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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괴로운 아파트 공화국

중앙일보 2020.08.17 00:43 종합 31면 지면보기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역대급 장마와 코로나에 지친 서민을 타격한 건 ‘집값 전쟁’이었다.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 길 없는 김현미식(式) 답안인 임대차 보호법과 부동산 관련 세금 인상. 김 장관은 집값을 마침내 잡는다는 듯 당차게 선언했는데, 그게 또 무슨 화근일지 두려운 시민들은 각자의 셈법에 돌입했다. 아무리 계산해도 아리송했다. 번듯한 내 집은 가능할까? 세금은 겁나게 올랐다. 세무사에게 문의했더니, ‘공부 중’이라는 답변. 시민들은 근심 속에 날이 새고, 김현미 사단은 신약(神藥)을 찾아 행군 중이다. 내 집 마련에 절치부심하던 사십대가 떠올랐다. 그건 악몽이었다.
 

사십대, 삼봉을 넘어야 중산층
닥치고 증세가 좌파의 양식인가
주택매매와 소유 비용 늘린다면
주거정의는커녕 정권교체 불러

한국의 사십대는 고달프다. 인생의 장대한 꿈과 엄혹한 현실이 충돌하는 십년이 인생의 성패를 가른다. ‘사십은 불혹(不惑)’을 되새겼다간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또는 찌질한 패자로 남기 십상이다. 반드시 넘어야 할 유혹의 삼봉(三峰)은 출세, 교육, 아파트다. 과장, 차장은 부장 고지를 향해 육탄 돌진을 감행하고, 가게 주인은 중형 매장, 영업직은 판매 신화에 도전한다. 그러는 사이 자녀들이 부쩍 큰다. 부부의 시간은 입시교육을 중심으로 맴돈다. 자녀가 대학에 안착해도 한시름 놓을 사이도 없다. 아파트는?
 
20년 전, 서울로 올라온 필자는 고덕동에서 발산동까지, 죽전에서 갈현동까지 발품을 팔았는데 안착할 곳은 없었다. 결국 일산에서 틈을 봐야 했다. 사십대 중반을 넘은 나이에 서울살이를 시작했으니 한참 지각이었다. 전세금에 대출을 얹어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은 대체로 사십대 초반, 그런데 기쁨도 잠시, 거기서 행군을 멈추는 사람은 바보다. 큰 평형, 브랜드 아파트로 두어 번 이사를 감행해야 재산과 위신 경쟁에서 낙오되지 않는다. 아파트는 제2의 연봉, 아니 연봉보다 힘이 세다. 사십대는 틈새 전략과 투기로 날이 샌다.
 
삼봉을 힘겹게 넘은 사십대는 중산층 대열에 합류한다. 부부는 주름살이 는다. 나훈아의 천연덕스런 노래가 가슴을 울린다. ‘광화문에서 봉천동까지/전철 두 번 갈아타고/졸면서 집에 간다’. 그래도 내 집이라면 좋다. ‘홍대에서 쌍문동까지/서른아홉 정거장/지쳐서 집에 간다’. 지쳐 가도 내 집이면 괜찮다. 그런데 봉천동도 쌍문동도 집값이 치솟았다. 서울 아파트 평균가격이 10억 원, 중위가격은 8억 원, 정말 억소리 난다. 이제는 봉천동에서 군포까지, 쌍문동에서 의정부까지 가야 한다. 자녀가 결혼이라도 할라치면 대출금 신세를 또 져야 한다. 작은 내 집을 옥죄는 빚 터널을 빠져나오는 때는 대체로 오십대 말, 지천명은 알 바 없고 노후 준비에 돌입한다. 오십대는 ‘채무와 전쟁’ 기간이다.
 
지방은 딴판이다. 몇몇 광역시를 제외하면, 지방 아파트 중위가격은 2억 원 채 안 된다. 지난 3년간 서울 아파트 가격은 평균 3억 원 상승한 반면, 경북·경남·강원·전북은 일제히 하락했다〈중앙일보 8월 14일자 14면〉. 어쩌다 올라도 2000~3000만 원, 투기는커녕 선방이 문제다. 아파트는 전 국민을 괴롭히는 불평등의 원흉이 됐다. ‘아파트 공화국’(전상인 교수의 작명)에서 계층을 좌우하는 가장 확실한 지표가 부동산이다. 서울과 수도권 소재 아파트 소유자는 중산층이 될 확률이 급상승한다. 틈새 전략과 운(運)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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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민들이 상대적 박탈감에 몸을 떠는 이유다. 10억 원 아파트 자산가로 등극한 서울 친구 목소리가 결코 반갑지 않다. 3~4억 원 아파트, 생활에 여유가 있지만 왠지 낙오자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23차 답안인 세금 폭탄이 지방민의 쪼들린 마음을 위로할지 모르겠는데, 덩달아 폭탄을 맞았다. 세금은 서울과 지방을 가리지 않는다. 임대인 장려 혜택은 모두 말소됐고 부동산 관련 세금이 폭등했다. 세금폭탄이 ‘주거 정의’와 ‘분배 정의’를 동시에 달성하는 유일한 방식인가? 다주택자 소유 물량이 대거 풀려 나올까? 시장의 반응은 달랐다. 전세금이 폭등했고 전세 물량도 자취를 감췄다.
 
‘수해 때 신선식품 값이 일시에 오른 것과 같다’는 정책수석, 집값 안정세라는 대통령의 말에 희망을 걸고는 싶은데 정부 실력을 믿는 사람은 드물다. 실력보다 오기가 빛나는 정부가 이번엔 공급 대책을 내놨다. 서울과 수도권에 빈터를 찾아 26만호를 다 지으려면 5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그 기간에 서민들은 널뛰기 시장에 적응하느라 혼쭐이 날 것이다. 삼·사십대에겐 웬 천벌인가 싶다. 7월 가계 대출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더 늦기 전에 중산층에 합류하려는 몸부림이다.
 
세금은 소유권 이동경로를 노린다. 이게 좌파의 양식(樣式)이다. 세금 폭탄이 주택 분배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은 오래전 입증됐다. 종부세 투하로 의기양양하던 노무현 정부는 외려 집값 폭등에 시달렸다.
 
세금경제학은 정권교체의 정치학이다. ‘닥치고 증세 정부’가 벌이는 ‘주거 정의’ 전쟁에 자멸의 액운이 어른거린다. 집값 고공행진도 서민들의 고난의 행군도 끝날 기미가 없다. 아, 괴로운 아파트 공화국이여.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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