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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피해자 일자리도 알선···전국 255곳 ‘전담 경찰관’ 떴다

중앙일보 2020.08.11 05:00
범죄피해자와 심리상담을 진행하는 피해자전담경찰관. [경찰청]

범죄피해자와 심리상담을 진행하는 피해자전담경찰관. [경찰청]

범죄 피해자 장례 돕고, 새 일자리도 알아봐 주고….
 
자원봉사자 이야기가 아니다. 전국 경찰서 255곳에 배치돼 범죄피해자를 돕는 '피해자 전담 경찰관'의 실제 업무다.  
 
피해자 전담 경찰 제도는 경찰이 2015년 '범죄피해자 보호 원년의 해'를 선포하며 처음 마련했다. 구체적으로 명시한 피해자 전담 경찰관 업무는 ▶신변 보호용 스마트 워치 제공 ▶주거지 노출로 보복범죄 우려되는 피해자에게 호텔 등 임시숙소 지원 ▶강력범죄로 주거지가 훼손된 경우 강력 범죄 현장정리 등 3가지다.
 
하지만 현실에선 더 많은 일을 한다. 검찰청 범죄피해 지원센터와 연계해 생계비를 지원하거나 고용노동부와 함께 새로운 일자리 찾을 수 있도록 돕는 등 업무 범위가 넓다. 6년째 피해자전담 업무를 맡은 부천 원미경찰서 소속 홍재진 경사는 "범죄 피해자에게 일종의 '보험설계사'의 역할을 한다"며 "범죄 피해를 보아 막막할 때 경찰이 각 기관에 지원을 연계해주고 회복을 도우며 일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흉기 찔린' 그곳 돌아가지 않도록

홍 경사는 기억에 남는 사례로 2018년 8월 고시원에 살던 탈북 남성이 옆방 70대 할머니를 흉기로 찌른 사건을 꼽았다. 당시 할머니는 신경 손상, 과다출혈로 입원 후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피해를 본 고시원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가 가진 돈은 3만원. 밥솥, 숟가락, 허름한 여름옷 3벌, 얇은 이불이 가진 전부였다. 이를 딱히 여긴 홍 경사가 민간단체를 통해 지원 방안을 수소문해 작은 월세방에 할머니를 모셨다.  
 
'폭력 남편'이 자살하며 남긴 빚 상속을 막아준 일도 있다. 2000년 초반 귀화한 한 조선족 부부는 딸을 낳고 살았지만, 결혼 생활이 순탄치 않았다. 여성은 남편의 폭력과 도박을 견디다 못해 신고했다. 경찰로부터 피의자 출석을 요구받은 남편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런데 남편이 그동안 도박으로 쌓아둔 빚이 산더미 같은 상황이었다. 여성은 빚을 그대로 상속받을 처지였다. 홍 경사는 법률 조언을 받아 여성이 빚을 떠안지 않도록 '한정승인'을 택할 수 있게 도왔다.
 
층간소음으로 분노가 극에 달한 아래층 거주자가 '위층 사람을 칼로 찔러 죽이고 싶다'며 위험한 상황까지 번졌을 때도 피해자 전담 경찰관의 역할이 빛을 발했다. 홍 경사가 당사자끼리 앙금을 풀 수 있도록 대화의 장을 마련했다. 
데이트 폭력 피해자를 임시숙소로 피신시키며 피해자 옷가지를 차에 싣고 있는 피해자전담경찰관. [경찰청]

데이트 폭력 피해자를 임시숙소로 피신시키며 피해자 옷가지를 차에 싣고 있는 피해자전담경찰관. [경찰청]

"경찰 직접 집행 예산 늘려야"

경찰 관계자는 "긴급이전비·치료비·장례비용 등 급하게 지급해야 하는 비용이 있지만, 경찰이 직접 집행하기 어렵다"며 "검찰에 신청 후 심의위원회를 열어 의결하는데 통상 1~2개월 걸리기 때문에 지원을 포기하는 피해자도 많다"고 토로했다.
 
경찰이 긴급한 피해자 보호를 전담하고 있지만, 전체 범죄피해자 보호 기금 예산 1012억원 중 직접 다룰 수 있는 돈은 13억원(1.3%) 수준이다. 나머지는 ▶법무부 459억원 ▶여성가족부 314억원 ▶보건복지부 223억원씩 각 부처에 배정된다. 경찰은 신속하고 효과적인 범죄피해자 보호·지원을 위해 긴급생계비(장례비)나 치료비만이라도 경찰 단계에서 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 경사는 "피해자 보호는 범죄 발생 초기 대응이 중요한데 타이밍을 놓치고 있다"며 "피해자를 가장 먼저, 직접 대면하는 경찰이 쓸 수 있는 예산을 늘리면 많은 부분이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혜림 기자 kwon.hye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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