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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차법 역설, 강남발 전세난민 부추긴다

중앙일보 2020.08.03 00:06 종합 1면 지면보기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지난달 31일 전격 시행되면서 전·월세 시장이 혼란에 빠졌다. 사진은 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아파트 단지의 모습. [뉴시스]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지난달 31일 전격 시행되면서 전·월세 시장이 혼란에 빠졌다. 사진은 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아파트 단지의 모습. [뉴시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아파트 전세를 사는 박모(48)씨는 최근 고민이 깊어졌다. 그는 2018년 12월 자녀 교육 문제로 서울 강북의 집을 전세로 주고 대치동으로 이사했다. 박씨가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이 도입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2년 더 안심하고 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집주인은 전세 계약이 끝나는 오는 12월에 직접 들어와 살겠다며 집을 비워 달라고 통보했다. 박씨는 “전세보증금을 5% 한도에 상관없이 올려주겠다고 했지만 집주인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며 “주변에 전세 매물은 씨가 말랐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강남3구 자기 집 사는 집주인 39%
법 시행 후 “들어가 살겠다” 늘어

강남권 물량 귀해지고 전셋값 올라
헬리오시티 같은동, 같은층이라도
계약시점 따라 전셋값 2배 될 수도

#지난달 13일 서울 성동구 옥수동에서 아파트 매입 계약서를 쓴 김모(43)씨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는 다음 달 말 잔금을 치르고 새집에 이사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 아파트에 살던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해 2년을 더 살겠다고 통보했다.
 
씨마른 전세, 자녀교육 위해 강남서 세사는 부모들 직격탄 
 
원래 집주인이 실거주 목적으로 집을 비워 달라고 하면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은 인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김씨는 소유권 등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아직 집주인이 아니다. 따라서 세입자를 내보내려면 집을 파는 사람의 양해를 얻어 미리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쳐야 하는 복잡한 문제가 생겼다. 김씨는 “직장에서 가까운 곳에서 출퇴근하기 위해 아파트를 사려던 것”이라며 “2년을 더 기다렸다가 이사하는 것은 너무 늦다”고 말했다.
 
서울 아파트 매매량, 전세

서울 아파트 매매량, 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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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월세 상한제(5% 이하)와 계약갱신청구권(2년+2년)을 규정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주택시장이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세계로 들어서고 있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산 사람이라면 절세 등을 위해 세입자를 내보내고 직접 들어가 살려는 유인이 커졌다.
 
특히 집주인이 1주택자라면 양도소득세를 아끼기 위해서라도 거주 기간을 늘리는 게 유리하다. 정부가 장기보유 특별공제를 적용해 양도세를 깎아줄 때 집주인의 거주 요건을 신설했기 때문이다. 재건축 아파트단지에서 조합원 분양 자격을 얻으려면 집주인이 2년 이상 실거주해야 한다는 요건도 생겼다. 부동산 정보업체 직방의 함영진 빅데이터랩장은 “전셋집을 비워줘야 하는 세입자의 일부가 주택 매수로 돌아서 집값을 자극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새로 전셋집을 구해야 하는 신혼부부의 전세난이 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동안 서울 강남권에선 자기 집에 사는 사람들의 비율은 낮고 전·월세를 사는 사람들의 비율은 높았다. 2017년 기준 서울시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의 자가 점유율은 38.6%였다. 서울시 전체 평균(42.8%)보다 낮았다.  
 
하지만 실거주를 내세운 집주인의 세입자 내보내기가 잇따르면 강남권에서 전세 물량은 더욱 귀해지고 전셋값도 오를 수 있다. 특히 자녀 교육 목적으로 강남권에서 전·월세로 사는 사람들의 부담이 커진다.
 
변세일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셋집 빼기가 연쇄적으로 일어나면 세입자가 주거 인기 지역에서 외곽으로 밀려나는 ‘전세 젠트리피케이션’(원주민 내몰림)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인기 지역의 매매·전셋값은 더 오르며 양극화가 심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아파트 단지에서 같은 동, 같은 층이라도 전셋값이 두 배로 비싼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특히 입주 2년을 맞아 전세 계약을 다시 해야 하는 단지들에서 전셋값 격차가 심하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의 헬리오시티는 2018년 말 입주를 시작했다. 당시 84㎡ 전셋값은 5억원까지 내려갔다. 이런 집의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면 집주인은 2500만원(인상률 5% 이하) 넘게 전셋값을 올리지 못한다. 올해 들어 거래된 같은 주택형의 전세보증금 최고액은 10억3000만원이었다.
 
분양가 상한제의 시행은 주택 수요자들이 선호하는 새 아파트 단지에서 전세 매물의 부족을 부추길 수 있다.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된 아파트에서 청약 당첨자는 최장 5년간 실거주할 의무가 있다. 이 기간 해당 아파트 단지에선 정상적인 전세 매물이 나올 수 없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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