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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준의 미래를 묻다] 인공지능 학습시키는 ‘데이터 장인’의 전성시대 온다

중앙일보 2020.08.03 00:37 종합 24면 지면보기

인공지능과 일자리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 고용정책연구본부장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 고용정책연구본부장

# 얼마 전까지 조선업이 힘들다고 하더니 금세 자동차산업이 어렵다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가 하면 수천억 원 적자 행진을 벌이는 스타트업에도 투자자와 일하려는 사람들이 모인다. 취미로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리던 어떤 이는 급기야 유튜버, 혹은 콘텐트 제작자로 불리며 본업보다 더 많은 수입을 벌어들인다. 한편에서는 경기가 악화해 울상인 자영업자들과 개업 후 석 달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는 가게들이 넘쳐난다.
  

데이터 수집하고 분석·가공해
AI 조련하는 업무 새로 생겨나
산업화 때 각광받던 숙련공 자리
데이터 장인들이 대치하게 될 것

AI가 일으킨 일자리 불안감
 
3년 전 국내 한 취업 포털이 설문을 했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자신의 일자리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75%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상당수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의견도 35%였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캐나다·일본·이탈리아·헝가리·그리스·폴란드·아르헨티나·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로 불안이 확인됐다. 불안의 근저에는 “격변의 와중에 내 일자리는 온전할까”라는 질문이 똬리를 틀고 있다. 인공지능의 시대에는 어떤 일자리가 줄고, 어떤 일자리가 새로 생기는 것일까?
 
1994년 어느 날, 헤지 펀드를 운용하던 데이비드 쇼는 1년 전 입사한 제프 베조스와 새로운 사업 구상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인터넷을 이용해 소비자와 생산자의 중간자 역할을 하는 비즈니스에 대해서였다. 베조스는 그 길로 회사를 나와 아마존(애초엔 이름이 ‘카다브라’였다)을 설립했다. 처음엔 고객이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하면 출판사로부터 배송받아서는 다시 고객에게 전하는 게 전부였다.
 
전시회에 나갈 로봇을 점검하는 모습. 인공지능은 사실 백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교재를 만들어 AI를 가르치는 일자리가 수두룩하게 생겨날 것이다. [신화=연합뉴스]

전시회에 나갈 로봇을 점검하는 모습. 인공지능은 사실 백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교재를 만들어 AI를 가르치는 일자리가 수두룩하게 생겨날 것이다. [신화=연합뉴스]

2년 뒤 그는 ‘북 매치’ 기능을 선보였다. 데이터를 축적해 소비자가 좋아할 만한 도서를 추천하는 기능이다. 비슷한 책들을 산 고객을 그룹으로 묶고, 그룹에 속한 사람들이 좋아할 책을 찾아주는 기능도 만들어 냈다. 고객들은 스스로 찾아내기 힘들었을, 심지어는 알지도 못하고 지냈을 책을 추천받자 열광했다. 98년 아마존의 직원당 매출은 오프라인 서점 반스앤드노블의 3배가 됐다. 이 과정에서 아마존에는 소비자 프로파일을 분석하는 업무 담당자가 생겼다.
 
포스코는 인공지능이 데이터를 학습해 내부 상태를 자동제어하는 고로를 포항과 광양에 각각 2기씩 갖고 있다. 인공지능 덕에 고로에 들어가는 연료를 덜 쓰면서도 만들어 내는 쇳물 양은 늘었다.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게 되면서, 포스코에는 고로 내부 상태를 최적으로 유지하게 할 학습자료를 갖고 인공지능을 훈련하는 업무 담당자가 생겼다. 고로 제어뿐 아니라 사람이 하던 다른 일을 인공지능이 대체해 나가면서 인공지능 훈련 담당자는 계속 생길 것이다.
 
전시회에 나갈 로봇을 점검하는 모습. 인공지능은 사실 백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교재를 만들어 AI를 가르치는 일자리가 수두룩하게 생겨날 것이다. [신화=연합뉴스]

전시회에 나갈 로봇을 점검하는 모습. 인공지능은 사실 백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교재를 만들어 AI를 가르치는 일자리가 수두룩하게 생겨날 것이다. [신화=연합뉴스]

새로운 직업은 기술 자체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탄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자리는 기존 작업에 신기술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생기고, 또한 신기술을 다루는 능력이 필요해지면서 생긴다. 아마존과 포스코에서처럼 말이다. 어떤 직업은 반대 과정을 통해 사라진다. 풀무질을 하고 달궈진 쇠를 망치로 두드려 범용 제품을 만들던 대장장이는 지금 거의 자취를 감췄다. 장치를 조작하는 전통적 생산직이 마찬가지로 사라지고 있다. 범용 제품은 대부분 공장에서 기계가 생산하고 사람은 그 기계가 잘 작동하는지 확인할 뿐이다. 인공지능을 도입한 포스코에선 고로 안을 들여다보고 점검하던 업무가 사라졌다. 대신 고로 내부 상태를 보여주는 계기를 확인하기만 하면 된다.
 
이러한 변화는 적어도 두 가지 점을 시사하고 있다. 첫째, 일자리는 없어지기도 하지만 생겨나는 일자리도 많다. 둘째, 산업화가 진행되며 컨베이어벨트 주변에서 일하는 근로자가 늘어난 것과 마찬가지로, 인공지능 기술이 확대될수록 데이터를 수집하고 저장하고, 분석·가공하며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는 업무는 늘어난다. 산업화 시대에 각광받았던 숙련 기능공의 자리를, 인공지능 시대에는 ‘데이터 장인’이 물려받는 것이다.
 
