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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자유민주주의 근본 흔드는 거대 여당

중앙일보 2020.08.03 00:39 종합 29면 지면보기
정의화 전 국회의장

정의화 전 국회의장

문재인 정부를 본질부터 의심하는 국민이 늘고 있다. 조국 사태 이후 정의와 공정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대한민국의 기본이자 원칙인 헌법 정신까지 위협받고 있다.
 

국회법에 명시된 토론·절차 무시
국회를 정권의 도구로 전락시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제도적 장치들이 있다. 입법부·사법부·행정부 3부의 견제와 균형은 물론이고, 헌법 97조에 따라 설치된 감사원도 직무 감찰과 회계 검사 등 중요 역할을 담당한다. 그런데 집권여당은 감사원의 탈원전 정책 감사가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감사원장을 흔들고 사퇴까지 요구한다. 원하는 감사 결과를 내라는 노골적 압박이다. 명색이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의 행태치고는 한심하기 짝이 없다.
 
대한민국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검찰과 법원이라는 사법체제를 통해 법치를 구현하고 사회를 정의롭고 공정하게 유지한다. 그들이 그렇게도 추켜세우던 윤석열 검찰총장이 살아있는 권력에 칼끝을 향하자 야단법석이 벌어진다. 그저 불법을 수사하고 정의를 수호하겠다는 검찰총장을 무력화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 중이다. 특히 추미애 법무장관의 언행은 공당의 대표를 지낸, 중진 국회의원 출신의 그것인지 의심스럽다.
 
그렇게도 외치던 검찰 개혁은 어디로 갔나. 검찰을 길들이기 위해 정권 편에 선 검사들에게 완장을 채워 수족처럼 동원한다. 검찰을 국민 검찰로 거듭나게 하겠다던 문 정부의 법무검찰개혁위원회는 어떠한가. 정권과 유착될 수밖에 없는 법무장관에게 제왕적 권한을 주고, 독립적 지위를 가져야 할 검찰총장은 허수아비로 만드는 방안을 개혁안이라며 제출했다. 검찰의 독주를 시민 시각에서 견제하겠다며 만든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의 의견도 묵살했다. ‘검언유착’ 사건에 연루됐다고 정권이 지목한 한동훈 검사장에 대해 심의위가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하리라고는 예상 못 했던 모양이다. 현직 검사장에게도 조작 올가미를 씌우려 하는 판이니, 힘없는 국민에게는 어떤 일까지 할지 무서운 세월이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의회민주주의를 말한다. 싫든 좋든 국회가 국민 대변자이자 마지막 보루일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그 보루마저 무너지고 있다. 대의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들이 국회 각 상임위장에서, 본회의장에서 군사작전처럼 벌어진다. 젊은 시절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했다는 사람들이 권력을 움켜쥐니 역설적으로 의회민주주의를 죽이고 있다.
 
법률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그래서 발의된 법안이 해당 상임위에 상정되면 대체 토론과 소위원회 심사를 충분히 거친 후 다시 상임위 전체회의를 열어 찬반 토론을 하는 절차를 마련해 둔 것이다. 상임위를 통과한 법률안은 법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해 처리한다. 상임위 상정 후 국회 전문위원들의 검토와 전문가,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도 필요한 과정이다. 하나의 법률이 통과되려면 아무리 빨라도 두세 달의 숙성기간이 걸리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이런 절차가 깡그리 무시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집권한 후 치러진 21대 총선에서 집권여당은 180석에 가까운 거대 의석을 차지했다. 그 의석을 무기로 국회법에 명시된 토론과 절차를 무시하고, 때로는 법안 내용조차 모르는 상태로 국회를 마구잡이로 운영하라고 국민이 명령한 적은 결코 없다. 민주적 절차는 사라졌고, 막무가내식 폭거만 남았다. 의회를 통법부로 만들고 정권을 떠받치는 도구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 하루빨리 자신을 돌아보고 정도를 걷기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현 여당과 정권의 반민주적 행태는 가까운 미래에 응분의 대가를 치를 것이다. 이미 우리는 여러 번 같은 경험을 했다. 민심이 천심임을 기억해야 한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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