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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서 보는 천년전 신라의 달밤···‘레트로 여행’ 끝판왕 떴다

중앙일보 2020.08.13 05:00

힘내라 대구경북⑥ 경주 야간관광

한국관광공사가 꼽은 '야간관광 100선'에 꼽힌 경주 첨성대. 현존하는 동양 최고(最古) 천문대다. 최승표 기자

한국관광공사가 꼽은 '야간관광 100선'에 꼽힌 경주 첨성대. 현존하는 동양 최고(最古) 천문대다. 최승표 기자

‘레트로 여행’이 뜨고 있다. 옛 분위기 아스라한 여행지에서 복고 감성에 빠지는 여행이다. 1970년대, 기껏해야 근대 유산을 내세우는 도시들이 있는데 경북 경주 앞에서는 꼬리를 내려야 한다. 경주에서는 무려 천 년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해가 지면 더 좋다. 신라의 달밤으로 가는 시간여행이 시작된다. 마침 경주에서 세계유산축전이 열리고 있다. 은은한 조명이 감싼 문화유산을 감상하고 코로나19 탓에 중단됐던 공연과 달빛기행도 즐길 기회다. 짧고도 소중한 여름밤을 즐길 날이 얼마 안 남았다.
 

국가대표 야경 명소

지난 4월 한국관광공사가 ‘야간관광 100선’을 발표했다. 내비게이션 앱 ‘티맵’의 빅데이터 281만 건을 토대로 밤에 여행하기 좋은 전국의 명소를 꼽았다. 경주에선 두 곳이 이름을 올렸다. 첨성대 그리고 동궁과 월지. 경주의 밤을 겪어본 사람은 어리둥절할 터이다. 경주엔 야경 명소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아서다.
경주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야경 명소인 '월정교'. 『삼국사기』에 언급된 신라 시대 문화재인데, 조선 시대에 화재로 소실됐다가 2018년 복원됐다. 최승표 기자

경주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야경 명소인 '월정교'. 『삼국사기』에 언급된 신라 시대 문화재인데, 조선 시대에 화재로 소실됐다가 2018년 복원됐다. 최승표 기자

지난 7일 찾아간 ‘월정교’가 그렇다. 최근 2년 사이 경주를 가보지 않은 사람이면 낯설 법한 문화재다. 그러나 역사는 깊다. 『삼국사기』에도 등장한다. 조선 시대에 전소한 뒤 석축만 남았던 것을 2018년 복원했다. 해가 기울자 월정교의 근사한 자태가 드러났다. 감색으로 물든 하늘, 조명을 받은 월정교 단청과 기둥이 그윽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김다혜(29)씨는 친구들과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학창 시절 수학여행 코스로 경주를 둘러보는 중이에요. 불국사, 첨성대를 다시 보려고 왔는데 월정교 야경이 너무 예쁘네요. 이제 황리단길로 넘어가서 맛집을 순례할 계획이에요.”
'안압지'라는 옛 이름이 더 익숙한 동궁과 월지. 신라 왕실이 별궁으로 쓰던 공간이다. 야간관광 100선에 꼽힌 명소답게 폭우 속에도 관람객이 많았다. 최승표 기자

'안압지'라는 옛 이름이 더 익숙한 동궁과 월지. 신라 왕실이 별궁으로 쓰던 공간이다. 야간관광 100선에 꼽힌 명소답게 폭우 속에도 관람객이 많았다. 최승표 기자

월정교에서 1.4㎞ 떨어진 동궁과 월지로 이동했다. 한 해 160만 명이 찾는 동궁과 월지는 과연 경주의 제1 야경 명소다웠다. 비가 세차게 퍼붓는 데도 수많은 방문객이 아랑곳하지 않고 신라 궁궐의 밤 풍경을 만끽했다. 단정한 누각과 소나무 군락이 조명을 받아 연못에 비친 모습이 무척 근사했다. 신라 왕족처럼 산책로를 따라 경내를 한 바퀴 돌았다. 
 

백등 들고 선덕여왕 만나볼까

‘경북 세계유산축전’이 7월 31일 개막했다. 경북 지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즐기는 축제인데 대부분 야간에 진행된다. 예정대로라면, 경주 역사유적지구 일원에서 8월 30일까지 금·토요일마다 다양한 행사가 펼쳐졌어야 했다. 그러나 비 때문에 행사 대부분이 시작도 못 했다. 석굴암을 재현한 실내 전시 ‘천년유산전’은 볼 수 있었다. 실물 크기 본존불을 가운데 두고 보살상, 천부상을 3D 영상으로 구현한 미디어 아트다. 오묘한 색채가 덧입혀진 부처의 미소가 더 신비해 보였다.
실내 전시실에서 감상할 수 있는 미디어아트 '천년유산전'. 석굴암 본존불을 실제 크기로 만들었고 화려한 3D 영상으로 신비감을 자아낸다. 최승표 기자

실내 전시실에서 감상할 수 있는 미디어아트 '천년유산전'. 석굴암 본존불을 실제 크기로 만들었고 화려한 3D 영상으로 신비감을 자아낸다. 최승표 기자