데이터 장인이 늘어나는 세상에 대한 전망은 어두운 구석도 있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미디어 홍보 담당관은 브래드 파스케일이었다. 그는 홍보 계획을 미끼로 페이스북의 광고 조언을 얻은 후 가짜뉴스를 퍼뜨려 트럼프의 승리를 이끌었다. 민주주의를 취약하게 만드는 데 데이터 공학이 사용된 것이다. 지금 세계 도처에는 이런 부류의 데이터 장인도 넘쳐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어느 기술이든 사람이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더 윤택한 사회도, 더 혐오스러운 사회도 만들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중간 직능 일자리’ 늘린다
 
전시회에 나갈 로봇을 점검하는 모습. 인공지능은 사실 백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교재를 만들어 AI를 가르치는 일자리가 수두룩하게 생겨날 것이다. [신화=연합뉴스]

전시회에 나갈 로봇을 점검하는 모습. 인공지능은 사실 백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교재를 만들어 AI를 가르치는 일자리가 수두룩하게 생겨날 것이다. [신화=연합뉴스]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세상에 대해선 ‘일자리가 없어지고 양극화가 심해질 것’이란 우려가 팽배했다. 그러나 인공지능을 활용하기 위해 데이터 장인이 늘어나는 세상은 걱정 대신 ‘어떤 역량을 키울 것인가’를 생각하며 새로운 기회를 잡으라고 말하고 있다.
 
2017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995~2015년 사이 회원국 일자리 변화를 고찰했다. 자료를 제출한 24개국에서 모두 숙련공 같은 중간 직능 일자리가 줄었다고 보고했다. 숙련도에 따른 임금 상승으로 중산층을 두껍게 하는 데 기여했던 게 중간 직능 일자리다. 이것이 감소했다는 것은 소위 ‘일자리 양극화’가 진행됐다는 의미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90년대와 2000년대에 제조업의 생산직 근로자 일자리가 줄면서 중간 일자리가 감소하는 현상이 관찰됐다. 제조업 생산현장에서 숙련공과 장인이 사라지며 일자리 양극화가 일어났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양상이 달라질 것이다. 과거의 장인이 제조업 생산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다면, 앞으로는 데이터 장인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제조업은 물론 서비스업에서도 그렇다. 데이터 장인은 인공지능의 활용이 만들어 낸 새로운 중간 일자리다. 아마존과 포스코에서 보았듯, 이미 그런 자리가 생겨나고 있다. 중간 일자리 감소 현상은 이미 과거의 일이 되어 가고 있다.
 
‘한국판 뉴딜’ 사업에서 우선해야 할 것은
아마존과 포스코에서는 인공지능·데이터가 일자리를 늘렸다. 고객이 인지하지 못하는 수요까지 데이터로 파악해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아마존의 북 매치), 생산 과정의 일부 혹은 전부를 데이터 기반으로 최적화하는 일(포스코의 인공지능 고로 제어) 등이다. 이런 것 말고도 일자리가 늘어날 방안이 있다. 개인·조직·시설이 정보를 스스로 모아 두고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받는 비즈니스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병을 치료하려면 진단을 해야 한다. 고령의 어르신일수록 살펴야 할 곳이 많다. 병증과 상태에 따라 치료방법도 다양하다. 충치를 치료하더라도 이가 상한 정도에 따라 초기에는 아말감, 그다음에는 크라운, 더 심하면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 교량·도로·항만 같은 사회간접자본(SOC)을 유지·보수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유지·보수를 위해서는 안전진단을 선행해야 한다. 오래된 것일수록 살펴야 할 것이 많다.
 
한국의 SOC는 체계적 유지·보수 관리를 필요로 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교량이나 도로 사진을 학습하고 훈련받은 인공지능이 특정 사진을 보고 어떤 종류의 보수 작업이 필요한지 제안하도록 준비할 수 있다. 하자의 종류를 식별하고 정도를 판단하며, 진단 상태에 따른 보수재료와 보수 공법을 체계화하고,이를 인공지능에 학습시키는 과정에서 데이터 장인이 생겨난다. 이렇게 얻은 노하우와 데이터 처리 기술은 습득자가 다른 일자리를 얻는 데 큰 원동력이 된다. 그러니 중앙정부나 지자체의 일자리 사업은 이런 일부터 우선해야 할 것이다.
 
개정된 개인정보보호법이 5일 시행된다. 자신의 금융·자산 정보, 선호하는 제품과 서비스, 건강·진료 정보, 노동시장 내 활동 내용과 자격증 등을 마이데이터 지갑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자산·건강·식단 관리와 취업 알선 등 맞춤형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기업이나 조직 또한 업무를 체계화하고 생산한 데이터로 인공지능을 기계 학습시켜 생산과정과 업무를 효율화할 수 있다. 이런 점을 본다면 그간 데이터 활용을 제약하는 조치가 얼마나 일자리를 제약하고 생산성 향상을 방해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데이터 장인·프로파일러가 일자리의 허리를 담당하는 시대를 만들어 가는 데도 걸림돌이었다. 향후 개인정보 관련 법 운용 과정에서도 염두에 둘 일이다.
◆허재준 본부장
세계은행(WB)에서 선임 경제분석가(시니어 이코노미스트)로 일했으며, 국제노동기구(ILO)와 아시아개발은행(ADB) 컨설턴트로 활동했다. OECD와 아시아생산성기구가 주최한 국제 행사에 초청받아 ‘디지털화와 직업의 미래’ 등에 대해 강연했다. 프랑스 정부 장학생으로 파리10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고용정책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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