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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한의 퍼스펙티브] 인격 아닌 스펙 닦는 대학, 공동체 정신 실종되면 종말

중앙일보 2020.08.03 00:28 종합 22면 지면보기

코로나19와 대학의 미래

코로나19로 대학 강의가 비대면으로 진행되며 대학이 비싼 등록금을 내고 다닐만한 곳이냐는 의문이 커지고 있다. 대학이 생존 위기를 이겨내려면 구성원들이 교육 지향점에 관한 분명한 의지를 갖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포토]

코로나19로 대학 강의가 비대면으로 진행되며 대학이 비싼 등록금을 내고 다닐만한 곳이냐는 의문이 커지고 있다. 대학이 생존 위기를 이겨내려면 구성원들이 교육 지향점에 관한 분명한 의지를 갖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포토]

“교수님들은 지난 학기를 혁신 기회라고 생각하시지만, 학생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수·학생·대학 각자도생 속 공동체 의식엔 무관심
코로나19는 대학의 미래에 대한 위기의 순간 앞당겨
교육 지향점에 대한 분명한 의지 갖고 선제 대응 필요
성급한 해답보단 좋은 질문 나누며 미래 교육 준비해야

지난 6월 중순 미래 교육을 주제로 한 온·오프라인 세미나 마지막 시간에 참가한 학생의 말이다. 정부와 대학은 코로나19 사태를 혁신 기회라고 선언했지만, 학생들이 동의하는 개혁은 아니었다는 지적이다. 대학이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을 하면서 대학 교육의 핵심 당사자인 학생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했는지 성찰하게 하는 말이었다. 교육 구성원들이 소통하면서 참여·협력을 통해 미래 교육을 함께 의논하지 않는다면 교육 공동체의 방향을 잃을 수 있다.
 
tvN 드라마 슬기로운 시리즈에 착안해 ‘슬기로운 미래 교육 시즌1’ 웨비나를 연세대 청년문화원과 크리킨디센터 주관으로 지난 5~6월 온·오프라인으로 7주간 진행했다. 드라마에선 생로병사의 최전선인 병원(‘슬기로운 의사생활’)과 생소하고 막막한 교도소(‘슬기로운 감빵생활’)도 서로 협력해 슬기롭게 생활한다면 살만한 곳이 되었는데 과연 대학도 슬기로워질 수 있을까.
  
대학, 학생 위한 세밀한 배려 필요
 
미래 교육과 대학 역할에 대해 의례적인 답을 내놓기보다, 좋은 질문으로 함께 고민하는 공동체를 만들자는 취지의 행사였다. 먼저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가 위기의 시기에 전환의 주체로 거듭나려면 우리 삶과 연결된 주위를 세심히 관찰·공유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세상을 봐야 한다고 발제했다. 이어 7주에 걸쳐 대학 내 협력, 진화적 관점에서 본 대학의 미래, 교육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불평등 등의 주제에 대해 교수와 학생, 교육 활동가가 활발히 토론했다.
 
교육 현장의 사각지대 문제도 제기됐다. 온라인 수업 과정에서 장애 학생 지원이 부족했다는 비판을 통해 위기 때 구성원의 세밀한 부분까지 배려하지 못했음을 확인했다. 반면 미국 여자 명문 웰즐리대에선 학생·교직원 안전과 건강·복지를 세심하게 살피고 사회적 지지를 통해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1학기 대학 교육의 가장 큰 변화는 온라인 전환이었다. 교수와 학생, 그리고 동료 학생 간에 얼굴을 마주 보며 소통하고 성장하는 상호 교류는 일시 중단됐다. 수업의 온라인화와 평가 관리는 당면 문제로 떠올랐다.
 
지난 5~6월 연세대 청년문화원과 크리킨디센터가 공동 주관해 온·오프라인으로 진행한 웨비나 ‘슬기로운 미래교육 시즌1’ 포스터. 코로나19 시대 대학 위기를 진단했다.

지난 5~6월 연세대 청년문화원과 크리킨디센터가 공동 주관해 온·오프라인으로 진행한 웨비나 ‘슬기로운 미래교육 시즌1’ 포스터. 코로나19 시대 대학 위기를 진단했다.

교수의 가장 근본 역할은 가르치는 일이다. 그러나 교수에게 강의가 투명하게 드러나는 온라인 현실에서 강단이라는 권위 없이 웹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은 낯설었다. 많은 교수가 기존 강의를 온라인 포맷으로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온라인 스타 강사와 디지털 콘텐트·유튜브 제작에 익숙한 학생들에게는 시대에 뒤처진 강의였는지 모른다. 가르치는 이도, 배우는 이도 낯선 한 학기였다.
 
