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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 칼럼] ‘화나요’‘좋아요’만의 세상

중앙일보 2020.08.04 00:43 종합 31면 지면보기
최훈 편집인

최훈 편집인

자고 깨면 ‘화나요’ ‘좋아요’ 만 골라야 하는 세상이다. 국회의 임대차보호법 표결은 찬성 186 대 반대 0. ‘41% 당선 대통령’의 대표성을 거론한 감사원장은 “그렇게 불편하면 당신이 사퇴하라”는 양자 선택 협박에 직면한다. 의구심이라도 제기하면 “소설 쓰시네”다. 중간? 없다. 토론은? 더욱 없다. 질서 유지가 본업인 검사들의 막장 육탄전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생각의 중간이 없으니 그냥 모든 게 천박해질 뿐이다. 성장의 에너지인 이견(異見)의 토론과 조정은 정치학 교과서 민주주의 항목에서나 간신히 숨을 쉰다.
 

내 편 아니면 온통 ‘묻지마’ 공격
미국도 ‘이견·공개토론’의 대논쟁
다른 견해 들어 주고 토론하면서
생각·판단의 중간지대 늘려가야

하긴 쉬운 일은 아니다. 코넬대의 심리연구팀 조사에 따르면 성인은 매일 3만5000번의 의식적 판단을 내린다. 먹는 음식에만도 하루 227번. 국을 먼저 뜰지 다음엔 김치, 아니 멸치볶음을 먹을 건지 선택이다. “하나의 결정은 앞서 내린 많은 결정들의 누적된 결과”라고 한다. 또 다른 연구는 보통 사람이 평생 77만3618번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그 뒤 5분의 1 가까운 14만 3262번은 후회한다고 일러 준다. 복잡한 뇌 회로 생명체들이 함께 사니 이견은 필수다. 무정부의 혼란을 막고, 그나마 함께 사는 생존의 틀은 다수결의 민주주의(물론 소수 의견도 존중하며)와 사적 소유를 인정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다. 이 두 축은 그러나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이견과 대립, 그보다 극히 우려스러운 건 이견을 해소하려는 다양한 정보 제공과 공개 토론의 공간이 와해되는 현상이다.
 
민주주의 선진국이던 미국. 뉴욕타임스(NYT)에서 촉발된 최근 두 달간의 대논쟁은 이견과 공개토론의 중요성을 새삼 성찰케 한다. NYT가 6월 3일자에 게재한 아칸소주 상원의원 톰 코튼의 기고 “군대를 투입하라(Send in the Troops)”가 발단.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 격화된 흑인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군을 투입하자는 내용이다. SNS의 거센 역풍 속에 NYT 기자 800여 명도 항의 서명을 하자 아서 G 설즈버거 발행인이 사내 타운홀 회의를 소집했다.
 
설즈버거는 “독자들이 지면에선 오피니언 면이라는 공간과 맥락에서 칼럼을 읽지만, SNS로 접하는 시대에선 외부 기고가 NYT 의견이 아니란 걸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지면에서처럼 토론거리를 제시하려는 욕심에 서두르다 벌어진 일”이라며 “인쇄 오피니언 시대의 ‘몸이 기억하는 습관(muscle memory)’을 버리지 못한 데서 비롯된 사태”라고 유감을 표했다. 직후 제임스 베넷 논설면 편집장이 “게재 과정의 검증이 부족했다”며 사직했다.
 
월스트리트저널 기자 280명도 “코로나 2차 유행은 없을 것”이라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자사 기고에 항의하며 “보도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으니 명확히 뉴스와 오피니언을 구분해 달라”는 서한을 발행인에게 보냈다.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의 스탠 비시노브스키 수석편집장은 칼럼에서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를 빗대 ‘건물도 중요하다(Buildings Matter, Too)’는 제목을 달았다가 SNS와 사내의 비난에 결국 사임했다.
 
NYT 등 전통(Legacy) 언론이 SNS의 위력에 무릎 꿇은 모양새지만 여진은 더욱 커졌다. NYT 베넷 편집장 밑의 배리 와이스 에디터는 “트위터가 NYT의 최고 에디터가 됐고, 대부분은 디지털 천둥이 두려워 자기 검열 속에 산다”며 발행인에게 공개 사직서를 보냈다. 와이스는 칼럼을 둘러싼 사내 논란을 “깨어있는 대부분의 젊은 기자들(the mostly young Wokes)과 40대 이상 자유주의자들(the Liberalists)의 내전(civil war)”이라고 칭해 논란이 증폭됐다. 항의 서한의 마무리로 그녀는 “NYT의 칼럼은 공적 의미를 지니는 모든 중요한 질문들을 숙고하는 토론의 장으로 삼아야 하고, 그러려면 의견의 모든 사각(死角)지대로부터의 지적인 토론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NYT 창업자 아돌프 옥스의 성명을 인용했다.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던 지식인 150명이 일어났다. ‘하퍼스매거진’에 『정의와 공개토론에 관한 서한』을 게재하며 조앤 K 롤링, 노엄 촘스키, 프랜시스 후쿠야마, 데이비드 브룩스, 로저 코언, 파리드 자카리아, 맬컴 글래드웰 등이 서명했다. 이들은 “이견에의 무관용, 공개적 망신주기, 사회적 매장은 물론 복잡한 정책마저 맹목적 신념의 이슈로 뒤바꿔 와해시키기가 대유행”이라며 “나와 다르다고 이견을 배척하는 걸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불가분의 관계인 정의와 자유 사이의 그 어떤 잘못된 양자택일도 거부한다”는 게 결론이었다. 검증된 말과 글도 중요하지만, 이견을 소개하고 토론을 유도하는 행위와 주체들이 ‘화나요’의 광풍에 움츠러들면 곤란하다는 목소리였다.
 
권력의 압력에서도 민주시민의 판단을 위한 다양한 생각과 시각을 제공하는 건 학자·작가·언론 등 지식인 사회의 꿋꿋한 책무여야 한다. ‘장단점을 알게 됐어요’ ‘좀 더 알고 싶어요’ 등 생각의 중간 지대! 삶의 5분의 1을 ‘후회’로 살지 않으려면 우리 모두가 넓혀가야 할 공간이다.
 
최훈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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