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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노·문 정부의 판박이 부동산 참사

중앙일보 2020.08.18 00:40 종합 31면 지면보기
고현곤 제작총괄 겸 논설실장

고현곤 제작총괄 겸 논설실장

21세기에 두 차례 부동산 파동이 있었다. 1차는 2002~2008년, 2차는 2016~현재다. 공교롭게도 노무현·문재인 정부 임기와 겹친다. 노·문 사람들은 부동산이라면 트라우마가 생길 만 하다. ‘하필 우리가 집권만 하면…’이라며 운이 나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약자의 편을 자처해온 그들이다. 부동산 때문에 불균형이 심해졌으니 할 말이 없게 됐다.
 

잘못된 금리정책 넘겨받은 게 화근
그걸 바로잡지 않고 곁가지 처방만
이제 와서 전 정권 탓은 염치없어
저금리로는 불붙은 집값 못잡아

스스로 당황스러워 “서울은 천박한 도시” 같은 막말을 내뱉었다. 앞뒤 안 가리고 세금 폭탄을 터트렸다. 빅 브러더를 연상케 하는 부동산감독기구까지 나왔다. 그 와중에 ‘세입자=우리 편’이라는 꼼수 프레임을 짰다. 하지만 “월세가 뭐가 나쁘냐”는 헛발질로 세입자들이 등을 돌렸다. 청와대는 다주택 참모들에게 집 팔라고 다그쳤다. 사유재산권을 아무렇지 않게 침해하는 것이어서 놀랐다. 몇몇이 지시를 따르지 않다가 ‘공직보다 집’을 택하는 바람에 더 놀랐다.
 
병이 깊어지자 한방·양방 좋다는 약을 닥치는 대로 쓰는 꼴이다. 정부 내에선 “부동산 대책이 너무 많아 솔직히 우리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푸념이 나온다. 백약이 무효다. 병의 원인은 따로 있는데, 엉뚱한 처방을 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급등의 근본 원인은 금리정책의 실패에 있다. 그걸 놔두고, 곁가지를 쳐봐야 소용이 없다. 혹여 진영 논리에 사로잡혀 ‘가진 자’를 억누르면 집값을 잡고, 인기도 오를 줄 알았다면 무지의 소치다. 아니면 자기 확신이 너무 강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오만하거나.
 
1차 파동을 복기해보자. 닷컴 버블 붕괴로 고전하던 경제가 2001년 하반기 바닥을 쳤다. 2002년에는 과열을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수차례 인상하는 게 맞았다. 어쩐 일인지 금리를 딱 한 차례 인상했다. 김대중 정부는 호황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던 것 같다. 돈을 풀어야 대선 승리에 도움이 된다는 계산도 있었다.(기준금리는 한국은행이 조정하지만, 정부의 뜻이 반영된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2002년 7.4% 깜짝 성장을 했다. 대선에서도 노무현 여당 후보가 이겼다.
 
하지만 2002년 과열의 대가는 컸다. 노무현 정부 초기 신용카드대란이 발생했다. 금융경색을 막기 위해 2003~2004년 금리를 더 내렸다. 미국은 9·11 테러의 충격에서 벗어나며 금리를 올리던 때다. 시중에 돈이 넘치자 부동산이 버블세븐이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치솟았다. 뒤늦게 금리를 올리고, 종합부동산세를 만들고, 대출을 억제했으나 한번 불붙은 부동산은 식을 줄 몰랐다. 집값 급등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외부 충격 때문에 강제로 멈출 때까지 이어졌다. 노무현 정부는 임기 내내 부동산 설거지를 하다 지지율이 12%까지 떨어졌다. 노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유동성 규제를 하지 않아도 되는건지 너무 걱정돼서 몇 차례나 참모·장관들에게 물어봤다. 그때 마다 문제가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걸 믿은 게 잘못이었다”고 썼다.
 
잊고 있던 부동산이 다시 꿈틀댄 건 2016년부터다. 공교롭게도 또 금리정책의 실패가 도사리고 있었다. 미국은 금융위기에서 벗어나면서 2015년부터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거꾸로 박근혜 정부 때인 2015~2016년 금리를 계속 내렸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미국이 금리를 2.5%까지 꾸준히 인상하는 중에 우리는 미국보다 낮은 1%대를 유지했다. 넘치는 시중 자금은 부동산으로 흘러 들어갔다. 올들어 코로나 사태로 금리를 0.5%까지 낮추자 집값은 더 뛰었다. 노무현 정부의 데자뷔다.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지 않고, 다른 곳만 두드린 게 똑같다. 잘못된 금리정책을 전 정권에서 넘겨받은 것도, 그걸 바로잡지 않다가 참사를 빚은 것도 똑같다.
 
김현미·김태년 등 정부·여권 인사들은 “부동산 급등이 전 정권 탓”이라고 주장한다. 전 정권의 잘못된 금리정책을 물려받았으니 전혀 터무니없는 말은 아니다. 이들이 전후 사정을 알고 얘기한건지, 아니면 습관적으로 남 탓을 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국민은 전 정권의 오류를 바로잡으라고, 탄핵까지 하며 정권을 넘겨줬다. 3년 넘게 뭐하다 이제 와서 전 정권 탓을 하니 참 염치없다.
 
이제라도 저금리가 경기 부양 효과가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경제이론에 따르면 금리를 낮추면 자산 가격이 상승해 부(富)가 늘고, 소비도 증가한다(자산효과). 또 저축이 줄고, 소비가 는다. 그런데 이 이론이 작동하지 않은 지 오래다. 자산효과가 나타나려면 중산층이 두터워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부자들만 자산효과를 누리면서 양극화가 심해졌다. 고령화도 변수다. 은퇴자들은 금리가 내려가면 이자수입이 줄어든 만큼 소비를 더 줄인다. 반기업 정책과 규제로 시중 자금이 설비투자로도 흘러가지 않는다. 이래저래 저금리가 경기부양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구조다.
 
지금도 갈 곳 없는 시중 자금이 부동산, 주식에 몰린다. 말이 좋아 ‘동학 개미’이지, 온 나라가 투기판이다. 코로나 사태로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데도 부동산과 주식이 치솟는 이유다. 저금리가 지속되는 한 집값을 잡기 어렵다. 1990년대 일본처럼 버블이 터져 곡소리가 날 때까지는.
 
고현곤 제작총괄 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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