이를 통해 온라인 교육에 대해 교육 공급자·수요자 간 이견이 수면에 드러났다. 디지털 콘텐트와 소통 방식의 질, 등록금 논란으로 상징되는 교육의 경제적 가치, 온라인 교육을 넘어선 대학의 사회적 역할, 입시 등 과거 부조리가 남긴 문제 등 많은 과제가 산적해 있다.
 
그런데도 대학 정체성을 위협하는 기존 문제들을 덮어둔 채 ‘뉴노멀’ 사회에 적응하는 게 지상 과제인 듯 서두르는 주장이 많다. 학령인구 감소, 강의 온라인화 등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해야 하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교육 지향점이 무엇인지 먼저 설정해야 한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 지향점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갖고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아직은 우리에게 충분한 정보가 없는 코로나19라는 문제에 대해 정답이라고 주장하는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위기는 기회다”라는 말은 긍정의 에너지도 품지만, 이면에는 위기를 활용해 재빨리 이익을 얻으려는 경박한 재난 자본주의의 모습도 도사리고 있다. 성급하게 임시방편을 택함으로써 값싼 이득은 취하지만 방향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주의해야 한다. 숨 쉴 틈 없이 관성으로 달려왔던 우리 사회가 잠시 멈춰 스스로 점검할 수 있는 시간으로 삼아야 한다.
  
대학 종말 전 주어진 마지막 기회
 
고등교육법 제28조에 따르면 대학의 목적은 ‘인격을 도야하고,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심오한 학술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국가와 인류사회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과연 대학이 이를 실천하고 있는가. 인격이 아니라 스펙을 갈고닦고 있고, 심오한 학술이론보다 가시적 성과와 취업률로 평가받고 있다. 국가와 인류에 이바지하기보다 교수·학생·대학 모두 생존에 급급한 상황이다. 생존을 위해 교육 공동체의 본질로부터 멀어지는 것 자체가 정체성의 종말이다.
 
코로나19는 대학의 미래에 대한 선택의 순간을 앞당겼다. 임시방편의 성급한 답을 내기보다 좋은 질문을 신중히 내놓고 대학과 사회, 교수·직원·학생이 모두 협력해 치열하게 머리를 맞대고 나누는 대화가 우선이다. 미래학자들에 의해 예견된 대학의 종말 전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하버드대의 코로나 구조조정, 남의 일 아니다
하버드대

하버드대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와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 등 많은 사람이 오래전부터 대학의 위기를 경고했다. 개방형 온라인 교육 플랫폼을 통해 누구나 세계 최고 수준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세상에서 대학에 다니는 선명한 이유가 없다면 대학은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구글·애플 등 세계적 기업의 채용에 대학 졸업장이 요구되지 않고,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역할을 대체함으로써 더는 교육이 필요 없는 분야가 늘어나는 추세는 대학 위상에 큰 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아울러 길어진 기대수명으로 인한 100세 시대, 2번 이상의 직업을 가져야 하는 시대에 20대 초·중반 특정 전공으로 끝나는 대학 교육의 역할이 적절한지 심각하게 재고해야 한다.
 
2019년 합계 출산율 0.92명인 한국의 극단적인 저출생 추세에서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의 위기는 언젠가 닥칠 시한폭탄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9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83.8%로 정점을 찍었던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2018년 약 70%로 떨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OECD 평균(41%)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과거 우리의 높은 대학 진학률은 인적자본으로 인식됐었다. 그러나 이제 대학 교육이 실용적으로 필요하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학령인구가 줄고, 대학 진학률이 OECD 평균으로 수렴해가는 건 한국 대학의 존립에 치명적이다.
 
이미 위태로운 상황에서 제4차 산업혁명이 요구하는 인재 양성을 위해 개선을 고민하던 대학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예기치 않은 직격탄을 예상치 않게 빨리 맞았다. 대학의 일상 기능이 마비됨에 따라 재정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튼튼하다고 알려진 미국 하버드대조차도 코로나19로 인해 인력과 설비 구조조정을 발표했다. 하버드대는 지난달 코로나19 영향으로 앞으로 2년간 수입이 12억 달러(약 1조4300억원)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며 교직원들의 조기 퇴직, 근무시간 단축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뿐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세계 대학들에 머지않아 닥칠 현실이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 교수·청년문화원장·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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