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쎈 언니들의 선택…펑퍼짐한 ‘추리닝’의 재발견

중앙일보 2020.08.17 13:39
센언니들이 선택한 '추리닝' 패션. 왼쪽부터 이효리, 제시, 화사. 사진 놀면 뭐 하니, 뉴스1, 뮤직비디오(마리아) 영상 캡처

센언니들이 선택한 '추리닝' 패션. 왼쪽부터 이효리, 제시, 화사. 사진 놀면 뭐 하니, 뉴스1, 뮤직비디오(마리아) 영상 캡처

'쎈 언니'들의 전성시대다. 예능 프로 '놀면 뭐 하니'에서 맹활약 중인 '린다G' 이효리부터 가수 화사, 제시 할 것 없이 강한 캐릭터의 여가수들이 호응을 얻으며 인기 고공행진 중이다. 이들은 '다시 여기 바닷가'(싹쓰리), '마리아'(화사), '눈누난나'(제시) 등 신곡 발표 후 가요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예능 프로까지 휩쓸고 있다. 특히 이효리의 "엄정화·화사·제시와 그룹을 만들고 싶다"는 말 한마디에 팀이 결성되기 전부터 이들에겐 '환불원정대(무서운 분위기 때문에 환불 정말 잘 받을 것 같다는 의미)'라는 이름이 붙었고, 실제로 팀 결성이 본격화됐다. 
 
이 걸출한 쎈 언니들에게 발견되는 공통된 패션 공식이 있다. 바로 헐렁한 트레이닝(일명 추리닝)복이다. 주로 회색의 펑퍼짐한 스타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에서 편하게 입는 바로 그 '추리닝' 그대로다. 
이효리, 유재석, 비가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 '싹쓰리'의 가요 방송프로그램 출근길. 이효리는 이날 유재석이나 비보다 더 헐렁한 트레이닝복을 입었다. 사진 MBC '놀면 뭐 하니'

이효리, 유재석, 비가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 '싹쓰리'의 가요 방송프로그램 출근길. 이효리는 이날 유재석이나 비보다 더 헐렁한 트레이닝복을 입었다. 사진 MBC '놀면 뭐 하니'

이들은 컨셉트가 정해져 있는 가요 프로그램 무대나 잡지 화보에선 몸에 딱 달라붙거나 강렬한 패턴·반짝이가 들어간 화려한 의상을 입더라도, 촬영하러 가는 '출근길'이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땐 여지없이 트레이닝복을 입고 등장한다. 이효리는 가요 프로 '엠카운트다운' 출근길에 베이지색으로 통일한 바람막이 점퍼 상의와 바지통이 넓은 조거 팬츠(발목을 조인 트레이닝복) 스타일을 입었고, 제시는 운동복으로 봐도 무리 없는 회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티셔츠 허리를 잘라 나름의 섹시한 스타일을 연출했다.  
물론 지금까지 연예인의 출근길 패션은 대부분 편안한 옷차림이었다. 하지만 보통은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는 등 캐주얼한 차림 위주였지 이 정도로 편안한 차림은 아니었던 것을 생각하면 쎈 언니들만의 대담한 선택임은 분명하다. '노브라' 이슈 등 과감한 패션을 선보여 왔던 화사는 아예 신곡 '마리아'의 뮤직비디오 의상으로 회색 트레이닝복 팬츠를 선택했다.
가수 제시의 출근길 패션. 평소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즐겨 입었던 그였지만, 최근엔 헐렁한 회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모습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사진 뉴스1

가수 제시의 출근길 패션. 평소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즐겨 입었던 그였지만, 최근엔 헐렁한 회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모습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사진 뉴스1

KBS 예능 '개는 훌륭하다'에 출연한 제시. 큼직한 회색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었다. 사진 개는 훌륭하다 방송 캡처

KBS 예능 '개는 훌륭하다'에 출연한 제시. 큼직한 회색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었다. 사진 개는 훌륭하다 방송 캡처

 
이들이 트레이닝복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선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패션 트렌드 측면에서 보면, 지금 전 세계 패션 업계에선 1990년대 유행했던 뉴트로 물결이 거세다. 그중에서도 특히 당시 힙합 뮤지션들이 입었던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패션이 인기다. 트렌드 분석가 이정민 대표(트렌드랩506)는 "지금은 음악과 패션에서 90년대 힙합이 대세"라며 "특히 흑인 스트리트 패션이 중심이다. 데님 소재의 배기 팬츠(자루처럼 넉넉하고 폭이 넓은 바지)와 커다란 티셔츠, 그리고 트레이닝복이 대표적인데 요즘 인기 있는 여가수들은 이 중에서 가장 편하고 스포티해 보이는 트레이닝복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회색 트레이닝복 차림의 화사. 사진 화사 인스타그램

회색 트레이닝복 차림의 화사. 사진 화사 인스타그램

펑퍼짐한 트레이닝복 바지에 살색 보디슈트를 입은 화사의 '마리아' 뮤직비디오 장면. 사진 마리아 뮤비 캡처

펑퍼짐한 트레이닝복 바지에 살색 보디슈트를 입은 화사의 '마리아' 뮤직비디오 장면. 사진 마리아 뮤비 캡처

트레이닝복은 지금 가장 세련된 패션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여기엔 코로나19의 영향도 크다. 자가격리·재택근무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세계적으로 애슬레저 패션(일상에서 입는 운동복)의 인기가 높아졌다. 덕분에 '원마일 웨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집에서부터 1마일(1.6km)권 내에 입을 수 있는 옷이라는 의미로, 집에서 입던 홈웨어를 동네 가까운 곳에 나갈 때 외출용으로도 입는 경우를 말한다. 꾸밈 없이 편안하고 심플한 옷차림을 추구하는 MZ세대의 패션 스타일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로 이때 가장 부담 없고 편안한 옷이 트레이닝복이다. 이 대표는 "90년대 함께 인기였던 헐렁한 티셔츠와 배기 팬츠 스타일의 청바지도 함께 유행할 만한데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집에서 입고 있기 불편한 청바지는 뒷전으로 밀리고 트레이닝복이 유행 아이템이 됐다"고 분석했다.
다른 측면으로는 지금의 패션 트렌드를 반영하는 동시에 파워풀한 쎈 언니 이미지를 드러내는 데 트레이닝복만한 옷이 없다. 가장 핫한 90년대 무드와 스포츠 패션이 조합된 세련된 옷인 동시에 남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나의 편안함이 가장 중요하다'는 자아존중 의지가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트레이닝복은 기본적으로 움직임이 편한 옷이라는 기능적인 장점이 있다. 몸을 격렬하게 움직여야 하는 댄스 가수들에게 이는 필수조건이다. 
하의는 펑퍼짐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상의는 크롭 톱 또는 허리를 자른 셔츠로 섹시함을 연출하는 것도 쎈 언니들의 영리한 선택이다. 이한욱 스타일리스트는 "이는 90년대 LA에서 유행했던 여성 힙합 스타일로 섹시함뿐 아니라 구릿빛 피부를 드러내며 건강한 아름다움까지 표현하는 스타일"이라며 "여성 댄스 가수라고 하면 노골적인 노출 패션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기존 공식을 깨고 섹시함과 건강함을 동시에 표현한 영리한 패션"이라고 말했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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