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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파는 사회, 14억 대륙이 푹 빠진 드라마

중앙일보 2020.08.08 10:00

“서른이지만 괜찮아(三十而已)”

 
어쩐지 자기계발서의 제목을 연상시키는 문구. 요즘 중국을 뒤흔들고 있는 최신 드라마의 제목이다. ‘서른에는 (경제·정신적으로) 자립한다(三十而立)’는 공자님 말씀에서 단 한 글자(立-〉已)만 바꾸었을 뿐인데, 느낌이 사뭇 달라졌다.

30대 삶을 다룬 '삼십이이' 화제성 1위 기록
올 들어 중국에서 3040 콘텐츠 잇따라 흥행

 
30대의 삶을 주제로 펼쳐지는 이 작품은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한 주인공 3인의 일상을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드라마 속 캐릭터의 모습이 중국 청년 세대가 느끼는 불안·초조의 정서와 맞아 떨어지며 공감대를 불러 일으켰고, 드라마 화제성 1위를 달리고 있다.
 
*三十而已: 중국어로 ~而已는 ~일 뿐이다/ '서른일 뿐이다'를 '서른이지만 괜찮아'로 의역함.
*드라마 제목에 한해 한어 독음으로 표기함, 나머지는 중국어 발음 표기.
[사진 더우반]

[사진 더우반]

 

삼십이이(三十而已 서른이지만 괜찮아, 서른일 뿐)

 
-장르: 도시, 드라마
-주연: 장수잉(江疏影), 퉁야오(童瑶), 마오샤오퉁(毛晓彤), 양러(杨玏)
-회차: 총 43부작(회당 45분)
-방송 플랫폼: 둥팡웨이스(东方卫视), 텅쉰스핀(腾讯视频)
[사진 텅쉰왕]

[사진 텅쉰왕]

 
드라마 ‘삼십이이’는 2020년 7월 17일 첫 방송 후 줄곧 화제성 1위를 달리고 있다. 중국인들은 SNS에 드라마에 관한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자연스럽게 검색어 상단을 장식했고, 방송 이틀 만에 시청률 1%(중국은 채널이 워낙 많아서 1%만 넘어도 성공으로 간주함)를 넘어섰다.
 
작품에 대한 평가도 긍정적이다. 7월 22일 작성일 기준, 중국 인기 리뷰 사이트 더우반(豆瓣)에서 8.1점을 기록 중이다. 대다수가 별 5개 만점에 4개 이상을 줬고, 일주일 만에 3만 명이 평점에 참가했으며, 약 6500명이 짧은 평을 남겼다.
[사진 더우반]

[사진 더우반]

 
드라마는 상하이(上海)에 사는 여성 3인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30대라는 연령대는 같지만, 각자가 처한 상황은 미혼 직장인, 전업 주부, 가정을 이뤘지만 정신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성인 등으로 갈린다.
 
배우 장수잉(江疏影)이 연기하는 왕만니(王漫妮)는 지방 출신 직장인으로, 30대 미혼 직장인의 마음을 대변한다. 명품 매장에서 판매원으로 일하며 경제적인 자립을 했지만, 비싼 집값과 직장 내 정치 싸움에 시달린다. 고향집에서는 결혼 압박을 해오지만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는 건 쉽지가 않다.
장수잉이 연기하는 왕만니 역 [사진 둥팡웨이스]

장수잉이 연기하는 왕만니 역 [사진 둥팡웨이스]

 
전업 주부 구자(顾佳)역은 퉁야오(童瑶)가 맡았다. 아이 양육을 위해 스스로 일을 그만두고 전업부부의 길을 택한다. 호화주택에서 살지만 막상 자기 옷을 사는 데는 쉽게 지갑을 열지 못하는 캐릭터다.  
 
매일 반복되는 집안일 속에서 왕년에 외국어 능력자로 잘 나갔던 그녀는 점차 자아를 잃어간다. 구자 캐릭터는 가정과 직장의 양립 속에서 고민하는 젊은 엄마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퉁야오 [사진 둥팡웨이스, 펑파이]

퉁야오 [사진 둥팡웨이스, 펑파이]

 
한편, 마오샤오퉁(毛晓彤)이 분하는 중샤오친(钟晓芹)은 대도시 평범한 가정 출신의 평범한 직장인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과도한 보호 속에 자란 탓에 자립심이 다소 부족하다.
 
