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설] “월세 전환 뭐가 나쁘냐”는 여당의 저급한 인식

중앙일보 2020.08.03 00:08 종합 30면 지면보기
‘임대차 3법’의 시행으로 전세의 월세 전환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에 윤준병 민주당 의원이 “뭐가 나쁘냐”는 식으로 말했다. 심지어 전세 소멸 걱정을 ‘개발시대의 의식 수준’으로 깎아내리기까지 했다. 정부·여당의 임대차 3법 졸속 처리를 통렬하고도 설득력 있게 비판한 윤희숙 통합당 의원의 국회 연설이 화제가 되자 이를 반박한 소셜미디어 글에서다.
 

전세 품귀 걱정하는 야당 의원에게 트집
현실 동떨어진 궤변으로 국민 조롱하나

한마디로 궤변이다. 국민 정서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물론 저금리 시대가 되면서 전세에서 월세로 바뀌는 흐름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기는 하다. 집주인에게는 일종의 무이자 금융 조달 방법으로 활용돼 온 전세의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집값이 계속 오르지 않는다면 전세 소멸 현상은 더 뚜렷해질 것이다. 그러나 전세 시장이 사라질 것이라는 객관적 예측과 이를 바람직한 것처럼 평가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전세 제도는 주택 구매자뿐 아니라 서민이나 세입자에게도 도움이 된다. 세금이나 유지 비용 등을 지불하지 않고도 집 구매보다 작은 부담으로 주거 수단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윤 의원은 전세금과 은행대출금이 금리 비용(이자)을 낸다는 점에서 다를 바 없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전세를 월세로 바꿀 때 적용되는 ‘전·월세 전환율’이 은행 전세대출금보다 훨씬 높다는 점을 간과한 단견이다. 현재 법정 전·월세 전환율은 4%지만, 현장에서는 6%대까지 적용되는 현실을 알고서 한 소리인지 의심스럽다. 윤 의원의 주장에 대해 그의 다주택 보유를 꼬집으며 “한 번이라도 월세 살아본 적이 있느냐”는 네티즌들의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여권이 강행한 임대차 3법은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선의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각종 부작용을 낳고 있다. 전세 물량이 사라지고 전셋값은 급등했다. 갑작스러운 시행으로 집주인과 세입자 간 혼란과 갈등도 커졌다. 이를 지적한 야당 의원이 관심을 끌자 여당은 자성은커녕 그 지적을 깎아내리는 데 여념이 없다. 박범계 의원은 “마치 평생 임차인으로 산 듯 이미지를 가공하는 것은 좀”이라며 해당 의원의 이미지 폄훼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이상한 억양’ ‘부라리는 눈’이라는 불필요한 표현으로 야당 전체를 공격하다 역풍을 맞았다.
 
전세 선호가 낡은 의식이라는 발상은 국민과의 공감 능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오만이다. 월세에서 전세로, 전세에서 내 집 마련이라는 순서로 차곡차곡 꿈을 키워 온 서민을 무시했다. 전세가 시대에 뒤떨어진 제도라면 이를 금지하는 법이라도 만들 셈인가. 정책에 문제가 있으면 보완하면 될 일이다. 설득력 있는 비판조차 경청할 생각은 하지 않고, 비판하는 상대부터 탓한다. 그러다 이젠 이해하지 못할 궤변으로 대다수 서민의 정서와도 맞섰다. 176석 의석이 빚어낸 거대 여당의 현주소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