미디어 아트 전시실이 있는 노동리 고분군이 세계유산축전의 주 무대다. 대형 고분인 ‘봉황대’ 앞 광장에서 다양한 공연이 펼쳐진다. 경주시민에게는 이번 축전이 더 뜻깊을 터이다. 바로 이 자리에서 금요일 밤마다 ‘뮤직스퀘어’ 공연이 열렸는데 올해는 코로나19 탓에 전면 중단됐다. 14일부터 버스킹 공연, 패션쇼, 신라 시대 다섯 가지 놀이 ‘신라오기’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세계유산축전 기간, 느티나무가 삐죽빼죽 자란 대형 고분 '봉황대' 앞에서 다양한 공연이 열린다. 사진은 코로나 확산 전 금요일 밤마다 열렸던 '뮤직스퀘어' 공연. [사진 경주시]

세계유산축전 기간, 느티나무가 삐죽빼죽 자란 대형 고분 '봉황대' 앞에서 다양한 공연이 열린다. 사진은 코로나 확산 전 금요일 밤마다 열렸던 '뮤직스퀘어' 공연. [사진 경주시]

세계유산축전의 하이라이트는 ‘달빛기행’이라 할 만하다. ㈔신라문화원이 진행하는 상시 프로그램인데 역시 코로나19 탓에 중단된 상태였다. 축전 기간 달빛기행은 콘텐트를 한층 강화했다. 선착순 200명이 소원 적은 백등을 들고 해설사와 함께 3시간 동안 문화재를 둘러본다. 첨성대에서 망원경으로 별을 보고, 석빙고 앞에서 시원한 미숫가루도 마신다. 진병길(57) 신라문화원장은 “첨성대에서는 선덕여왕, 월정교에서는 원효대사 분장을 한 배우가 등장해 더 흥미진진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왕릉 굽어보며 커피 한 잔

세계유산축전이 끝나면 9월 4~6일 ‘경주 문화재 야행’이 열린다. 조선 시대 가옥이 남아 있는 ‘교촌마을’에서 인형극과 전통 공연을 감상하고, 청사초롱·탈 만들기 체험도 즐길 수 있다. 첨성대·동궁과 월지 등 문화재는 오후 11시까지 연장 개방한다. 세계유산축전과 달리 먹거리도 다채롭다. 교촌마을에 푸드트럭이 진을 친다. 최부자 댁에서 화전을 부쳐 먹고, 350년 역사를 자랑하는 교동법주도 시음한다.
세계유산축전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한 달빛기행. 소원 적은 백등을 들고 문화재 해설을 들으며 공연도 감상한다. [사진 신라문화원]

세계유산축전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한 달빛기행. 소원 적은 백등을 들고 문화재 해설을 들으며 공연도 감상한다. [사진 신라문화원]

대형 행사가 아니어도 경주의 밤을 즐기는 방법은 다채롭다. 첨성대 앞에서 기념사진만 찍지 말고 재미난 역사도 배우고 공연도 감상할 일이다. 경주문화원이 매주 토요일 밤 ‘읍성 투어’를 진행하고, 신라문화원은 매주 토요일 밤 서악서원에서 고택음악회를 연다. 두 프로그램 모두 무료로 진행되는 상설 프로그램이다.
경주 황남동, 대릉원 바로 옆에 자리한 황리단길. '황남동'과 서울 '경리단길'의 합성어다. 오래된 기와집에 현대적인 카페와 식당이 들어선 모습이 이채롭다. [사진 경주시]

경주 황남동, 대릉원 바로 옆에 자리한 황리단길. '황남동'과 서울 '경리단길'의 합성어다. 오래된 기와집에 현대적인 카페와 식당이 들어선 모습이 이채롭다. [사진 경주시]

대형 고분이 밀집한 대릉원 옆에 ‘황리단길’이 있다. 오래된 한옥을 개조한 카페와 식당,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들어찬 골목이다. 지나친 상업화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전국에 허다한 경리단길 아류 골목보다 분위기가 이채로운 건 사실이다. 한국관광공사 이광수 대구경북지사장은 “유명 문화재뿐 아니라 황리단길이 있어 경주의 밤을 즐기는 20~30대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한옥을 개조한 카페와 낡은 건물에 들어선 식당이 줄지어선 황리단길.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레트로 여행지'로 20~30대 사이에서 인기다. 최승표 기자

한옥을 개조한 카페와 낡은 건물에 들어선 식당이 줄지어선 황리단길.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레트로 여행지'로 20~30대 사이에서 인기다. 최승표 기자

골목은 밤이 깊어질수록 낭만적인 색채로 물들었다. 비가 멈추지 않는 데다 도로 공사가 한창인데도 골목이 북적였다. 봉긋봉긋 솟은 고분을 조망할 수 있는 루프톱 카페가 유난히 인기였다. 하긴, 은은한 조명 아래서 커피 마시며 천년 전 왕릉을 감상할 수 있는 도시가 지구에 또 어디 있을까.
 경주=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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