았다.
 
“수십 년간 내가 직접 경험한 동물매개 치료견은 훈련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적절한 테스트와 훈련을 통해 그 개가 가진 성격상의 특성을 찾아내 활동하게 한 것이다. 절대 힘들어하거나귀찮아하지 않았다.” 그의 말에 나 역시 동의할 수 있었다. 사람과 달리 동물들은 거짓으로 행복한 표정을 지을 수는 없을 테니.
 
다이아몬드까진 아니더라도 크리스털 장식의 천연 가죽 목걸이를 차고, 한 달에 한 번은 전용 숍에서 미용을 받으며, 소고기와 생선 살, 유기농 채소로 만든 집밥으로 배를 채운 후 선선한 저녁 산책길에 나서는 나의 호강견들. 과연 이 개들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것일까 생각해본다. 10년 전, 서울 충무로 어느 골목에서 우연히 만나 나의 반려견이 된 이 개를 처음 구조한 순간 이미 집사의 길은 시작되었다.
 
반려견용 아이스크림

반려견용 아이스크림

밥때가 되면 일찍 귀가해야 했고, 틈이 날 때마다 놀아줘야 했으며 주기적으로 씻겨야 했다. 산책은 또 어떤가. 하루 업무를 마치고 들어와 TV 앞에 그냥 퍼지고 싶은 날에도 밖으로 나가 한두 시간을 걸어야 했다. 말이 산책이지 노동처럼 느껴지는 날도  꽤 많았다. 개들과 더 좋은 환경에서 살기 위해 이사도 두 번이나 했다. 강남에 자리한 사무실까지 출퇴근이 점점 힘들어질수록 개들에게는 점점 더 쾌적한 집과 더 넓고 안전한 산책로가 생겼다.
 
나의 개들은 과연 더 행복해졌을까? 오늘날의 반려견 또한 안전한 잠자리와 풍부한 먹이를 받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하든, 철삿줄을 사용하든 이미 자유란 없다. 하루에 한 시간도 밖에 나가지 못하는 날이 대부분이며 그 한 시간조차도 목줄을 완전히 풀고 달릴 완벽한 자유란 없다. 남들은 호강견이라지만, 우리 집 개들도 매일 열심히 열 일을 한다.  
 
내 기분을 맞추고, 어떤 날은 시답지 않은 나의 푸념도 밤새 들어야 한다. 덕분에 나는 사람들에게는 직접 하지 못한 푸념이나 뒷말을 밤새 반려견에게 털어놓을 수 있다. 굳이 동물매개치료라는 거창한 용어를 쓰지 않아도, 개와 함께 하는 모든 순간에 치료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눈물을 닦아주는 개가 있다?
 
인간관계에서도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관계는 오래가지 않는다. 반려견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일 터. 내가 행복을 얻고자 한다면 내 반려견이 행복해야 한다. 이러한 공식이 잘못 적용돼 비싼 것을 사주고, 좋다는 것을 사 먹이는 것으로 행복을 선물했다고 착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렇게까지 해준다고?” 기사를 만들기 위해 취재를 하다 보면 이런 순간들이 종종 다가오곤 한다. 이렇게까지 비싼 돈을 내고, 이렇게까지 공을 들여야 하나 등등. 그러나 이조차도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선택한 것이지 단 한 케이스도 반려동물이 요구한 것은 없었다. 반려견이 호강하는 시대가 되었건 열 일하는 시대이건 말이다.
 
이수진 ‘라이프앤도그’ 발행인
패션 에디터를 거쳐 매거진 회사 대표를 지내다가 반려견 ‘우연’이와 ‘봉구’를 만나며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현재 반려동물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라이프앤도그’의 발행인이자 푸드 브랜드 ‘키친앤도그’ 대표로 개와 함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