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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우리집서 가장 오래 된 게 내가 아니어서 기쁘다

중앙일보 2020.08.19 14:00

[더,오래] 한재동의 남자도 쇼핑을 좋아해(19)

우리 집이 유별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방마다 시계가 있다. 심지어 화장실에도 있어서 집안 어딜 가든지 시계를 볼 수 있다. 모양과 구매 시기, 디지털과 아날로그, 각각의 특성과 스토리가 있다. 그리고 한번 사면 정말 오래 쓴다. 기술의 발달로 고장이 안 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렇게나 구매 주기가 길다면 시계 제조회사가 걱정될 정도다.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 스마트워치가 내 수면상태까지 관리해주는 세상이다. 하지만 내가 우리 집 시계들에 바라는 것은 묵묵히 시간을 알려주는 것일 뿐이다. 방마다 시간이 달라서 그렇지 나름 제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
 
그중 가장 오래된 시계는 안방 침대 옆에 있는 무선충전 가능한 LED 우드 시계다. 결혼 전 무선충전이 가능한 스마트폰을 살 때 같이 구매한 제품으로, 당시에는 꽤 인기가 있는 인테리어 소품이었다. 직사각형 나무토막 같은 모양에 LED로 시계와 날짜, 온도를 알려준다. 충전속도는 느리지만 잘 때 스마트폰을 올려두면 출근 즈음에는 완충이 된다.
 
은은한 주황빛으로 시간을 표시하기 때문에 새벽에 잠에서 깨도 스마트폰의 밝은 액정에 눈이 부시지 않고도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알람 기능이 불안정해 나에게 몇 번 지각을 하게 만들기도 했다. 스마트폰을 무선충전 위치에 제대로 못 올려놔서 방전이 돼버렸고, 시계 알람마저 제대로 울리지 않아서 숙면을 취하고 말았다. 개운하게 일어나 시간을 확인했을 때의 기분을 생각하면 아직도 온몸의 털이 서는 것 같다.
 
한때 홈인테리어의 필수품이었던 탁상시계. [사진 한재동]

한때 홈인테리어의 필수품이었던 탁상시계. [사진 한재동]

 
우리집 시계 연공서열 2위는 거실에 있는 LED 시계다. 일명 국민 시계라고 불린다. 결혼할 때 백화점 웨딩 멤버십에 가입해서 사은품으로 받았다. 신혼집 집들이에 놀러 가면 항상 있는 것을 보니, 국민시계라는 명성을 가질 만하다. 대부분 결혼할 때 참여한 이벤트에서 받은 것이라고 한다.
 
사은품으로 받은 제품이라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고장도 안 나고 활용성도 높다. 밤에 불을 꺼도 스탠드 등을 켜놓은 것처럼 밝다. 사실 이건 장점이자 단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시간을 또렷하게 확인할 수 있지만 불을 끄고 TV를 볼 때는 방해가 된다. 밝기를 조절할 수는 있지만 가장 어둡게 설정해도 매우 밝은 편이다.
 
빛 공해라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또 하나 아쉬운 점은 USB로 전원을 연결해야 하는데, 깔끔한 선처리가 어렵다. 오죽하면 맘카페에서 이 시계의 선처리 예쁘게 하는 방법을 따로 정리한 글이 있을 정도다. 차라리 교체주기가 짧아지더라도 건전지로 전원공급을 하는 게 어땠을까 한다. 그러면 나처럼 정리 잘 못 하는 사람도 예쁘게 사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신혼집 마다 있던 국민시계. [사진 한재동]

신혼집 마다 있던 국민시계. [사진 한재동]

 
우리 집 화장실을 지키고 있는 시계는 실리콘 방수시계다. 1초가 소중한 아침 출근준비를 위해 구매했다. 나의 아침은 침대 옆 시계를 보며 시작되는데, ‘5분만 더’를 외치며 뭉그적대다가 시계가 최후의 마지노선을 가리키면 간신히 일어난다. 졸린 눈을 비비며 샤워를 하러 들어가면 따뜻한 물로 샤워하다가 긴장이 풀려 허둥지둥 대기 일쑤다.
 
이럴 때 샤워기 옆에 붙어있는 실리콘 방수시계가 지각을 막아준다. 샤워할 때 볼 수 있는 시계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인터넷을 검색하다 득템했다. 가격도 만 원 이하로 비싸지 않았고, 디자인과 색상도 다양해서 취향에 맞춰서 구매할 수 있다. 습기가 많은 화장실이라 금방 고장 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3년 가까이 고장 없이 잘 쓰고 있다.
 
샤워할 때도 시간을 확인 할 수 있는 방수 시계. [사진 한재동]

샤워할 때도 시간을 확인 할 수 있는 방수 시계. [사진 한재동]

 
부모님 댁에는 나무로 된 외관에 로마자로 숫자가 표기된 벽시계가 있다. 얼마 전에 고장이 났는지 멈춰버렸다. 마침 집안을 수리하던 터라 대청소 겸 짐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고장이 나서 버리라는 것을 내가 말렸다. 요즘 레트로 유행에 딱 맞는 느낌이라 고쳐서 쓰기로 했다.
 
부모님 댁에 있던 나무 벽시계. 요즘 레트로 유행에 딱 맞는 느낌이라 고쳐 쓰기로 했다. [사진 한재동]

부모님 댁에 있던 나무 벽시계. 요즘 레트로 유행에 딱 맞는 느낌이라 고쳐 쓰기로 했다. [사진 한재동]

 
알고 보니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부모님 결혼 혼수로 구매한 시계라고 한다. 2대째 물려받은 시계를 집안에 두고 있다고 생각하니, 뭔가 영화 같아서 SNS에 허세를 부리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무엇보다도 우리 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 내가 아니어서 기쁘다.
 
직장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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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동 한재동 직장인 필진

[한재동의 남자도 쇼핑을 좋아해] '이제부터 쇼핑을 잘해야지!'라고 다짐하면 쇼핑을 잘할 수 있을까? 알고 보니 쇼핑에도 공부가 필요하더라. 쇼핑! 하면 비싼 명품 백을 사려고 줄을 서는 부정적 이미지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 집 앞 편의점에서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는 것도 쇼핑이다. 그렇다면 ‘쇼핑을 잘한다’라는 건 무슨 의미일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구매하는 것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는 곧 불혹 직장인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쇼핑 경험담이다. 거창한 명품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이 즐기는 패션과 생활용품에 집중되어 있음을 미리 양해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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