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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거래 없었단 소신, 그대로" '임종헌 재판 선 이동원 대법관

중앙일보 2020.08.11 17:50
이동원 대법관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속행 공판에 증인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이동원 대법관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속행 공판에 증인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이동원(57ㆍ사법연수원 17기) 대법관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1심 법정에 증인으로 섰다. 임종헌(61ㆍ17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서다. 이 대법관은 “(통합진보당 행정소송은) 재판 거래가 아니라는 소신은 동일한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했다.    
 

2016년 맡은 통진당 항소심

이 대법관은 2016년 서울고등법원 행정6부 부장판사로 부임하며 이른바 ‘통진당 소송’ 항소심의 재판장이 된다. 이 소송은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을 해산하기로 결정한 이후 소속 국회의원들이 의원 지위를 인정해달라며 법원에 낸 소송이다. 헌재는 통진당 해산 결정을 내릴 때 통진당 의원들의 의원직 상실 결정을 함께 내렸다. 하지만 전 통진당 의원들은 의원직 상실 부분에 한해선 헌재가 아닌 법원이 판단해달라며 소를 제기했다.
 
1심에서는 “헌재의 결정을 법원이 다시 판단할 수 없다”며 각하 판결을 했다. 각하란 소송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재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결정이다. 헌재가 이미 의원직 상실 결정을 했으니 법원이 다시 판단할 권한이 없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장을 맡은 이 대법관은 1심과 달리 의원직 상실 소송 자체는 법원에서 판단할 수 있다고 인정하고 재판을 열었다. 이후 이석기 전 의원은 내란선동죄로 징역형을 받아 이미 의원직을 잃었고, 다른 통진당 의원들은 헌재 결정 효과로 의원직을 상실했다며 통진당 의원들의 항소를 기각했다. 
 
기각은 1심의 각하와 달리 소송 요건이 충족돼 재판이 열린 뒤 재판부가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결정이다. 1심과 결론은 똑같았지만 의원직 상실과 관련해 헌재의 결정 이후에도 법원에게 판단 권한이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헌재의 권한 확대에 상당한 경계심을 갖고 있었다.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이 지난해 9월 검찰 조사를 받기위해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던 모습. [뉴스1]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이 지난해 9월 검찰 조사를 받기위해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던 모습. [뉴스1]

검찰 "이민걸이 문건 전달해 재판개입" 

검찰은 당시 법원행정처가 “의원직 상실 결정 권한은 헌재가 아닌 법원에 있다”는 의중을 항소심 재판부에 전달해 재판에 개입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이 대법관이 1심과 결론은 같으면서도, 각하가 아닌 기각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검찰은 그 증거로 이 대법관이 당시 이민걸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을 만나 이 대법관의 판결과 유사한 취지의 내용이 담긴 법원행정처 통진당 문건을 받은 사실을 제시했다. 해당 문건에는 '헌재의 정당 해산 결정 이후 소속 의원 지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이 잘 정리된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이날 재판에서 이 대법관은 2016년 2월~3월쯤 당시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을 식사자리에서 따로 만난 것은 인정했다. 이 대법관에 따르면 두 사람은 ‘35년 된 제일 친한 친구’라고 한다. 사법연수원 동기로 단짝으로 지냈고 평소에도 자주 만나며 허물없이 지냈다.
 
이 대법관은 이 전 실장이 당시 문건을 건네며 “위헌 정당 해산 결정이 있을 때 의원 지위를 상실하는지에 대해 법원에 아예 재판권이 없다고 하는 건 이상하지 않으냐”는 뉘앙스로 말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이 대법관은 이 전 실장으로부터 받은 문건을 전혀 판결에 반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그런 문건을 받고 심적 부담감을 느꼈냐는 질문에는 “심적 부담감은 없다. 재판은 법관이 알아서 하는 것이고 역사가 판단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청문회 때도 받은 질문… “재판 거래 아니라는 소신, 그렇다”

이동원 당시 대법관 후보자가 2018년 7월 25일 열린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이동원 당시 대법관 후보자가 2018년 7월 25일 열린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이 대법관이 통진당 행정소송과 관련해 질문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 대법관은 2018년 대법관 인사청문회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된 것 아니냐는 취지의 질의를 받았다. 당시 야당에서는 “옛 통진당 인사들은 이 사건과 관련해 ‘재판거래’ 의혹이 있다고 지적한다”고 이 대법관에게 물었다. 이 대법관은 “재판 거래가 아니다. 법과 양심에 따라 국민 앞에 한치의 부끄러움이 없다”고 대답했다. 
 
이날 증인 신문에서도 그날의 기억이 소환됐다. 임 전 차장의 변호인은 “2018년 청문회 때 ‘재판 거래가 아니다’라고 말한 소신은 지금도 동일한가”라고 물었다. 이 대법관은 “그렇다”고 답했다. 이 대법관은 당시 국회에 제출한 서면답변에도 자랑스러운 판결로 문제가 된 정당 해산 소송을 꼽았다. 그 이유를 묻는 변호인의 질문에 이 대법관은 “선례가 없는 사건이었고, 법원과 헌재의 심판권에 대해 제가 가진 생각을 정리해 고민하고 쓴 판결”이라고 답했다. 
 
이날 증인 신문을 마친 뒤 이 대법관은 "대법관으로 증인석에 앉는 것이 유쾌한 일은 아니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뒤이어 "형사 재판을 해 본 입장에서 누구든지 증거 공방이 있으면 (증인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안다"며 "재판부가 고생하겠다"고 말한 뒤 인사를 하고 법정을 떠났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ang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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