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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돈의 퍼스펙티브] 국회 견제 사라진 대통령 ‘컬트’ 같은 존재 된다

중앙일보 2020.08.10 00:39 종합 23면 지면보기

위기의 대통령제

지난달 27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는 문재인 대통령. 대통령이 의회 견제를 받지 않으면 숭배자들로 둘러싸여 컬트 같은 존재가 될 위험이 있다. [뉴시스]

지난달 27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는 문재인 대통령. 대통령이 의회 견제를 받지 않으면 숭배자들로 둘러싸여 컬트 같은 존재가 될 위험이 있다. [뉴시스]

집권 여당의 국회 운영이 의회주의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국회 다수 의석에 의존해 국정 사안을 일방적으로 처리하는 것은 위험할뿐더러 민주주의 원리에도 어긋난다. 우리는 지금까지 대통령의 실패를 여러 차례 보아왔는데, 대개가 의회 다수 의석에 의존해서 권력을 행사했던 경우였다.
 

대통령의 컬트화는 민주주의와 국가 발전에 부정적
숭배자들에 둘러싸이면 자기 최면서 벗어나기 힘들어
지금 청와대 참모진은 왕조시대 어전회의 방불케 해
행정부처 수장 장관에 권한·자율권 줘야 대통령제 살아

대통령제 국가는 두 가지 위험에 봉착할 수 있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과 의회 다수 의석을 차지한 세력이 대립하는 경우와, 대통령이 정당을 매개로 의회 다수 의석을 장악해서 전횡하는 경우다. 전자의 경우는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이나 시라크 대통령처럼 ‘동거 정부’로 풀어가든가, 미국 레이건 대통령처럼 의회 다수당과 대화로 풀어가야 한다. 후자는 우리나라 4, 5공화국과 러시아의 푸틴 정권 같은 경우인데, 이는 민주정부라고 할 수 없다.
 
오늘날의 대통령은 대통령제를 처음 도입한 미국 건국 초기의 대통령이 아니다. 미국 헌법 제정자들은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으며, 의회 다수 의석을 기반으로 한 포퓰리즘을 경계했다. 이들은 영국의 조지 3세 같은 국왕이 있어서는 안 되지만, 올리버 크롬웰 같은 포퓰리즘 독재자가 나와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탄생한 미국 헌법은 유권자가 직접 의원을 선출하는 하원, 각 주가 2명씩 의원을 선출하는 상원, 선거인단이 선출하는 대통령, 상원 동의 아래 대통령이 지명하는 사법부로 구성된 권력 분립 정부를 탄생시켰다.
  
대통령 권력은 남용되기 쉬워
 
20세기 들어 대통령은 국가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로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1, 2차 세계대전과 대공황 등 위기가 지속하자 대통령은 모든 문제를 풀어가야 하고 풀 수 있는 해결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는 미국 헌법 제정자들이 예상했던 바가 아니었다.
 
대통령이 가진 권력이 크기 때문에 남용되기 쉽다. 그래서 대통령제를 이식한 다른 나라들은 신대통령제라고 불리는 독재 국가로 전락했다. 독일 출신의 정치학자 칼 뢰벤스타인(1891~1973)은 일찍이 대통령제가 미국에 유일한 경험이며, 다른 나라의 대통령제는 권위주의적 정부라고 설파했다.
 
대통령은 많은 집행적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의회와 사법부가 제대로 견제하지 않으면 선출된 제왕이 되기 쉽다. 오늘날 대통령 선거는 여론조사 등 과거에 없었던 요소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가 국민을 통합하고 야당과 협력해 통치하겠다는 장밋빛 공약을 내세운다. 하지만 그런 공약이 허무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국민 통합을 내걸지 않은 대통령이 없었지만, 통합은커녕 분열이 심해져 심리적 내란 상태에 들어선 나라가 한둘이 아니다.
 
