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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피고인 구속 검토" 식사중 나온 말, 판사끼리 고소전으로

중앙일보 2020.08.18 17:18
판사 관련 이미지 [뉴스1]

판사 관련 이미지 [뉴스1]

지난해까지 같은 법원에서 한 사무실을 쓰던 두 현직 부장판사가 고소전을 벌이게 됐다.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에서 1심을 맡았던 A판사가 “동료 판사가 내 재판 내용을 외부로 알렸다”며 B판사를 고소했기 때문이다.  
 

판사끼리 고소전은 왜

AㆍB판사는 사법연수원 동기로 지난해까지 서울중앙지법에서 근무하다 올해 둘 다 다른 법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문제가 된 사건은 지난해 5월 기소돼 올해 2월 1심 선고가 난 의료법 위반 관련 사건이다.  
 
A판사는 B판사와 함께 한 사석에서 이 사건의 피고인 C씨와 관련한 발언을 했다고 한다. A판사측은 B판사가 같은 사건의 다른 피고인 D씨 변호사에게 이 말을 전달했고, D씨 변호인을 거쳐 C씨의 변호사에게까지 이 내용이 전해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현재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정진웅)가 이 사건을 맡아서 수사 중이다. A판사는 B판사를 고소한 뒤 법원행정처에 이를 알리는 진정도 냈다.  
 
수사가 진행 중인 사실이 알려지자 B판사는 “고소 내용은 사실무근의 허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B판사는 “법원 구내식당에서 판사 9명이 함께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A판사가 특정 형사 사건에 관해 발언을 한 사실은 있는데, 사적인 자리에서 흔히 하는 이야기에 불과했고 업무와 관련된 민감한 정보는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D씨의 변호인에게 사건과 관련해 어떤 연락도, 말을 한 적도 없다”고 반박했다. 고소 내용에 대해서는 "검찰 수사 결과를 기다려 달라"고 했다.
 

공무상 비밀누설 인정 가능할까

고소장에는 A판사가 B판사에게 “증거인멸 우려와 피고인 사이 형평성 등을 고려해 구속영장 발부를 검토한다”고 말했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B판사가 변호사에게 A판사의 말을 옮긴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사건은 진실공방 성격을 띠게 됐다. 다만 설령 B판사가 말을 옮겼다고 하더라도 이를 공무상 비밀누설죄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한 현직 판사는 “사적인 자리에서 알게 된 다른 재판부의 재판 내용을 공무상 비밀이라고 볼 수 있을지는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법관윤리를 어긴 것은 맞지만, 처벌은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다른 판사는 “A판사가 B판사에게 말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를 살펴 봐야 한다”며 유죄 심증이나 형량, 구속 여부 등 피고인에게 미리 알려져서는 안 되는 내용이었는지 등을 따지게 될 것이라고 봤다.  

 

달라진 법원 분위기 반영?

지난해 진행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에서도 공무상 비밀누설과 관련한 재판이 진행됐다. 영장전담 판사와 형사수석부장 판사가 법원에 접수된 수사기록 등을 법원행정처에 전달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한 현직 판사는 “과거 같았다면 이런 일로 법관끼리 고소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 내에서도 사건 내용이 외부로 나가는 것에 대한 경각심이 커졌을 것이란 말이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서로 믿는다는 전제에서 식사자리에서 고민거리를 이야기해온 것인데 이런 일이 벌어지니 안타깝다”고 착잡한 심경을 말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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