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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고유민 비극 부른 악플…포털, 6일 만에 “댓글 잠정중단”

중앙일보 2020.08.10 00:02 종합 8면 지면보기
프로배구 선수 출신인 고(故) 고유민씨가 악성 댓글에 대한 심경을 밝힌 인터뷰. [스포카도]

프로배구 선수 출신인 고(故) 고유민씨가 악성 댓글에 대한 심경을 밝힌 인터뷰. [스포카도]

월간 순방문자 수(MAU)가 각각 3800만 명, 3600만 명에 달하는 국내 양대 포털 네이버·카카오(다음)가 지난 7일 스포츠 뉴스 댓글 서비스를 “잠정 중단하겠다”고 동시에 발표했다. 지난 1일 여자 프로배구 선수 출신인 고(故) 고유민(25)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데는 악성 댓글이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는 인터뷰가 공개된 이후 나온 결정이다. 스포츠 선수들이 인신공격성 댓글로 힘들어하고, 포털이 이를 방치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스포츠 뉴스의 댓글 창을 부랴부랴 없애기로 한 것이다.
 

연예인·운동선수 잇단 악플 고통
네이버·카카오 땜질 처방 되풀이
“필터링 기술 진전되면 재개 논의”
AI가 “네가 선수냐” 악플 걸러낼까

이 같은 국내 포털의 사후약방문식 댓글 대책에 대한 비판 여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2017년 ‘드루킹 사건’처럼 댓글이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서거나, 지난해 가수 설리 사망 때처럼 악성 댓글로 피해를 보는 사람이 발생하고 나서야 땜질식 대책을 하나씩 내놓기 때문이다.
 
이번 두 회사의 결정은 어디까지나 ‘잠정적’이다. 네이버는 “악성 댓글 노출을 자동 제어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라며 “이 기술의 실효성이 담보되면 댓글 서비스 재개를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카카오도 “외부 전문가와 함께 (댓글) 서비스 발전 방향을 논의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스포츠 유튜브 채널 스포카도가 ’악플로 고통받는 선수가 더는 없길 바라는 유족의 요청에 따라 영상을 올린다“며 공개했다. 네이버는 스포츠 뉴스 댓글 서비스를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네이버 캡처]

스포츠 유튜브 채널 스포카도가 ’악플로 고통받는 선수가 더는 없길 바라는 유족의 요청에 따라 영상을 올린다“며 공개했다. 네이버는 스포츠 뉴스 댓글 서비스를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네이버 캡처]

댓글 서비스는 포털 입장에서 댓글 작성자를 모으는 동시에 댓글을 보는 사람들의 관심과 클릭을 유도하는 훌륭한 상업적인 수단이다. 골칫거리라는 이유로 댓글 창을 모두 닫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결국 댓글을 영구히 포기하기는 아쉬우니 ‘기술을 보완해 댓글 서비스를 재개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피해자는 줄줄이 나오는데 두 포털은 자신들의 댓글 정책으로 악성 댓글이 줄었다고 오히려 자화자찬한다. 네이버는 지난달 21일 “댓글 이력 공개 제도 등의 효과로 삭제되는 댓글 건수가 63%나 줄었다”고 강조했다. 카카오도 6월 “댓글 접기 기능을 도입하니 욕설·비속어 댓글이 20% 이상 감소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두 회사 발표가 있은 지 두 달도 안 돼 악성 댓글로 목숨을 끊은 피해자가 또 발생했다.
 
네이버·카카오가 악성 댓글 근절책으로 내놓은 대안은 인공지능(AI) 기술이다. 네이버는 지난해 4월 ‘AI클린봇 2.0’이라는 악플 탐지·차단 기술을 개발해 고도화하고 있다. 카카오도 2017년부터 욕설·비속어를 치환하고 악성 댓글을 자동으로 필터링하는 기술을 개발해 왔다. 하지만 현재 기술로는 악의적인 댓글과 비평을 구분하지 못한다. 지난 3일 유튜브 채널 ‘스포카도’가 공개한 고유민 선수의 생전 인터뷰를 보면 고 선수가 언급한 악성 댓글들은 “내가 발로 해도 그것보단 잘하겠다” “네가 배구 선수냐”와 같은 조롱식의 댓글이었다. AI가 욕설이나 비속어를 거를 수는 있어도, 내용으로 한 개인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 악성 댓글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연예·스포츠·일반 뉴스 댓글 서비스를 각각 분리해 일부만 막는 정책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한 부문을 막아도 결국 비슷한 악성 댓글 문제가 다른 부문에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용국(신문방송학) 동국대 교수는 “이런 땜빵식 대책은 실효성이 없다”며 “댓글의 기명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다른 방안을 찾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요한 것은 변죽만 울리는 땜질식 대책이 아니다. 뉴스 서비스, 모바일 라이브, 소셜미디어 등 이용자가 참여하는 모든 영역에 대한 댓글·언어 정책을 기본부터 점검하는 것이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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