중샤오친은 사회인이 된 이후 홀로서기에 어려움을 겪는다. 남편과의 무의미한 결혼 생활은 숨이 막히고, 일상에 찾아오는 돌발 상황에는 속수무책이다.
마오샤오퉁 [사진 둥팡웨이스]

마오샤오퉁 [사진 둥팡웨이스]

 
대중이 이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유는 30대의 현실을 잘 녹여낸 덕분이다. 캐릭터 3인의 배경과 처지가 각기 달라 이들 중 어느 하나에는 자신의 모습이 담겨있다. 지방 출신은 외지인의 어려움에, 직장인들은 회사에서의 정치 싸움에, 경력단절 여성은 육아를 위해 퇴사를 택한 인물에 몰입하고 마음을 쓴다.
 
중국에서 현실주의 드라마가 사랑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산아제한의 폐단을 다룬 가족드라마 도정호(都挺好), 부동산 업계를 배경으로 한 안가(安家), 베이퍄오(北漂 지방출신 베이징 상경러)의 어려움을 다룬 북경여자도감(北京女子图鉴) 등 많은 현실주의 작품이 최근 1-2년 사이 인기리에 방송됐다.
[사진 터우탸오]

[사진 터우탸오]

 
중국 매체들은 “복잡한 줄거리나 극적인 설정 없이 각 캐릭터를 충실히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 이 드라마의 차별점이라고 평가한다.
 
30대에 접어든 주인공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성취에 대한 자부심을 지녔지만, 예기치 못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 속에서 현실에 무뎌지기도 하고 타성에 젖은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처럼 입체적인 캐릭터 설정이 설득력을 높이고 공감을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사진 소후닷컴]

[사진 소후닷컴]

 
요즘 중국에서는 3040을 전면에 내세운 콘텐츠가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앞서 승풍포랑적제제(乘风破浪的姐姐)라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30대 이상, 많게는 50대 참가자들이 경쟁을 통해 걸그룹으로 데뷔하는 컨셉을 내세웠다. 오디션은 10대와 20대의 전유물이라는 기존의 틀을 깨고 역대급 조회수를 기록하며 신드롬급 인기를 누렸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가 되기 위해 미뤄뒀던 꿈을 찾아간다는 스토리텔링이 대중들의 공감을 산 덕분이다.
 
삼십이이도 마찬가지다. 팬덤 파워를 지닌 비주얼 배우나 톱스타 없이 스토리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주인공을 맡은 배우 3인방은 주연급으로 활동하지만 흔히 말하는 '섭외 1순위'는 아니다.
 
그 중에서도 배우 퉁야오는 '장쯔이 닮은꼴'이라 불리지만 인지도는 그에 비해 확연히 떨어지는 편이다. 그러나 드라마가 인기몰이를 하면서 퉁야오를 포함 주연 3인방에 대한 관심도 덩달에 높아지고 있다.
[사진 터우탸오]

[사진 터우탸오]

 
드라마와 영화는 시대를 반영한다. ‘삼십이이’가 화제몰이를 하는 것은 지금의 30대가, 혹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중국인들이 작품에 공감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혼, 출산, 그다음은 둘째 출산과 육아로 이어지는 '정해진 과업' 앞에 압박감을 느낀다. 그러나 현실 속의 나는 아직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지 못했고 내집 마련은 저세상 얘기일 뿐이다.  
 
일각에서는 3040 콘텐츠의 잇따른 성공을 가리켜 '불안함을 판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드라마 속 인물을 보며 '내 맘과 같다'고 공감하고, 늦깎이에 전성기를 맞이한 스타를 보며 '아직 늦지 않았다'고 위안한다.
 
3040세대는 가장 활발하게 경제·사회 활동을 해야할 시기이지만, 멈출 줄 모르는 집값 상승과 취업난 앞에 불안하고 초조하다. 코로나 19 발발 후 역대 최악의 불황을 맞이한 중국에서 그 '불안'은 더욱 증폭되고 있으며, 이같은 상황은 우리나라도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서른이면 '자립(而立)'할 나이인데 '서른일 뿐(而已)'이라 불안하다. ‘삽십이이'는 불안함을 먹고 사는 그들에게 '고작 서른일 뿐인 걸' '서른이지만 괜찮아'라고 위로의 말을 건넨다.  
 
 
차이나랩 홍성현
 

[사진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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