대중은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을 능력과 경륜으로 판단하기보다는 그가 가진 스토리 같은 감성적 기준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미디어에 의해 보여지는 이미지가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미디어에 목을 매며 자신의 이미지를 조작하기도 한다. 꾸준히 국가 경영에 관여하면서 능력을 키워온 사람보다는 TV 리얼리티 쇼 출연이나 가족사에 대한 책 한권으로 별안간 부각된 사람이 대통령 후보가 되고, 또 대통령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대통령이 된 사람은 우상(偶像)이나 마찬가지다.
 
환상을 팔았건 스토리를 팔았건 간에 일단 대통령이 되면 그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게 되는데,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용어가 말하듯 자체로서 매우 위험한 현상이다. 더구나 오늘날 대통령은 한 국가의 대표와 행정부 수반을 넘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대통령에 대한 과다한 기대는 대통령을 ‘컬트’(cult·숭배 대상)로 만든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대통령에 대한 판돈이 커지게 되면서 그를 두고 벌이는 지지와 반대는 이성을 넘어서게 된다.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기 때문에 대통령은 한순간에 영웅이 되기도 하고 또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컬트와 우상은 원래 허망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흑인 등 소수인종을 위해 큰일을 할 것으로 기대됐다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소외된 백인들에게 희망을 주었다는 점에서 각각의 지지 세력에겐 우상 같은 존재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민주주의에도, 또 국가 발전에도 절대 좋지 않다. 대통령이 ‘컬트’의 함정에 빠져버리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권한을 휘두르게 된다.
  
대통령 참모회의, 집단 사고에 빠져
 
조용한 리더십으로 새로이 평가되고 있는 캘빈 쿨리지(1872~1933) 미국 대통령은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 최면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이들은 항상 자신들을 숭앙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기 마련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통령제에선 원래 장관이 그의 참모이자 정책을 이끌어가는 행정 각 부의 수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백악관이든 청와대이든 베르사유의 어전(御殿)회의를 방불케 하는 참모진을 두고 통치한다. 오늘날 대통령의 참모 회의는 자신들의 세계에 갇혀 세상을 보는 집단 사고(group think)에 빠져 있다. 프랑스혁명으로 비극적 최후를 맞은 부르봉 왕조의 어전회의와 같은 방식으로 통치하는 현상은 대통령제가 지향하는 바가 절대 아니다. 의회 견제가 사라져 버린 상황에서 대통령이 제왕을 넘어서 컬트 같은 존재가 된다면 그 사회의 장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대통령에게 영웅적 리더십 기대하지 말아야
아서 슐레진저 2세

아서 슐레진저 2세

미국 코넬대의 저명한 정치학 교수였던 클린턴 로시터(1917~1970)는 1956년 나온 『미국 대통령(The American Presidency)』이라는 책에서 미국 대통령이 매우 성공적인 제도라고 평가했다. 그는 해리 트루먼 같은 평범한 사람도 대통령이 돼 그 직무를 잘 수행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대공황·냉전 등 위기가 일상화한 세상에서 대통령의 합헌적 독재는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베트남 전쟁과 워터게이트는 대통령을 보는 미국민의 시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하버드대 교수 출신으로 케네디 백악관에서 특별보좌관을 지낸 아서 슐레진저 2세(1917~2007)는 1973년에 나온 『제왕적 대통령(The Imperial Presidency)』에서 견제와 균형 아래서 대통령이 국가 정책을 이끌어가던 합헌적 대통령(constitutional presidency)이 베트남 전쟁과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보여 준 바와 같은 제왕적 대통령으로 변했으며, 나아가서 혁명적 대통령(revolutionary presidency)으로 진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의회가 원래의 역할을 회복해서 권력 분립 원칙을 구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케이토연구소의 진 힐리는 2008년에 나온 『대통령의 컬트(The Cult of the Presidency)』에서 대통령에 대한 의존이 위험할 정도로 커지고 대통령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하는 현상을 ‘컬트’로 표현했다. 그는 대통령에게 영웅적 리더십을 기대해서는 안 되며, 권력에 대한 회의적 태도가 미국 헌법의 토대라고 지적했다. 2009년 판에서 그는 오바마 대통령이 많은 약속을 했지만 결국에는 실망시키고 말 것이며, 대통령이 미국인의 꿈을 실현해줄 것이라는 허황된 관념이 지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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