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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가기 어려운 사랑, 갈망과 초월 사이 거센 비바람이…

중앙선데이 2020.08.15 00:21 699호 26면 지면보기

[미학 산책] 조르조네 ‘폭풍우’ 

지난 칼럼에서 조르조네의 ‘비너스’에 대해 살펴봤다. ‘비너스’를 좀 더 감상하고, ‘폭풍우’로 넘어가자.
 

‘폭풍우’는 유럽 회화사 첫 풍경화
목동은 화가, 젖 물린 여인은 연인
사랑에 대한 간극과 균열의 ‘비가’

‘지금 여기’ 넘어서려는 갈망 표현
예술은 고통 없는 세계의 화해

조르조네의 비너스가 무엇을 뜻하는지, 그가 이 그림에서 무엇을 의도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런저런 논의는 무성하지만 확실한 것은 없다. 그렇다면 이 그림에 매혹되는 나의 이유는 무엇인가?
 
비너스의 표정은 너무도 평화롭다. 그녀에게는 근심이 없는 듯하다. 그녀는 일상의 수심을 잊은 채 잠시 잠결에 빠져든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는 비너스 ‘여신’이기보다는 아리따운 숙녀로 느껴진다. 여기에는 그 뒤로 펼쳐진 평화로운 정경들 - 언덕과 들녘, 산과 집과 하늘의 풍경도 큰 몫을 할 것이다.
  
조르조네, 스며듦·하나됨 꿈꿨던 듯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 비너스와 언덕이 잘 화응한다. [사진 드레스덴 ‘옛 거장 회화갤러리’]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 비너스와 언덕이 잘 화응한다. [사진 드레스덴 ‘옛 거장 회화갤러리’]

더 흥미로운 것은 길게 누워 있는 비너스의 몸과 그 뒤의 언덕 그리고 들녘의 등고선이 이루는 어떤 조응상태다. 그녀는 바닥에 완전히 드러누운 게 아니라, 옆으로 비스듬히 기대 있다. 그렇게 뻗은 왼쪽 팔과 허벅지가 그리는 선은 그 뒤에 자리한 언덕이나 들녘의 선과 평형을 이룬다. 그리하여 비너스와 언덕이 어울리고, 사람과 풍경, 육체와 자연이 화응하는 것이다. 이 화응 속에서 육체의 에로틱한 요소는 휘발되면서 그 서정성이 두드러진다.
 
조르조네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1478년께 베네토에서 태어났다. 그는 벨리니(G. Bellini) 화실에서 그림을 배웠다. 그러다가 고향으로 돌아가 교회와 예배당의 그림을 그렸다. 그는 무엇보다 색채의 마법에 골몰했던 것 같다. 빛과 원근법을 제대로 드러내는 것은 색채의 미묘한 음영(陰影)을 얼마나 능란하게 다룰 수 있는가에 달렸기 때문이다.
 
조르조네는 1510년 베네치아를 휩쓴 전염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작품으로는 12개 정도 거론되지만, 확실한 것은 6개밖에 없다. 그 작품의 의미는 출생성분만큼이나 수수께끼에 차 있다.
 
조르조네의 꿈은 스며듦의 꿈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대상에 스며들어 그와 하나가 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을 더 넓고 더 깊게 만들고자 한다. 하나의 대상은, 비너스의 몸이 풍경의 일부로 스며들듯이, 다른 대상 속으로 들어가 그 일부가 되어 살아간다. 그의 화풍을 특징짓는 색채적 풍부함과 서정적 분위기는 이런 혼융, 이 하나됨의 꿈에서 생겨날 것이다. 이러한 양식적 특징들은 그의 동료들과 그 후의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조르조네주의(Giorgionismo/Giorgionism)’라는 말까지 낳는다.
 
조르조네의 ‘폭풍우’. 화가 자신일 수도 있는 목동이 바라보는 여인은 그가 사랑했던 사람이 아닐까. [사진 베네치아 델아카데미아 미술관]

조르조네의 ‘폭풍우’. 화가 자신일 수도 있는 목동이 바라보는 여인은 그가 사랑했던 사람이 아닐까. [사진 베네치아 델아카데미아 미술관]

조르조네의 그림들을 나는 모두 좋아하지만, ‘폭풍우’(1506~08)의 상징도 예사롭지 않다. 유럽 회화사에서 첫 풍경화로 평가받는 이 작품은 현재 아네치아의 델아카데미아 미술관에 걸려있다. 그림 중앙으로는 강이 흐르고, 이 강의 한 지류가 개울이 되어 화면 앞쪽까지 흘러든다. 개울 오른쪽에는 한 여인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며 앉아 있고, 왼편에는 한 남자가, 장대를 든 채, 이 여인을 바라보며 서 있다. 장대는 지팡이인가, 창인가? 제작 당시 이 그림은 ‘집시여인과 군인’으로 불리곤 했다. 그렇다면 창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목동일 수도 있다. 남자 뒤편으로는 무너진 기둥의 잔해가 보이고, 중앙으로 흐르는 강 위에는 다리가 놓여 있다. 이 다리 너머로는 제법 웅장한 저택도 있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일렁이고, 이 먹구름 사이로 번개가 번쩍인다.
 
