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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대통령도 궁금한 부동산의 미래

중앙일보 2020.08.20 00:37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한 교사가 “미래에 대해 궁금한 게 있느냐”고 묻자 “부동산”이라고 했다. 창덕여중을 방문해 수학 수업을 체험하는 자리에서다. 사람은 불쑥 던지는 한마디에 속내가 묻어나오는 법이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부동산이 궁금하다”는 대통령의 말에선 두 가지 속내가 읽힌다. 하나는 충심, 대통령이 노심초사 부동산만 생각한다더니 사실이구나. 두 번째는 자기 고백, 23차례나 대책을 내놨지만 “결과에 대한 확신은 없더라”는 것. 대통령이 그간 “부동산은 자신 있다”고 말했던 건 그저 ‘희망 사항’이거나 ‘정신 승리’와 동음이의어였던 셈이다.
 

부동산은 정치가 아니라 과학
정확한 예측, 해결책 찾으려면
통계부터 제대로 공개·작성해야

애잔하지만 이해는 간다. 오죽 부동산 정치에 몰두했으면 그랬겠나. 투기를 막고 집값을 낮추라는 건 어떤 정당, 어느 정권이든 거역할 수 없는 국가적 요구다. ‘대통령의 부동산 교사’로 불리는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이를 위해서라면 정부는 영혼이라도 내놓아야 하고, 몸으로라도 막아야 한다”고 했다. (『부동산은 끝났다』)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23번의 대책은 노무현 정부 시절 겪은 시행착오를 보완·개정한 종합판이다. 이를테면 “다시는 주택 정치의 실패로 정권을 잃지 않겠다”는 독한 자성(自省)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런 대책을 다 쏟아내고도 막상 대통령은 “부동산의 미래가 궁금하다”니 어찌 된 일인가.
 
창덕여중 교사의 말에 답이 있다. 그는 “그래프를 그려서 변화를 관찰해 패턴을 분석하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했다. 부동산을 정치가 아닌 경제로, 과학으로 본 것이다. 부동산은 숫자와 과학으로 접근해야만 미래를 예측하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정부는 어땠나. 정부 입맛대로 집값 통계를 여기 붙이고 저기 끌어댔다. 산정 기준과 과정을 공개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정확한 그래프를 그릴 수도, 패턴을 분석할 수도 없다. 미래 예측은 언감생심이다.
 
당장 집값 상승률만 봐도 그렇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문재인 정부 부동산 상승률은 11%”라고 했다. “50%가 넘는다”고 한 경실련 발표나 국민 체감과 한참 동떨어졌다. 하지만 김현미는 “국가가 공인한 통계를 얘기할 수밖에 없다”고 고집을 부린다. 그가 말한 국가 통계는 한국감정원 통계다. KB국민은행 통계보다 표본 가구 수는 반밖에 안 되고, 조사 횟수는 4분의 1밖에 안 돼 시장의 신뢰도가 낮다. 은행에서 대출해 줄 때도 KB 통계를 쓴다. 그러니 대통령이 10일 “집값 상승세가 진정되기 시작했다”고 말해도 시장에선 콧방귀도 뀌지 않는 것이다. 대통령은 지난주 감정원 통계(0.02% 상승)를 근거로 말을 했겠지만, KB 집계(0.53%)와는 크게 달랐다. KB 집계론 진정은커녕 한 주 전(0.39%)보다 가파르게 올랐다.
 
그렇다고 이 정부가 늘 국가 통계만 고집했느냐면 전혀 그렇지 않다. 통계가 마음에 안 들면 아예 책임자부터 통계 방식까지 바꿨다. 2년 전 소득주도 성장에 불리한 통계가 나오자 통계청장을 교체하고 유리한 통계 작성을 위해 130억원의 예산까지 퍼부었다. 오죽하면 당시 통계청장이 “통계가 정치적 도구가 돼선 안 된다”며 눈물로 이임사를 하고, 야당에선 “통계 독립” 소리까지 나왔겠나. 지금도 그 버릇이 여전하다. 정부는 어제 8·4 대책 후에도 전·월세가 치솟자 신규 계약만 집계하던 통계 방식을 바꿔 “갱신 계약도 포함하겠다”고 밝혔다. 이쯤 되면 통계로 정책을 하는 게 아니라 정책에 통계를 맞추는 수준이다. 그래 놓고 유리한 숫자만 ‘국가 통계’라 우기니, 시장에서 어찌 믿겠나.
 
부동산은 신뢰다. 신뢰를 잃은 정책은 반드시 실패한다. 신뢰의 출발은 숫자다. 중요한 통계일수록 전문가·언론·국회의 검증과 동의를 받아야 한다. 투명한 공개는 필수다. 입맛에 맞는 숫자만 쓰거나 통계 산식과 과정을 안 가르쳐 주는 걸 당연히 여기는 국가 시스템은 정상이 아니다. 그러니 23번의 작심 대책을 내놓고도 대통령의 눈에 ‘부동산의 미래’가 잘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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