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산강 지류인 문평천 제방이 집중호우로 무너져 복구 작업이 한창이다. 나주=프리랜서 장정필
"본류인 영산강이 막히니까 지류 쪽으로 물이 넘쳐온 것 아니겠어요. 본류만 치수사업을 신경 쓰니 영산강 제방보다 낮은 문평천 제방이 견디지 못하고 붕괴한 거죠."
전남 나주시 다시면 죽산리 농민 이모(57)씨의 표정은 어두웠다. 조용하던 농촌 마을 죽산리는 8일 영산강 지류인 문평천이 범람하면서 쑥대밭이 됐다. 문평천과 인접한 다시면 복암ㆍ가흥ㆍ죽산리 등 888.2㏊ 농경지 일대가 호수로 변했다.
물 백년대계 세우자 <상>
4대강평가위, 6년 전 하천정비 건의
정치권 논란에 치수작업 손 놓아
홍수 피해 98% 지류·지천에 집중
“둑 터져도 임시 복구 공사만 반복”
같은 날 오전 10시쯤엔 섬진강 지류인 서시천 제방이 붕괴했다. 순식간에 물이 넘치면서 전남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부터 시작된 침수가 구례읍, 토지면, 마산면으로 번져 주민 대피령이 내려졌다.
'연례행사' 된 소규모 하천의 물난리
수해는 큰 강보다 중소 하천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환경부가 매년 발간하는 '홍수피해 상황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8~2019년 물난리로 피해를 입은 하천 190곳 중 3곳(1.6%, 남강ㆍ형산강ㆍ임진강)만 규모가 큰 국가하천이다. 나머지 98.4%는 모두 지방하천이다. 2년간 하천 홍수 피해액 118억2700만원의 98.5%(116억5000만원)가 지방하천에 생겼다. 피해 지역도 경기·충청·전라·경상·강원 등 전국에 걸쳐있다.

18~19년 홍수피해 하천 중 국가/지방하천 비율.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4대강 족쇄'에 대책 미비, 지자체 관심 ↓

10일 오후 전남 구례군 구례읍 구례 5일 시장 침수 피해 현장에서 주민들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4대강 사업이란 족쇄에 묶여 지류·지천에 손을 대는 것도 조심스러워 한다. 국가하천과 달리 지방하천·소하천은 지자체가 주로 관리를 맡아 단체장 의지가 없다면 우선순위가 밀리기 쉽다. 홍수피해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수년간 수해를 겪은 하천 일부는 관리 계획 자체가 없거나 둑을 쌓고 물길을 바로잡는 개수 작업이 이뤄지지 않았다.
최승일 고려대 환경시스템공학과 명예교수는 "정부는 그동안 뭘 했나. 4대강 이야기만 많이 할 뿐 이명박 정부 이후 지류와 지천은 손도 대보지 않았다"면서 "이번 홍수를 두고 이런저런 이유를 많이 언급하는데 기본적으로 물난리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 했다는 게 중요하다"고 꼬집었다.
'본류'도 물난리, 제방 안전성·인재 지적
"밤에 (제방이) 터졌으면 우리는 다 죽었어요."
같은 날 찾아간 경남 창녕군 이방면도 비슷했다. 이틀 전 제방 40m가 유실되면서 완전히 물에 잠겼다. 물이 점차 빠지면서 뻥 뚫린 제방은 방수포 설치 등 응급 복구부터 마쳤다.
낙동강 물살을 막아주던 이방면 제방은 거센 빗줄기에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설계 당시 수위 18.56m까지 견딜 수 있게 했지만, 이번에 17.6m에서 붕괴했다. 금지면의 제방도 500㎜ 가까운 폭우를 견디지 못했다. 제방 안전 부실, 인재(人災) 가능성이 대두된 것이다.
주민 "제방 보강 거부, 강변 정비 부족"
남원시 상귀마을 주민들은 지자체의 섬진강 정비가 소홀했다고 주장한다. 갑작스러운 섬진강댐 방류와 더불어 평소 강바닥과 주변에 쌓인 나무·수초 등을 방치한 게 제방 붕괴에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김모(78)씨는 "곡성군에서 생태공원을 만든다며 (섬진강 주변에) 손을 안 댄다. 이번에 비가 많이 온 건 맞지만, 미리 강 주변에 있는 나무, 풀 등을 베어버리고 바닥도 치웠으면 제방이 압력을 덜 받았을 것이다"고 했다.

집중호우로 침수 피해를 본 전북 남원시 송동면 한 축사 근처 웅덩이에 소 한 마리가 빠져 있다. 연합뉴스
기후 위기 극복할 '백년대계' 필요
최승일 고려대 명예교수는 "치수 사업처럼 장기간 투자와 유지관리가 필요한 분야는 일이 터질 때만 주목받는다. 정치권과 정부는 이러한 기반 시설에 10년, 20년 꾸준히 예산 우선 순위를 둬야 한다"고 밝혔다. 서일원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도 "현재의 하천 사업은 졸속으로 하는 감이 없지 않다. 철저히 대비하지 않으면 내년, 내후년에 언제든 피해를 볼 수 있다"면서 "국가 인프라라는 건 정권과 상관없이 큰 시야를 갖고 계획하고 연구하며 설계, 시공,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소홀했던 지류·지천 관리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김성준 건국대 사회환경공학부 교수는 "지류·지천부터 먼저 정비하거나 4대강과 동시에 정비했어야 한다. 진행 순서가 거꾸로 되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지류·지천 정비에 적극 투자해야한다"고 말했다. 장석환 대진대 건설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제방 설계 기준 등을 지금보다 상향하고, 지자체가 지방하천 재해 예방 비용을 제대로 쓰는지에 대한 관리·감시를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창녕·남원·나주=이은지·김준희·진창일 기자, 정종훈·편광현·윤상언 기자 sakehoon@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