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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감사원장

중앙일보 2020.08.03 00:17 종합 29면 지면보기
강기헌 산업1팀 기자

강기헌 산업1팀 기자

“어느 누구의 부당한 간섭이나 어떠한 부정적 타협에도 꺾이지 않는 꿋꿋한 자세를 유지하고 성역을 인정치 않은 철저한 감사를 수행해 헌법기관으로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해달라.”
 
1993년 2월 25일 열린 취임식에서 이회창 감사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양복 왼쪽에 신분증을 매단 감사원 간부와 직원들은 ‘열중쉬어’ 자세로 이를 경청했다. 이날 취임식은 상명하복 중심의 권위적인 군대 문화가 주류를 차지하던 감사원에서 변화의 신호탄이 됐다. 이후 9개월 동안 감사원은 파죽지세가 무엇인지 행동으로 보여줬다.
 
감사원은 율곡사업과 평화의 댐 감사를 진행하면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질의서를 보냈다. 대통령 재임 중 정책 행위도 감사의 대상이 된다는 선례를 만든 것이다. 성역으로 여겨진 청와대 비서실과 경호실에 대한 감사도 진행했다. 사문화 되다시피 한 헌법기관의 권한을 살려낸 것이다. 언론은 공관 입주마저 거부한 이회창 전 감사원장의 ‘대쪽’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이 ‘감사원=정부기관 압박 카드’를 내려놓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국 감사원장의 임기는 4년으로 주요 국가와 비교해 유독 짧다. 미국 회계감사원장의 임기는 15년이다. 대통령의 최대임기인 8년보다 두 배에 가까운 15년을 보장해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관점에서 독립적으로 조직이 운영될 수 있도록 했다. 15년 임기는 독임제(獨任制) 기관인 회계감사원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핵심적인 요소로 연방 감사원이 처음 설립된 1921년부터 현재까지 변함없이 지켜진 부분이다. 300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온 독일 연방회계검사원 원장의 임기는 12년이다. 프랑스는 감사원장 정년제를, 일본은 감사원장 임기 7년을 보장한다. (『독립성의 규범적 의미와 기능에 대한 연구』, 한국외국어대학교 산학협력단)
 
임기가 1년 4개월이나 남은 최재형 감사원장에 대한 흔들기가 여권에서 시작되고 있다. 국회에선 “지금 팔짱 끼고 답하느냐(윤호중 국회 법제사법위원장)”란 지적까지 나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감사원 활용법은 이랬다. “감사원장으로부터 정기적으로 보고를 받고 있는 게 사실이고 그때마다 성역없는 감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93년 6월 한국일보 인터뷰)”
 
강기헌 산업1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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