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밀실주의 깬 정부, 론스타 사건에 "외환은행 매각 심사 연기는 정당"

중앙일보 2020.08.20 16:45
구 외환은행 건물. 가운데는 론스타 로고. 오른쪽은 2019년도 법무부 예산 및 기금 국회 심사 결과 문서. [사진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등]

구 외환은행 건물. 가운데는 론스타 로고. 오른쪽은 2019년도 법무부 예산 및 기금 국회 심사 결과 문서. [사진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등]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운용사인 론스타가 제기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S) 사건에 대한 주요 쟁점과 공식 입장을 20일 처음 공개했다. 정부는 그동안 중재판정부의 비밀유지명령을 이유로 론스타 사건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이에 과도한 '밀실주의' 행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법무부는 이날 'ISDS 전담조직 신설 및 대응 현황'이라는 자료를 내고 6페이지 분량의 론스타 사건 진행 경과도 함께 공개했다. 법무부는 "비밀유지명령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에서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부당한 매각 승인 지연" VS. "법적 불확실성에 정당하게 연기"

강성국 법무부 법무실장이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국제투자분쟁(ISDS) 전담조직 신설 및 대응 현황에 관한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강성국 법무부 법무실장이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국제투자분쟁(ISDS) 전담조직 신설 및 대응 현황에 관한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을 인수한 후 2007~2008년 HSBC에 매각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그 후 2011~2012년 하나금융에 재차 매각을 시도해 2012년 1월 금융당국의 매각 승인 결정을 받았다. 론스타는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매각 승인을 부당하게 지연하고, 차별적인 세금 부과 조치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2012년 11월 ISDS를 제기했다. 론스타가 요구한 배상 금액은 46억8000만달러(5조5552억원)에 이른다.
 
법무부가 제시한 핵심 쟁점은 세 가지다. 먼저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HSBC와 하나금융에 매각하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금융당국의 부당한 승인 지연이 있었는지다. 론스타 측은 "매각 심사 시 법적으로 매수인(HSBC와 하나금융) 측 사정만을 고려해야 함에도 매도인인 론스타 측 사정을 이유로 심사를 지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한국 정부는 "당시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 등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형사사건이 진행 중이었다"며 "형사사건 결과에 따라 강제매각 명령을 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법적 불확실성'이 있어 정당하게 심사를 연기했다"고 반박했다. 
 
둘째로 금융당국이 외환은행 매각 가격 인하에 개입했는지도 쟁점이다. 론스타는 금융당국이 개입해 외환은행을 인하된 가격으로 매각해 손해를 입었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외환은행 매각 가격 인하는 론스타가 형사사건에서 유죄 판결을 선고받은 후 협상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하나은행과 재협상한 결과에 불과하다"며 "금융당국이 매각 가격 인하에 개입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조세 부분과 관련해서는 정부가 2005~2013년 론스타에 한국-벨기에 이중과세방지협정 상의 면제 혜택을 거부한 것이 정당했는지 등이 쟁점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론스타 측 신청인들이 조세 협정상 면세 혜택을 누리기 위해 형식적인 외관만 갖춘 도관 회사에 불과해 조세 협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론스타가 이와 관련해 과세 처분 취소를 구하는 국내 소송을 제기했고, 정부는 그 중 일부에서 패소했다.
 

전담조직 신설…송기호 "정부 공개 수준 아쉬워"

외환은행 노조원들이 18일 론스타 강제매각 관련 금융위원회 임시회의가 열리고 있는 서울 여의도 외환은행 앞에서 '론스타펀드에 대한 산업자본 심사및 징벌적 매각명령'을 촉구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외환은행 노조원들이 18일 론스타 강제매각 관련 금융위원회 임시회의가 열리고 있는 서울 여의도 외환은행 앞에서 '론스타펀드에 대한 산업자본 심사및 징벌적 매각명령'을 촉구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한국 정부와 론스타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서증 1546건, 증인·전문가 진술서 95건 등 방대한 증거자료를 제출해 서면공방을 진행했다. 2015년 3월부터 2016년 6월까지 4회에 걸쳐 심리가 진행돼 2016년에 종결됐다고 정부는 설명했다. 그 후 올해 초까지 중재 판정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 3월6일 의장중재인인 조니 비더가 지병으로 사임해 절차가 정지됐다. 6월23일 윌리엄 이안 비니 전 캐나다 대법관이 새 의장중재인으로 선정됐다. 정부는 판정 선고 시점과 관련해 "절차 종료 선언 후 120일(최대 180일) 이내에 판정이 선고되는데 중재판정부는 절차종료선언을 하지 않았다"며 "새로운 의장중재인이 취임하면서 절차가 재개돼 현시점에서 판정 시기나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ISDS는 외국인 투자자가 자신이 투자한 국가에서 정부의 부당한 조처나 대우로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하며 분쟁이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하는 절차다. 한국 정부는 청구액이 가장 큰 론스타 사건을 비롯해 총 8건의 ISDS가 제기됐고, 현재 5건의 사건이 진행 중이다. 한국 정부는 이란의 다야니가(家)가 제기한 ISDS에서 패소했다. 세금으로 약 730억원을 배상해야 한다.  
 
법무부는 이 같은 ISDS 사건을 체계적으로 대응하고, 예방하기 위해 법무실 산하에 국제분쟁대응과를 신설한다고 밝혔다. 변호사 자격자 14명으로 구성된다.  
 
정부의 밀실주의를 지속해서 문제 제기했던 송기호 변호사는 "론스타가 은행법상 비금융주력자(산업 자본)에 해당한다고 정부가 판단하는지 밝혀야 하고 패소한 다야니 사건의 판결문도 공개해야 한다"며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강광우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