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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양 육영수군’ 결혼한 성당 찍고 ‘김광석 길’ 가볼까

중앙일보 2020.08.21 00:03 종합 20면 지면보기

힘내라 대구경북 ⑦ 대구 골목투어

앞산전망대에서 드론으로 촬영한 대구 시내 전경. 넓고 좁은 골목을 따라 크고 작은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 골목 안으로 걸어 들어가야 비로소 대구는 제 모습을 드러낸다. 대구는 골목의 도시다. 촘촘한 골목들의 총합이 대구다. 장진영 기자

앞산전망대에서 드론으로 촬영한 대구 시내 전경. 넓고 좁은 골목을 따라 크고 작은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 골목 안으로 걸어 들어가야 비로소 대구는 제 모습을 드러낸다. 대구는 골목의 도시다. 촘촘한 골목들의 총합이 대구다. 장진영 기자

대구는 골목이다. 대구는 그물처럼 촘촘한 골목들의 총합이다. 이 낡고 좁은 골목 안으로 걸어 들어갔을 때 대구는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낸다. 이를테면 2000년 전 토성 흙길을 밟을 때, 300년 넘은 시장 골목에서 칼국수를 삼킬 때, 40년 된 옛날다방에서 쌍화차 홀짝일 때, 청춘의 열기로 후끈한 거리를 활보할 때, 옛 가수의 목소리가 흐르는 낡은 골목을 거닐 때 우리는 대구를 여행한다고 말할 수 있다. 대구 중구청이 조성한 대구 골목투어 코스를 중심으로 대구를 헤집고 다녔다. 코스를 굳이 따를 필요는 없다. 대구 골목에선 잠시 길을 잃어도 좋다.

중구청 골목투어 3코스 나들이
근대 의상 입고 옛 골목서 찰칵
달성공원엔 BTS ‘뷔’ 향나무도

  
순종 vs BTS
 
북성로에선 근대 의상을 빌려 입을 수 있다. 장진영 기자

북성로에선 근대 의상을 빌려 입을 수 있다. 장진영 기자

대구 골목투어 코스는 모두 5개다. 그 첫 코스가 3.25㎞ 길이의 ‘경상감영달성 길’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경상감영에서 시작해 달성공원에서 끝난다. 주제를 붙인다면 ‘대구 역사기행’에 가깝다.
 
경상감영공원. 서울 탑골공원처럼 평안한 분위기다. 장진영 기자

경상감영공원. 서울 탑골공원처럼 평안한 분위기다. 장진영 기자

경상감영은 영남지역의 행정 중심지였다. 1434년 경북 안동에서 이전했다. 일제 강점기부터 1965년까지 경상북도청으로 쓰였고, 이후에는 도심 공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서울 탑골공원처럼 어르신들이 소일하는 모습이 평화롭다. 경상감영에서 나온 길은 향촌동을 지나 북성로 수제화 골목으로 이어진다. 대구 도심엔 ‘성’ 자 돌림 지명이 많다. 대구 읍성의 흔적이다. 예를 들어 북성로는 읍성 북쪽 길이란 뜻이고, 서문시장은 읍성 서문 앞에 섰던 시장이다. 북성로에선 서울 종로구 익선동 분위기가 풍겼다. 근대 의상 빌려 입고 발랄한 감각의 카페와 상점에서 사진을 찍는 청춘이 자주 눈에 띄었다.
 
이윽고 달성공원이다. 대구 시민이면 누구나 가 본 명소다. 그런데 달성공원이 가장 오래된 토성(土城)이란 사실은 아시는지. 달성공원 옆 비산동에선 아직도 청동기시대 유물이 나온다고 한다. 역사책은 1907년 조선 마지막 왕 순종이 달성공원을 방문한 사실을 앞세우지만, 포털 사이트는 달성공원 연관어로 BTS 뷔를 맨 앞에 올린다. 뷔가 비산동에서 태어났다. 공원에 순종이 심은 향나무와 뷔가 기념사진을 찍은 향나무가 있다. 아미는 비산동을 ‘뷔산동’이라 한단다.
  
