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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썰명서] 연150만명 찾는 대구 김광석길, 김우중길·양준혁길 될 뻔했다

중앙일보 2020.08.14 05:00
김광석 길 입구에 있는 조형물 ‘사랑했지만’. 손영복 작가의 작품으로 2010년 김광석 길을 조성할 때부터 골목을 지키고 있다. 김광석 얼굴을 잘 보자.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한 모습이다. 2집 타이틀 곡 ‘사랑했지만’의 후렴구를 부르는 순간의 표정을 담았다고 한다. 장진영 기자

김광석 길 입구에 있는 조형물 ‘사랑했지만’. 손영복 작가의 작품으로 2010년 김광석 길을 조성할 때부터 골목을 지키고 있다. 김광석 얼굴을 잘 보자.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한 모습이다. 2집 타이틀 곡 ‘사랑했지만’의 후렴구를 부르는 순간의 표정을 담았다고 한다. 장진영 기자

대구의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김광석 길)’이 개장 10주년을 맞았다. 방천시장 옆 골목 제방에 김광석을 그려 넣은 지 10년이 지났다는 뜻이다. 이 10년 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 방천시장은 여전히 낡고 늙었지만, 시장 옆 골목은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로 거듭났다. 대구 중구청에 따르면 2017∼19년 연 150만 명이 이 골목을 걸었다(방문자 10년 누적 통계가 없다). 맨 처음 김광석 길을 기획했던 ㈔인디053 이창원(40) 대표로부터 김광석 길에 밴 이야기를 속속들이 들었다. 미리 귀띔하면 이 ‘추억 돋는’ 골목길이 ‘김우중 회장 길’ 아니면 ‘양준혁 선수 길’이 될 뻔했다.
 

김광석 길이란  

김광석길은 저녁에 특히 분위기가 산다, 은은한 조명이 비치고 김광석 노래가 흘러나오면 오래전 떠난 고향집에 들어선 것처럼 아늑하고 편안하다. 혼자 울면서 지나가는 관광객을 본 적도 있다. 손민호 기자

김광석길은 저녁에 특히 분위기가 산다, 은은한 조명이 비치고 김광석 노래가 흘러나오면 오래전 떠난 고향집에 들어선 것처럼 아늑하고 편안하다. 혼자 울면서 지나가는 관광객을 본 적도 있다. 손민호 기자

대구 중구 대봉동 방천시장 오른쪽 신천 제방을 따라 좁은 골목이 나 있다. 다 합치면 350m 정도다. 이 제방에 김광석을 주제로 한 그림과 조형물 70여 점이 설치돼 있다. 정식 이름은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그리다’는 ‘그리워하다(Miss)’와 ‘(그림을) 그리다(Draw)’의 두 뜻을 모두 이른다.  
 

어쩌다 제방에 그림을

김광석길은 골목 옆의 방천시장 활성화 사업의 일부로 시작됐다. 김광석 길이 유명해지면서 관광객은 많아졌지만, 시장은 기대만큼 활발하지 못하다. 장진영 기자

김광석길은 골목 옆의 방천시장 활성화 사업의 일부로 시작됐다. 김광석 길이 유명해지면서 관광객은 많아졌지만, 시장은 기대만큼 활발하지 못하다. 장진영 기자

2009년 문체부의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 ‘문전성시 프로젝트’에 방천시장이 선정된 게 계기가 됐다. 문전성시 프로젝트는 문화의 힘으로 전통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사업이었다. 그때 젊은 문화예술인 27명이 방천시장에 모였다. 그들이 찾아낸 방천시장의 문화 아이콘이 김광석이었다.
 

