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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부모와 출가한 자식 간엔 적당한 담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2020.08.12 07:00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53) 

며칠 동안 비가 억수같이 내린다. 이런 날은 모르는 사람에게 말 걸기 좋은 날이다. 고택을 방문한 낯선 분이랑 차 한 잔 나누며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갓 결혼한 아들 내외의 주말 방문 소식을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자랑하신다. 아직은 낯선 며느리에게 흉이라도 잡힐까 봐 전전긍긍한다. 늘 속옷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남편의 옷차림이 걱정이고, 식사 후 며느리에게 설거지를 시키는 것이 당연한가 아닌가도 걱정이다. 또 비좁은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간다 하니 집 안 청소도 걱정이다. 이전엔 시어머니가 며느리 집을 방문해 방방을 둘러보고 느닷없이 냉장고 문을 휙 열어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을 얼어붙게 했던 그 장면을 지금은 며느리가 행하고 있단다. 우스갯소리지만 현실성 있는 말이다. 그러니 손님맞이 장도 보고, 정리정돈까지 완료해야 한다.

 
며칠 동안 비가 억수같이 내린다. 이런 날은 모르는 사람에게 말 걸기 좋은 날이다. [중앙포토]

며칠 동안 비가 억수같이 내린다. 이런 날은 모르는 사람에게 말 걸기 좋은 날이다. [중앙포토]

 
자식이라곤 달랑 하나 뿐인 보고 싶은 아들이 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장가간 아들 내외가 방문하는 것은 다르다. 그분의 말에 의하면 아들이 쓰던 방에 침대까지 바꿔놓고 그들이 방문하면 숙소가 되도록 해놓았다.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일도 아닌, 일 년에 몇 번 안 오는 특별 손님의 자리끼를 준비하고, 청소를 말끔히 해놓고 기다리다 보면, 누가 주인이고 누가 객인지, 아들의 세컨드 집인지 내 집인지 분간이 안 된단다. “맞아, 맞아요” 크게 맞장구치며 웃었다.
 
나는 새집을 지어 이사 나오면서 여분의 방을 손님방으로 만들지 않고 내가 주인인 공간으로 만들었다. 처음엔 손님방이라 칭했으나 방을 확 바꾸어 나만의 도서관과 한쪽엔 취미로 하는 재봉실로 만들어 놓았다. 자식이 혼자 올 땐 내 엄마가 있는 집이라 마룻바닥에서 같이 자도 되지만, 내외가 방문하면 다르다. 나의 계획은 멀리서 오는 손님이나 자식 부부는 호텔이나 근처 펜션에서 숙박하게 하리라 마음먹었다. 어느 분의 강의에서 말씀하신 ‘서로 다른 것을 묶어 새로운 방향을 잡는다’는 ‘통섭이론’이다. (내 맘대로 해석이다) 이것도 나만의 5차 산업인 것이다.
 
내가 계획한 대로 아이들이 왔을 때 호텔로 보냈냐고 물으면 아직은 ’노(No)“다. [사진 pixabay]

내가 계획한 대로 아이들이 왔을 때 호텔로 보냈냐고 물으면 아직은 ’노(No)“다. [사진 pixabay]

 
그래서 내가 계획한 대로 아이들이 왔을 때 호텔로 보냈냐고 물으면 아직은 ‘노(No)’다. 그들은 나의 멋진 생각을 보기 좋게 물 먹이고 있다. 아들과 며느리가 따로따로 오는 거다. 특히 며느리 혼자서 손자를 데리고 내려오면 너무 예쁘고 고마워서 상전 중의 상전 모시듯 하고 있다. 인생살이의 이론과 현실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면 그것도 재미있다.
 
정면이 없는 한 그루 나무같이 고부간의 삶도 생각하기에 따라서 그리 걱정할 일도 어려운 사이도 아니다. 그들이랑 마음 맞추려 걱정하기보다는 같이 사는 동반자와 마음 맞추기가 백세시대에 백배 낫다. 침대를 치우고 방을 빼서 나만의 다실을 만들어 아들 내외를 특별 손님으로 맞이하고, 영업(?)이 끝난 후 특별손님 등 떠밀어 호텔로 쫓아내면 어려운 시어머니가 멋지게 보이지 않으려나. 부모와 출가한 자식 간에는 담이 있어야 하고, 적당히 쌓은 담은 좋은 이웃을 만든다던 어느 분의 글처럼 말이다.
 
 
우중충한 날에 유머 한장으로 글을 마무리해 본다.
 
좋은 집안에서 시집온 며느리가 경대 앞에 이런 글을 써서 붙여놓았다. 배운 게 많은 시어머니는 깊은 뜻이 들어 있을 것이 분명한 이 글귀를 어떻게 멋지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現月新火(현월신화)
十中十五高(십중십오고)
 
“달이 나타나면 불이 새로 번지고” 아주 문학적이고 종교적인 해석을 하는데, 외출하고 돌아온 며느리가 의외로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현대백화점은 월요일에, 신세계는 화요일에 논다. 중학교 동창회는 10일에, 고교 동창회는 15일에 있다.”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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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옥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필진

[송미옥의 살다보면] 요양보호사 일을 하다 평범한 할머니로 지낸다. 지식은 책이나 그것을 갖춘 이에게서 배우는 것이지만, 인생살이 지혜를 배우는 건 누구든 상관없다는 지론을 편다. 경험에서 터득한 인생을 함께 나누고자 가슴 가득한 사랑·한·기쁨·즐거움·슬픔의 감정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쓴다. 과거는 억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이웃과 함께 남은 인생을 멋지게 꾸며 살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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