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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의 문화난장] 꼰대들은 위대하다

중앙일보 2020.08.06 00:26 종합 27면 지면보기
박정호 논설위원

박정호 논설위원

2009년 타계한 서양화가 이성자 화백이 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전시수도 부산에서 생면부지의 나라 프랑스로 돌연 유학을 떠났다. 당시 서른셋. 외과의사 남편의 외도에 금쪽같은 아이 셋을 두고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 나섰다. 그전엔 붓 한 번 만진 적도 없었다. 이 화백에게 그림은 생존 자체였다. 사전을 한 장씩 뜯어 먹으며 프랑스어를 익혔고, 하루하루 절박하게 그림 공부를 했다. 고향과 자녀에 대한 그리움을 달과 별, 그리고 하늘에 담았다. 그리고 세계가 인정하는 화가로 우뚝 섰다.
 

설 자리 좁아진 아버지들
그들 없는 오늘 있었을까
비뇨기과 노 교수의 변론
어르신 9만명 무료 진료

2014년 그의 서거 5년을 맞아 서울 반포동에 이성자기념관이 들어섰다. 기업가로 성공한 막내아들 신용극(75) 유로통상 대표가 먼저 간 어머니에게 바치는 선물이다. 여섯 살 코흘리개 때 어머니와 헤어진 신 대표는 각국에 흩어진 어머니의 작품을 하나하나 찾아내고, 비행기와 배로 한국에 실어왔다. 어머니의 살가운 정은 받지 못하고 컸으나 이역만리에서 외롭고도 힘들게 예술혼을 불사른 어머니를 기렸다. 아버지가 돼 보니 어머니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신 대표의 30여 년 지기가 있다. 권성원(80) 차의과대학 비뇨의학과 석좌교수다. 반세기 넘게 수술칼을 잡아온 전립선 종양 전문가다. 권 교수는 신 대표의 사모곡(思母曲)에 감동했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속담이 틀릴 때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한때 어머니를 원망했지만 지금은 어머니를 품고 사는 친구를 보며 이 시대 위대한 아들을 읽어냈다.
 
이성자(1918~2009) 화백의 도자기 작품 ‘다시 만난 사랑 No.1’. 프랑스에서 활동한 이 화백은 가족과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따듯하게 풀어냈다. [중앙포토]

이성자(1918~2009) 화백의 도자기 작품 ‘다시 만난 사랑 No.1’. 프랑스에서 활동한 이 화백은 가족과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따듯하게 풀어냈다. [중앙포토]

권 교수는 글 잘 쓰는 의사로 유명하다. 편안한 입말로 진료실 안팎에서 마주친 이들의 가슴 뭉클한 사연을 풀어놓는다. 절대 잘난 체하지 않는다. 개발과 성장의 시대를 고달프게 살아온, 지금의 대한민국을 일군 아버지들의 얘기가 대다수다. 집 안팎에서 을로 살아온 아버지의 복권 선언쯤 될까. 최근 나온 『위대한 아버지』가 그렇다. 신 대표를 비롯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아버지들에게 따듯한 악수를 건넨다.
 
『위대한 아버지』는 이른바 꼰대들에 대한 헌사다. 그렇다고 자화자찬은 아니다. “우리가 이렇게 이뤄놓았으니 너희들이 잘 대접해야 한다”고 핏대를 세우지 않는다. 사회 각계의 아버지들이 살아온 자취를 나직한 목소리로 뽑아낸다. 여든 살 노 교수가 동시대 친구들에게 띄우는 전상서라 할 수 있다. 자녀들이 잘 모르는 아버지들의 속내에 함께 웃고 함께 울게 된다.
 
권성원 차의과대학 석좌교수.

권성원 차의과대학 석좌교수.

책에 소개된 사연은 다양하다. 거친 털가죽을 다듬고 독한 염색약을 만지면서도 “교육만이 살 길”이라며 자녀들을 미국 명문대에 보낸 가죽공장 직공, 1960년대 미국에 군전문의 요원으로 파견됐다가 불법 출국자로 몰린 아들을 대신해 “깜방에 가겠다”고 자청한 노인, 서울 황학동 대장간에서 평생 풀무질을 한 함경도 아바이와 그런 아버지가 미워 월남전에 입대한 해병대 아들, 아내와 사별한 뒤 홀로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아들 둘도 의사로 키운 경남 거창국제학교 설립자 등등, 어느 하나 각별하지 않은 게 없다. 이들을 묶는 교집합이 있다면 권 교수에게 치료를 받은 환자이거나 그 가족이라는 점. 비뇨기과 진료실 풍경으로 본 20세기 한국인의 초상이다.
 
권 교수도 위대한 아버지에 포함될 만하다. 지난 20년을 배뇨로 고통받는 어르신을 찾아 전국을 순례했다. 2013년 전남 고흥을 시작으로 의료 손길이 부족한 도서벽지 무료진료를 총 41회 펼쳤다. 대학교수 등 정상급 의료진과 함께 첨단장비를 싣고 촌로들의 막힌 ‘아랫동네’를 뚫어주었다. 매월 2~3회, 수도권 보건소 순회 진료도 420여 차례에 이른다. 지금껏 9만 명을 보살폈고, 이를 일반 진료비로 따지면 200억원 가까이 된다고 한다. ‘전립선 전도사’ ‘하수도과 청소부’라는 별명이 이해된다.
 
2020년은 권 교수에게도 힘든 해다. 코로나19로 예정된 순회 진료가 대부분 취소됐다. 주변 후원자들 사정도 예전 같지 않다. 『위대한 아버지』는 그 빈틈을 일부 메우는 책이다. 수익금 전액이 어르신들에게 돌아간다. 그 전에 발표한 『아버지의 마음』(2012), 『아버지 눈물』(2015) 인세 1억여원도 그렇게 쓰였다. “봉사도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힘이 들어가선 곤란하죠. ‘좋은 글도 적선’이라고 말한 어른이 계셨는데, 그 뜻을 제대로 살렸는지 모르겠어요. 수능 준비하듯 몸은 파김치가 됐지만 마음만은 깃털처럼 가볍습니다.”
 
박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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