방천시장? 서문시장은 아는데

방천시장은 광복 직후에 생성된 시장이다. 대구를 남북으로 가르는 신천의 제방 아래 있어 방천(防川)시장이다. 예부터 싸전이 유명했다고 한다. 한때는 점포가 1000개가 넘었지만, 2009년 문전성시 사업을 시작할 때 점포는 고작 70여 개였다. 2000년께부터 진행된 재개발사업이 지지부진하면서 시장도 쇠락했다.
김광석 골목에서 가장 인기있는 작품 중 하나. 윤광웅 작가의 '청춘 그 빛나는''이다. '김광석 다시 부르기1' 앨범의 표지 그림을 재현했다. 2014년 작품으로 사진도 그맘때 촬영했다. 손민호 기자

김광석 골목에서 가장 인기있는 작품 중 하나. 윤광웅 작가의 '청춘 그 빛나는''이다. '김광석 다시 부르기1' 앨범의 표지 그림을 재현했다. 2014년 작품으로 사진도 그맘때 촬영했다. 손민호 기자

2020년 6월 김광석 골목을 찾아갔더니 '청춘 그 빛나는' 작품이 이렇게 변해 있었다. 김광석 얼굴도 조금 달라졌고 글귀도 '일어나'의 가사 중 일부로 교체됐다. 낙서는 깔끔하게 지워졌다. 손민호 기자

2020년 6월 김광석 골목을 찾아갔더니 '청춘 그 빛나는' 작품이 이렇게 변해 있었다. 김광석 얼굴도 조금 달라졌고 글귀도 '일어나'의 가사 중 일부로 교체됐다. 낙서는 깔끔하게 지워졌다. 손민호 기자

김광석은 방천시장과 무슨 관계인가?

방천시장을 되살리려 모인 젊은 문화예술인들이 방천시장이 배출한 인물을 수배했다. 모두 3명이 최종 후보에 올랐다. 대우 그룹을 창업한 고 김우중 회장과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프랜차이즈 스타 양준혁 선수, 그리고 가수 고 김광석이다. 김우중 회장은 한국전쟁 직후 시장에서 신문 배달을 했고, 양준혁 선수는 아버지가 시장에서 가방을 팔았고, 김광석은 시장 근처에서 태어났다. 후보 3명 중에서 김광석이 선정됐고, 2010년 김광석을 그리기 시작했다.  
 

김광석이 제일 관계가 약하다

객관적으로 그렇다. 양준혁 선수는 마침 2010년 은퇴해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상인 가족이라는 사실도 유리한 조건이었다. 가장 사연이 곡진한 건 김우중 회장이다, 전쟁 직후 열네 살 소년이었던 김우중은 당시 방천시장의 신문 배달망을 거의 독점했었다. 다른 신문팔이보다 더 빨리 배달하려고 그는 신문값을 후불로 받았다. 그렇게 남다른 수완으로 네 식구를 부양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광석과 방천시장의 인연은 약했다. 신천 건너 대봉동 어디에서 태어나 다섯 살까지 살았다고 하지만, 그게 전부다. 김광석이 방천시장을 추억하는 노래를 부른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김광석을 선정했나

시장 상인의 반대가 심했었다. 상인 중에서 김광석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젊은 문화예술인들이 설득했다. 쓸쓸한 골목 분위기가 김광석 음악과 잘 맞는다고 판단했다. 사실 김광석 길은 문전성시 프로젝트의 핵심 사업이 아니었다. 상인들이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황현호 작가의 ‘석이네 포차’. 2012년 작품이다. 김광석 음악은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 하면서 듣고 부를 때 진가가 드러난다는 생각에 이 작품을 그렸다고 한다. 손민호 기자

황현호 작가의 ‘석이네 포차’. 2012년 작품이다. 김광석 음악은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 하면서 듣고 부를 때 진가가 드러난다는 생각에 이 작품을 그렸다고 한다. 손민호 기자

'석이네 포차' 작품 앞에 관광객이 앉아 있는 모습. 김광석 골목에는 이렇게 관광객이 함께할 수 있는 작품이 여러 있다. 최근 들어서 이런 참여형 작품이 느는 추세다. [사진 대구 중구청]

