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더오래]컴퓨터가 다 해주는데 공부에만 얽매여야 할까

중앙일보 2020.08.19 07:00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54)  

아이들이 외할머니 집에 오면 가장 먼저 찾는 것이 리모컨이다. 컴퓨터를 켜 오락도 하고, 보고 싶은 영화도 찾아본다. 이젠 좀 컸다고 개구리, 지렁이를 잡는 동안은 불러도 달려 나오지 않는다. 이웃 소에게 여물 주기, 개밥 주기 등 일거리를 만들고 반강제로 30분 둑길을 걷게 하면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둘째는 입을 툭 내밀고 늘 퉁퉁거린다. “할머니 차만 타면 어디든 다 갈 수 있는데 왜 걸어야 해요?” 자기 집에선 TV를 못 보니 여기 오면 만화 영화 보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인데 훼방을 놓으니 아이들에게 할머니는 밉상이다.
 
아무리 100세 시대라 해도 체력이 있어야 한다. 요즘 아이들은 돈 내고 뛰는 태권도, 줄넘기 같은 형식적인 운동 외에는 잘 움직이지 않으려고 한다. 시대가 변하고 최첨단 신기한 세상을 앉은 자리에서 다 보여 준다 해도 건강이 있어야 누릴 수 있다.
 
내 아이들이 자라던 1980년대엔 집집이 신문을 구독했다. TV, 라디오도 있었지만 정해진 시간에 그것이 있는 장소로 가야 하고, 일손을 놓고 집중해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밤낮으로 일하다 보니 사회와 소통하는 것은 신문이 최고였다.
 
손주들이 외할머니 집에 오면 가장 먼저 찾는게 리모콘이다. 자기 집에선 TV를 못 보니 여기 오면 만화영화 보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인데 훼방을 놓으니 아이들에게 할머니는 밉상이다. [사진 pexels]

손주들이 외할머니 집에 오면 가장 먼저 찾는게 리모콘이다. 자기 집에선 TV를 못 보니 여기 오면 만화영화 보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인데 훼방을 놓으니 아이들에게 할머니는 밉상이다. [사진 pexels]

 
그땐 돈을 벌기보다 굶지 않기 위해 일 하던 시절이었다. 방학이 되면 귀하고 소중한 아이들은 일을 방해하는 짐이 되었다. 신문엔 재워주고 먹여주고 놀아주는 캠프를 소개하는 면이 꼭 있었다. 그 소식을 가장 먼저 찾아 신청했다. 신청자가 많아 탈락자도 많았다. 처음에는 놀아 주지 못해 미안한데, 어린 것을 밖으로 내보내려는 남편과 의견 차이를 보였다. 남편 말은 집에서 놀다가 문지방에 걸려 넘어져도 다리가 부러지고, 세숫대야에 엎어져도 숨 막혀 죽을 수 있다며 넓은 세상을 보고 친구도 만들고 그렇게 커야 잘 크는 거라 했다. 애잔한 마음은 애써 숨기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 당시엔 전화나 방문으로 신청해야 해서 신문에 올라오자마자 빨리 전화해야 순서에 들 수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 초등학교 시절엔 방학 때마다 거의 캠프를 보냈다. 처음엔 1박 2일이었다가 2박 3일 해병대 캠프 같은 거로, 그렇게 조금씩 외박 날짜가 긴 것으로 바뀌고 가장 마지막을 장식한 것이 엄청 길었던 국토순례인 것 같다. 돌아오면 새로운 세상을 구경한 신비로운 이야기를 하느라 피곤한 부모를 오래 잠 못 들게 하긴 했지만, 그날을 잊을 수 없다.
 
어릴 적 밖으로 내보내 새 친구도 만나고 뛰어놀게 한 것은 참 잘한 일 같다. 판사, 의사, 박사는 아니지만 세상 밖에서도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온갖 기술과 재주를 가졌으니 건강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삶을 뒤돌아볼 때면 부모가 원망스럽고 밉고 서러울 때도 그때고, 그만큼이나 자랑스러울 때도 그때라고 한다. 어린 시절 행복하게 뛰어놀았던 기억은 나이 들어 펼쳐보아도 밝은 빛의 영상이다.
 
오래 사는 세상이다. 사람과의 교류가 인문학이 되고 체력이 자연과학이 되어 지식이 창출되는 세상이다. 방학 기간 과외를 받느라 친구도 못 만나고 책과 씨름하는 아이들이 많다. 방학 땐 아이를 자연에서 뛰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뿌리가 되어 청년으로 단단하게 자라면 온 세상을 배낭 하나로 돌아다니며 친구를 사귀고 견문을 넓힌다. 손자 말처럼 컴퓨터가 다 알아서 해주는데 공부를 왜 그리 많이 해야 하는지 나도 궁금하다. 요즘 아이는 백 세를 넘게 살아야 한다. 젊은 청년이 멀쩡한 다리에 보조 다리를 하고 걸어가는 꿈을 꾸고 일어나 이 글을 쓴다.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송미옥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필진

[송미옥의 살다보면] 요양보호사 일을 하다 평범한 할머니로 지낸다. 지식은 책이나 그것을 갖춘 이에게서 배우는 것이지만, 인생살이 지혜를 배우는 건 누구든 상관없다는 지론을 편다. 경험에서 터득한 인생을 함께 나누고자 가슴 가득한 사랑·한·기쁨·즐거움·슬픔의 감정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쓴다. 과거는 억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이웃과 함께 남은 인생을 멋지게 꾸며 살아보고자 한다.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