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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관짝소년단 패러디와 세계화

중앙일보 2020.08.13 00:13 종합 28면 지면보기
강혜란 문화팀 차장

강혜란 문화팀 차장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 가장 좋다. 기회가 되면 한번 같이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던 가나 출신 방송인 샘 오취리의 희망은 절반만 실현된 듯하다. 이른바 ‘관짝소년단’을 패러디한 의정부고 졸업사진을 비판했던 그가 역풍 속에 사과하고 물러간 자리에서 네티즌들은 “비하 의도가 없었는데 무슨 인종차별이냐” “의도와 별개로 인종차별이 맞다”며 충돌하고 있다. 지난 10일엔 ‘인종차별에 대한 교육을 공교육 과정에서 자세히 다뤄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듯, 문화 수용도 맥락에 따라 바뀐다. 지난 6월 타계한 할리우드 감독 조엘 슈마허의 대표작 ‘폴링다운’은 1994년 수입 당시 시민단체 반발로 개봉이 불발됐다. 주인공 백인 남자가 불친절한 한인 상인에게 “한국인은 돈만 안다. 우리(미국)가 한국전쟁 때 너희를 얼마나 도와준 줄 아느냐”며 거칠게 항의하는 장면이 문제가 됐다. “인종차별이나 반한 감정이 아니다”라는 배급사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해당 영화의 국내 상영까진 3년이 더 걸렸다. 당대 미국 사회 및 캐릭터 이해에 필요한 장면이었더라도 태평양 건너 한국인이 보기에 달갑지 않았던 게다.
 
노트북을 열며 8/13

노트북을 열며 8/13

일각에선 오취리도 예전 방송에서 찢어진 눈을 흉내 내며 동양인을 비하한 전력이 있다고 지적한다. 애초에 관짝 밈(meme)을 만든 가나의 원작자가 이번 소동에 개의치 않는다며 의정부고 졸업을 축하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건 오취리나 가나 원작자의 반응이 아니다. 흑인 흉내를 위해 얼굴 색칠을 하는 ‘블랙 페이스’가 다문화시대에 인종차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단 걸 모르는 사람들이 한국엔 너무 많다. ‘단순한 놀이일 뿐’이라는 해명이 안 통하는 사회(이를테면 미국)와 우리가 실시간 연결돼 있단 사실을 망각한 채 말이다.
 
전 세계가 연결되고 소통하는 시대라서 문화 섞임도, 충돌도 잦아진다. 최근 방탄소년단(BTS) 멤버 슈가는 신규 발매한 믹스테이프 ‘D-2’에 미국 사이비 종교 교주 짐 존스의 연설을  샘플링했다가 지적받고 삭제했다. BTS가 글로벌 팬덤을 누리는 대신 얻게 된 ‘세계화 리스크’의 단면이다. 전 세계 투어를 다니는 뮤지컬 ‘캣츠’의 배우들은 극 중에서 약속된 ‘객석 희롱’을 할 때 태국에선 관객의 머리를 만지지 않는다. 그 사회 금기를 건드리지 않는 거다. 뉴질랜드에서 엉덩이를 툭툭 친 게 성희롱이 아니었다고 우리 사회에서 호소해봤자 소용없다. 더 많은 차이와 존중에 촉각을 세워야 하는 시대다.
 
강혜란 문화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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