청라언덕엔 코로나 치료 대구동산병원
 
골목투어 2코스에 있는 3·1 만세운동 길. 장진영 기자

골목투어 2코스에 있는 3·1 만세운동 길. 장진영 기자

골목투어 2코스는 대구의 심장부를 구석구석 파고든다. 1.64㎞ 길이의 짧은 길이지만, 둘러볼 것도 많고 옆길로 새기도 좋아 한없이 시간이 늘어난다. 작정하고 놀면 한나절도 모자라다.
 
길은 청라언덕 동산 선교사 주택에서 시작한다. 한때 영화 촬영지로 자주 등장했던 명소다. 선교사 주택 옆에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이 있다. 코로나19 지역거점병원으로 지정돼 지난봄 병상 246개 모두를 확진자 전용으로 사용했던 현장이다. 지금은 교복 입은 여학생들이 까르르 웃으며 지나갔다.
 
계산성당을 드론으로 촬영했다. 장진영 기자

계산성당을 드론으로 촬영했다. 장진영 기자

3·1 만세운동 길이라 불리는 계단을 내려가면 1902년 지은 계산성당이 나온다. 이 성당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결혼했다. 재미난 일화가 전해온다. 당시 주례를 맡은 허억 대구시장이 “신랑 육영수군과 신부 박정희양”이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이상화 고택에 밴 사연은 훈훈하다. 재개발 지역에 묶여 고택이 철거될 위기에 처하자 대구 시민이 들고일어났다. 50만 명이 탄원서에 서명하고 8600만원을 모금해 대구시를 압박했다. 결국 건설회사는 시인의 고택을 대구시에 기증했다.
 
미도다방 쌍화탕. 장진영 기자

미도다방 쌍화탕. 장진영 기자

이제 진골목이다. 조선 시대부터 있었다는 대구 민초의 터전. ‘긴’ 골목이어서 진골목이다. 옛 분위기 여전한 골목 안에 진골목 명물 ‘미도다방’이 있다. 정인숙(68) 대표가 40년째 한결같은 모습으로 쌍화차를 내온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김광석 길 앞에 있는 ‘사랑했지만’이란 제목의 조형물. 장진영 기자

김광석 길 앞에 있는 ‘사랑했지만’이란 제목의 조형물. 장진영 기자

이제 ‘김광석 길’을 걸을 차례다. 이왕이면 동성로를 거치길 권한다. 걷는 게 힘들면 ‘대백(대구백화점)’ 앞에 서서 청춘의 열기를 구경해도 좋고, ‘중화반점’에 들러 야끼우동 한 그릇 먹어도 좋고, 현재 대구에서 가장 핫하다는 ‘커피 골목’에서 여유를 즐겨도 좋다. 75년 전통의 ‘국일따로국밥’도 지척이고, 양념통닭으로 전국을 평정한 염매시장의 ‘뉴욕통닭’도 가깝다. 아무렴, 대구에선 걸어야 한다.
 
드디어 김광석 길이다. 정식 이름은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그리다’는 ‘그리워하다(Miss)’와 ‘(그림을) 그리다(Draw)’의 두 뜻을 모두 이른다. 골목투어 4코스 마지막 구간에 해당한다.
 
시방 김광석 길은 자타공인 전국 명소다. 2019년까지 3년간 매해 150만 명 안팎이 방문했었다. 애초에는 방천시장을 살리려고 시작한 벽화 그리기 사업이었다. 낡은 시장 옆 외진 골목의 벽화가 10년 만에 기적을 일궜다. 대견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김광석은 1964년 방천시장 인근 대봉동에서 태어났다. 그 인연이 여기까지 이어졌다.
 
350m 길이의 제방길엔 김광석을 주제로 한 벽화와 조형물 70여 점이 있다. 흥미로운 건, 작품이 종종 교체되거나 수정된다는 사실이다. 골목에서 벌어진 10년간의 변화를 알아챈다면, 진정한 김광석 팬 또는 김광석 길 매니어로 인정한다.
 
대구=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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