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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용의 미래를 묻다] ‘로컬 에너지’가 녹색 공동체를 일군다

중앙일보 2020.08.10 00:37 종합 24면 지면보기

에너지 주권, 에너지 자치 

손성용 가천대 전기공학과 교수

손성용 가천대 전기공학과 교수

‘에너지 민주주의’라는 말이 한동안 관심을 끌었다. 에너지 민주주의는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하나는 에너지 정책과 관련한 의사결정 과정에 시민이 참여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에너지 생산·소비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다.
 

주민이 만드는 ‘에너지 공유경제’
동네 근처 공유지나 공공건물에
공동 투자해 작은 발전소 설치
집에서 쓰고 도서관 등에 기부도

성장 중심의 시대에 에너지는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경제적·안정적인 보급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고속성장 시대가 끝나고 성숙 단계에 이르자 환경·안전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소수 전문가 영역에 머물렀던 에너지 정책 결정 과정에도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원자력 발전소 건설과 관련한 이슈였다. 이는 아직도 사회적 합의 여정에 있다.
  
에너지 민주화 시대의 도래
 
공영주차장 같은 공유지에 주민들이 함께 투자해 태양광 발전소를 만들고 전기를 나눠쓰는 식의 에너지 커뮤니티가 생겨나고 있다. 사진은 미국 샌디에이고의 주차장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공영주차장 같은 공유지에 주민들이 함께 투자해 태양광 발전소를 만들고 전기를 나눠쓰는 식의 에너지 커뮤니티가 생겨나고 있다. 사진은 미국 샌디에이고의 주차장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에너지 민주화의 다른 한 축은 보다 적극적인 소비자로서 에너지의 생산·유통·소비에 참여하는 참여형 민주주의다. 현재 우리 전기요금은 자회사에서 전기를 사서 소비자에게 개별적으로 판매하는 한국전력에 의해 결정된다. 요금에 관한 소비자 선택권은 극히 제한적이다.
 
그러나 청정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비용 또한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조금 더 많이 요금을 내더라도 청정에너지를 사겠다는 의사를 가진 소비자가 등장했다. 밤·낮 중에 언제 더 전기를 많이 쓰는지 등에 따라 다른 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선택권을 요구하는 소비자도 나타난다. 지역 농산물을 구매하듯이 동네에서 생산한 전기를 원하기도 한다. 일부는 여전히 예전처럼 저렴한 에너지를 원하고 있다. 이렇게 요구가 다르고 지향하는 가치가 다른 소비자가 혼재하는 에너지 민주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문제는 ‘지금의 전기 공급 체계가 시대적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가’다. 에너지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핵심 엔진은 분산형 에너지의 확산이다. 전통적인 대형 발전소가 아니라, 태양광·풍력처럼 작은 에너지원들이다. 외국의 경우에 태양광 발전은 초기 설치 비용이 매년 20%씩 낮아지고 있어, 증가하는 전통 에너지 요금과 맞물려 빠른 속도로 에너지원을 대체하고 있다. 직접 재생 에너지를 설치하는 것이 전력회사에서 전기를 사는 것보다 싸지는 시점을 ‘그리드 패리티’라고 한다. 점진적으로 많은 나라가 이에 도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20년대 중반에는 그리드 패리티에 이를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드 패리티에 도달하면 정책적 지원이 없어도 시장 논리에 의해 재생 에너지 보급이 자발적으로 확산한다. 소비자가 생산자가 되는 ‘에너지 프로슈머’가 된다. 문제는 때론 생산한 전기가 쓰고 남을 만큼 넘치고, 때론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남거나 모자라는 전기를 전력회사가 아니라 소비자들 간에 사고파는 필요성이 대두한다. 그런데 남는 전기를 먼 지역으로 보내려면 전력회사가 설치한 전기선을 써야 하고, 그에 따른 대가를 얼마나 치러야 하는지 복잡한 논의를 해야 한다. 이로부터 자유로운 모델이 ‘에너지 커뮤니티’다. 지역에서 생산한 에너지를 지역에서 소비하는 것이다. 동네에 설치한 태양광은 비싼 전력회사의 전력망을 이용하지 않으므로 에너지를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래도 ‘공간 부족’이란 문제가 있다. 국내 에너지 소비는 도시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도시에서 태양광을 설치할 수 있는 공간은 옥상과 주차장 일부다. 즉, ‘수요지에서 생산한다’는 전제에 어려움이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특히 총 2000만 가구 중 1000만 가구가 아파트 생활을 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도시에서 더 현저하다. 현실적으로 공간이 부족하다. 옥상에 설치하고 싶어도 조형물이 있거나, 공간이 협소하다. 베란다에 설치한 태양광 패널에서 만드는 전력은 가정 소비량의 10~20% 내외로, 언 발에 오줌 누기다. 그마저도 햇빛이 잘 들어올 때의 이야기다. 저층과 북향은 충분한 햇빛을 받을 수 없고, 동향과 서향도 제한적이다.
 