'석이네 포차' 작품 앞에 관광객이 앉아 있는 모습. 김광석 골목에는 이렇게 관광객이 함께할 수 있는 작품이 여러 있다. 최근 들어서 이런 참여형 작품이 느는 추세다. [사진 대구 중구청]

작품 그릴 때 기준이 있었나

작가들에 전적으로 맡겼다. 김광석 얼굴을 그리는 작가도 있었고, 김광석 노래에서 영감을 받은 그림을 그린 작가도 있었다. 2014년 대대적인 수정 작업을 했다. 벽화 조각이 떨어지기도 했고, 낙서도 많았다. 이후에도 몇몇 작품을 교체하거나 수정하고 있으나, 인기가 좋은 작품은 그대로 남아있다. 
김광석길을 기획한 사단법인 인디053의 이창원 대표. 2010년 상인과 예술가를 설득해 제방에 김광석 그림을 그리게 한 주인공이다. 뒤의 작품은 2012년 제작한 이슬기 작가의 ‘로맨스’다. 김광석은 생전에 ’마흔이 되면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하나 사서 세계일주를 하고 싶다“고 했었다. 그러자 주변에서 ’다리가 닿겠어?“라고 놀렸다고 한다. 그 에피소드가 작품에 담겨 있다. 작품에서 김광석이 까치발을 하고 있다. 손민호 기자

김광석길을 기획한 사단법인 인디053의 이창원 대표. 2010년 상인과 예술가를 설득해 제방에 김광석 그림을 그리게 한 주인공이다. 뒤의 작품은 2012년 제작한 이슬기 작가의 ‘로맨스’다. 김광석은 생전에 ’마흔이 되면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하나 사서 세계일주를 하고 싶다“고 했었다. 그러자 주변에서 ’다리가 닿겠어?“라고 놀렸다고 한다. 그 에피소드가 작품에 담겨 있다. 작품에서 김광석이 까치발을 하고 있다. 손민호 기자

김광석 길이 왜 인기가 있을까

2013년부터 갑자기 사람이 몰려왔다. 그맘때 각종 TV 프로그램에서 김광석 노래가 흘러나왔다. 김광석을 추억할 만한 공간이 여기 말고 마땅치 않았다. 김광석을 모르는 젊은 층이 먼저 찾아왔고, 김광석을 아는 연령층이 나중에 찾아왔다. 대구 중구청도 다양한 지원을 했다. 상인회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김광석 노래를 틀어준다. 골목 분위기가 김광석 노래와 맞는 것 같다.  
김부열 작가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2014년 작품이다. 김광석이 ‘다시 부르기2’ 앨범에서 불렀던 노래를 벽화로 표현했다. 김광석이 안 나와도 김광석 그림이란 걸 알 수 있다. 중년 관객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한다. 손민호 기자

김부열 작가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2014년 작품이다. 김광석이 ‘다시 부르기2’ 앨범에서 불렀던 노래를 벽화로 표현했다. 김광석이 안 나와도 김광석 그림이란 걸 알 수 있다. 중년 관객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한다. 손민호 기자

김광석길 어귀에 그려진 벽화. 김광석의 히트곡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라고 적은 벽화가 많다. 손민호 기자

김광석길 어귀에 그려진 벽화. 김광석의 히트곡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라고 적은 벽화가 많다. 손민호 기자

김광석 길은 성공했나

10년 전만 해도 이 골목은 우범지대에 속했다. 해가 지면 인적이 끊겼다. 지금은 밤낮으로 붐빈다. 하나 방천시장은 여전히 낡았다. 외지에서 상인이 들어오긴 했지만, 시장 자체가 활발하진 않다. 골목에 오락실도 생겼다. 여느 되바라진 관광지가 돼 가는 느낌이다. 유족과 저작권 문제도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았다. 김광석 길에서 김광석 기념품을 팔지 못하는 까닭이다. 앞으로 10년을 고민해야 할 때다.
 대구=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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