젖 먹이는 여인과 목동, 폐허의 마을과 폭풍의 흐린 날씨… 여러 가지 암시를 지닌 상징물들이 있다. 하지만 어떤 해석에도 분명한 것은 없다. 그래서 누구는 신화의 이런저런 삽화를 읽어 내기도 하고, 누구는 고대 전원소설의 장면을 말하기도 한다. 또 누구는, 성경에 나오듯이, ‘이집트로의 피신’이나, 카인을 안은 이브와 아담을 언급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사막도시는 낙원을 뜻할 것이고, 천둥번개는 두 사람을 에덴에서 추방한 신을 암시할 것이다. 어떤 해석이 설득력 있을까?
 
원래 조르조네는, X레이 검사에 의하면, 이 남자가 서 있는 자리에 여자 누드를 그렸다고 한다. 그러니 남자와 여자, 도시와 농촌의 이분법은 이 그림에 대한 여러 해석적 가능성에서 제외해도 좋을 것이다. ‘폭풍우’가 그려지고 난 후 생겨난 그 많은 해석은 잠시 제쳐 두자. 하나의 예술작품은, 그것이 뛰어난 것일수록 다양한 해석을 낳고, 이 해석들은 모여 의미의 기나긴 역사를 이룬다. 하지만 그런 의미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쇠잔해간다. 그래서 폐허처럼 무너지는 것이다.
 
조르조네 그 자신에 대해 알려진 것은 없지만, 그를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그의 작품들이다. 그의 풍경화는 어느 것이나 부드럽고 평온하여 정감이 넘친다. 그는 아마 누구보다 자연을 사랑했고, 스스로 다정다감한 연인이었으며, 철학을 사랑하고 삶의 전원시적 상태를 희구한 예술가였을 것이다. 조르조네가 실제로 피렌체인문주의와 신플라톤주의에 경도되어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아마도 인문주의적 소양 없이는 이처럼 뉘앙스 풍부한 풍경의 서정성을 그려 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폭풍우’의 목동은 화가 자신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목동이 바라보는 여인은 그가 사랑했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이 둘 사이에는 시내가 흐르고, 그래서 둘은 갈라져 있다. 게다가 하늘은 어두워 폭풍이 몰려오고 있다. 사랑의 형식은 아마도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함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몇 걸음 떨어져 있고, 이렇게 떨어진 채 서로 바라보고 있으며, 이렇게 바라보는 두 사람 위로 폭풍우가 밀려드는 것… 이렇듯이 우리는 위태로운 현실 속에 살고, 또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그것은 실현에 대한 아무런 기대 없이, ‘그저 이런저런 거리와 유예 속에서만’ 잠시 채워질 수 있는 사랑의 본성에 대한 증언이 아닐까? 그리하여 나는 ‘폭풍우’를 사랑에 대한 간극과 균열의 비가(悲歌)로 읽는다.
 
예술은 결핍 넘어서려는 초월적 몸짓
 
이런 시각에서 보면, 그림은 하나의 갈망 - 지금 여기를 넘어서려는 갈망의 표현이다. 이 넘어섬, 그것은 초월이다. 왜 초월이 필요한가? 여기 이곳은 여러 가지 점에서 누락된 곳이기 때문이다. 누락된 것, 그것은 결핍의 이름이다. 이 결핍 때문에 나는 너에게 다가가기 어렵고, 목동은 몇 걸음 떨어진 채 여인을 쳐다보고만 있다.
 
그러므로 예술은 결핍을 넘어서려는 움직임 - 초월의 움직임이다. 이 초월적 움직임은 보이는 것을 넘어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나아가고, 이렇게 나아가면서 여기에는 없는 무엇을 꿈꾼다. 아마 그 너머에서 사랑은 이뤄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 너머의 세상에는 천둥과 번개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사랑은 아무런 전제 없이, 어떤 고통이나 불행의식 없이도 실현될 수 있을까? 예술은 이 고통 없는 세계의 화해 -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가 조건과 유보 없이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그린다.
 
그러나 현실의 화해는 서정적 요소만으로 탐색될 수 없다. 그것은 거리와 먹구름과 번개를 직시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시적 비전은 시적인 것의 강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비시적인 것을 관통함으로써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예술의 초월은 초월을 방해하고 좌절시키는 현실과의 대결 속에서 시도되는 것이다.
 
문광훈 충북대 독일언어문화학과 교수
고려대에서 독문학을 공부한 뒤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독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김수영론, 김우창론, 페터 바이스론, 발터 벤야민론 등 한국문학과 독일문학, 예술과 미학과 문화에 대해 20권 정도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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