현실적인 대안은 근처 공유지나 공공건물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나오는 전기를 나눠 갖는 방법이다. 그래도 여전히 문제가 남는다. 물리적으로 우리 집과 태양광 발전소가 떨어져 있어, 생산한 전기를 우리 집까지 가져오는 전력망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나온 것이 ‘가상 넷 미터링’이다. 내가 투자해 태양광 패널을 동네 공지에 설치하고, 여기에서 생산한 전기는 우리 집에서 나온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전기 계량기를 집에 하나, 태양광 발전기에 하나 달고, 생산량과 소비량을 더하기 빼기 한다. 생산이 더 많으면 다른 곳에 팔 수도 있다.
  
이왕이면 햇빛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저 멀리 남쪽에 설치하는 게 좋겠지만, 아무리 ‘가상 넷 미터링’으로 생산과 소비를 연결한다 하더라도 종내엔 물리적인 연결이 뒷받침되어야 하니 너무 먼 곳에 설치하면 전송 비용과 같은 복잡한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보통 동네 가까운 곳에 설치하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진정한 그린·디지털 뉴딜로 가는 길
 
건초와 가축분뇨로 전기를 만드는 독일 윤데마을 전경. 쓰고 남는 전기를 팔아 한 해 약 15억원을 번다. [사진 윤데마을]

건초와 가축분뇨로 전기를 만드는 독일 윤데마을 전경. 쓰고 남는 전기를 팔아 한 해 약 15억원을 번다. [사진 윤데마을]

규모의 경제를 위해 이웃끼리 돈을 모아 협동조합과 같은 형태로 설치하고, 발전한 전력량을 지분대로 나눠 가질 수 있다. 혹은 사업자가 선행 투자하고, 동네 사람들은 자기가 필요한 만큼 구독료를 내고 발전 시설을 빌려 쓸 수도 있다. 태양광을 예로 들었지만, 풍력·연료전지·에너지저장장치 등 다양한 에너지 자원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다. 이렇게 구성된 에너지 커뮤니티는 설치된 자원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공유경제와 같은 효과를 갖는다. 자연스럽게 사회적 자원의 효율적 이용을 추구하게 된다.
 
에너지 커뮤니티가 단순히 경제성을 추구하는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미국 콜로라도주에서는 법을 만들어 이렇게 설치하는 태양광 용량의 5%에 저소득층이 지분 참여하도록 의무화했다. 태양광 자원이 풍부한 미국은 에너지 커뮤니티가 대략 원전 2기에 해당하는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독일 ‘윤데(juenhnde) 마을’은 협동조합을 설립해 지자체와 함께 재생 에너지에 기반한 에너지 자립마을을 꾸민 사례다.
 
커뮤니티 구성원이 태양광 발전량을 저소득층이나 공공기관에 기부하면 세금을 감면받는 모델도 있다. 이를 통해 누구나 동네 태양광에서 만든 전력을 동네 경로당이나 도서관에 기부할 수도 있다. 녹색 에너지를 매개로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진정한 에너지 커뮤니티의 탄생이다. 이는 요즘의 태양광 협동조합처럼 단순히 돈을 버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기부를 할 수 있어서만이 아니다. 지역 주민들이 정보 기술을 이용해 물리적 한계를 극복한 에너지 기반 공유경제 플랫폼을 만들고, 녹색 에너지를 직접 생산·소비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에너지 민주주의의 구현이다. 동시에 진정한 그린 뉴딜이면서 디지털 뉴딜이 될 것이다.
 
시·도 별로 다른 전기요금제 가능할까
에너지 민주주의, 에너지 주권주의가 요구하는 것 중의 하나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요금 체계’다. 지금 우리나라가 맞춰 적용하기는 힘든 부분이다. 그러나 값싼 심야 전력을 사용하는 정도의 길은 열려 있다. 하지만 불만인 소비자도 있을 것이다. 낮에 집안일을 하는 전업주부, 전업남편이라면 오히려 주간 전력 요금이 더 싼 것을 원하지 않을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에 자녀들이 온종일 집에 있는 요즘, 더군다나 낮에 에어컨까지 틀어야 한다면 주간 전기요금 할인에 대한 요구는 더 커질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개별 요구를 일일이 맞춰 주기는 쉽지 않다. 특정 가정뿐 아니라 전체적인 수요·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시장 가격구조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기는 ‘에너지 사용 합리화’를 추구해야 하기에 더 그렇다.  지금 같은 중앙집권적 전력 생산·유통·공급 체제에서 개별 수용가의 요구까지 맞추기는 어렵지만, 광역 단위로는 어떨까. 예를 들어 시·도별 전력 생산과 소비 특성을 살펴 요금제를 달리하거나, 보다 작은 에너지 커뮤니티 단위로 요금제를 만드는 식이다. 풍력뿐 아니라 태양광 발전이 많은 제주도는 낮에 전력 생산이 넘친다. 남는 전기를 처리하는 데 골치를 앓을 정도다. 그렇다면 주간 전기요금을 싸게 책정해 낮 시간 소비를 늘리는 게 해결책 아닐까. 상대적으로 태양광 발전이 많은 호남 지역에도 똑같이 적용해 봄 직한 논리다.
 
지역별 특성에 따라 제주도에 적합한 요금제와 서울시에 걸맞은 제도는 완전히 다를 수 있다. 이러한 차이를 수용하고자 한다면, 기존의 체계는 스스로 지역 단위로 분리되어야 하는 딜레마에 봉착할 것이다. 기존 시스템이 변화를 수용하는 경우, 그 자체로 에너지 민주주의의 달성에 기여하는 형태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손성용 가천대 전기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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