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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주의 시선] 하늘의 그물, 검찰의 그물

중앙일보 2020.08.03 00:18 종합 28면 지면보기
권혁주 논설위원

권혁주 논설위원

단속의 그물이 너무 성겼던 것일까. 지난해 2월 경찰은 ‘국고 보조금 비리 특별단속’을 선언했다. 보조금을 엉터리로 타내거나, 엉뚱한 데 쓰거나, 빼돌리는 등이 ‘중점 단속 유형’이었다. 신고 보상금까지 내걸었다.
 

정의연 사태 석달, 수사는 어디로
시시비비 가리는 ‘하늘 그물’ 역할
충실히 하는 게 국가 기구의 임무

경찰은 각종 첩보 등을 바탕으로 그해 9월까지 거의 8개월간 특별 단속을 했다. 결과는 발표하지 않았다. 지난 일이지만 문득 궁금해져 엊그제 경찰에 물었다. “당시 정의기억연대에 대해 파악한 바가 있나?” 담당자가 답했다. “정의연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단, 일선에서 (내사)하고 보고하지 않았을 수 있다.”
 
정의연은 회계 처리가 엉망이라 문제가 됐다. 애초 공시한 내용을 보면 수상하기 짝이 없다. 정의연 스스로 재공시를 통해 바로잡고 있다지만, 얼마 전까지 억대 누락이 예사였다. 국가 보조금 3억8500만원을 받고도 장부엔 0원이었다. 2018년엔 기부금 지출 총액이 5억6500만원이라 적었는데, 정작 개별사업 지출액의 합계는 3억2500만원이었다. 2억4000만원이 행방불명이다. 경찰은 오류와 의혹투성이 공시를 들여다보지 않은 것 같다. 봤다면 작년에 진작 난리가 났어야 할 터다.
 
그물이 성기기는 정부기구도 마찬가지였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8년 정의연에 대해 행정사무 감사를 하고서도 회계 오류를 적발하지 못했다. 관리 감독 책임이 있는 행정안전부·국세청·여성가족부 역시 하나같이 깜깜이였다.
 
똑같이 보조금 비리를 훑는 그물인데도 어떤 것은 촘촘하기 그지없었다. 경북 울진군에는 ‘울진군 범군민대책위원회(범대위)’라는 시민단체가 있다. 탈원전 정책에 맞서 신한울 원전 3·4호기 건설 재개를 요구하는 단체다. 울진군의 보조금을 받아 활동한다. 경찰은 이 단체를 탈탈 털었다. 3개월 넘게 20여 명을 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참고인으로 불려갔던 범대위 간부가 결백을 주장하는 유서를 쓰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지난해 7월의 일이다. 경찰은 조사 끝에 사건을 검찰로 넘겼다. 6년에 걸쳐 총 300만~500만원을 부적절하게 사용한 혐의로 알려졌다. 한 해 수십만원 꼴이다. 이 정도를 샅샅이 훑은 경찰이 정의연의 회계 오류는 찾지 못했다.
 
“(수요집회) 성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모른다. 할머니들한테 쓴 적이 없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버느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기자회견에서 이런 말을 한 게 5월 7일이었다. 그 뒤 수많은 의혹이 제기됐다. 정부부처와 검찰은 조사에 들어갔다. 얼추 석 달이 지났으나 아직 나온 게 없다. 이 또한 궁금해 물었다. 답을 들어도 고구마 막힌 듯한 답답함은 가시지 않았다. (괄호 안은 기자의 질문이다)
 
▶행정안전부=“조사 시간이 오래 걸린다. 내부적으로 계속 검토하고 있다.”
 
▶국세청=“개별 납세자 정보라 답변할 수 없다.” (조사 내용이 아니라 조사가 아직 진행 중인지, 끝났는지도 개별 정보인가.) “그것도 개별 과세 정보다. 얘기할 수 없다.”
 
▶국가인권위원회=“2년마다 하는 행정사무 감사를 올해 실시할 예정이다.” (소관 부처로서 행정사무 감사와 별도로 회계 논란을 조사·규명해야 하는 것 아닌가.) “국가 보조금은 행안부 소관이다. 인권위는 정관 등에 맞게 활동했는지를 보는 행정사무 감사를 올해 한다.”
 
검찰 수사도 제대로 굴러가는지 오리무중이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정의연 전 대표)에 대한 소환 조사는 언제 이뤄질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신속하게 수사하고 제기된 모든 의혹을 규명하라”던 윤석열 검찰총장의 지휘가 무색해지는 느낌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필두로 한 여권은 총장의 힘을 갈수록 빼놓고 있다.
 
일종의 ‘시위’였겠지만, 보다 못해 야당 의원이 정의연과 관련해 직접 수집한 증거를 검찰에 제출하는 촌극까지 빚어졌다. 모르겠다. 정부부처든 검찰이든, 정의연이 과거사를 바로잡고자 애썼기 때문에 조심스러워 하는 것은 아닌지. 조사하는 척, 그물을 드리운 척, 시늉만 내는 것은 아닌지.
 
공(功)은 공이요 과(過)는 과다. 허물이 있는지 밝히되, 책임을 물을 때 공로를 참작하는 게 법도다. 반대로 진실 규명을 통해 정의연이 떳떳함을 공인받고 명예를 회복할 수도 있다. 어쨌든 불거진 의혹에 대한 확인은 꼭 필요하다. 『노자』에는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疎而不失·하늘의 그물은 성기지만 놓치는 법이 없다)’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잘잘못은 반드시 가려진다는 뜻이다. 하늘의 그물을 대신해 국가 기구가 추구해야 할 역할이다. 온갖 압력에도 묵묵히 월성 원전 1호기 가동중단 의혹을 감사하는 감사원처럼.
 
권혁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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