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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정보경험 無' 박지원…美는 9·11 당한뒤 정보기관 싹바꿨다

중앙일보 2020.08.02 08:40
‘우리는 더 강력하고 더욱 안전한 국가를 위해 우리의 정보 공동체를 통합한다(WE UNIFY OUR INTELLIGENCE COMMUNITY TOWARD A STRONGER, SAFER NATION).’

국정원 개혁, 국내업무 축소 주력
정치 개입 금지는 시대적 요구지만
사이버·확산방지·방첩 등 대비해야
미, 2011년 9·11테러 당하고 경악
3년 걸려 정보기관 개혁방안 마련
모든 정보기관 총괄하는 DNI 신설
인사·예산 권한 부여해 실질 통솔
정보기관 통합, 소통 시너지 높이고
새로운 임무와 당면 과제에 대응
역량강화와 협력효과 확충할 필요

미국의 최고 정보기관으로 국가정보국장(DNI) 사무소의 홈페이지 대문에 적힌 문구다. 
 
미국 국가안보국장(DNI)의 로고를 이 기관이 담당하는 16개 정보담당 기관의 로고가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다. 관리 범위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DNI는 2011년 9.11 테러를 막지 못한 반성으로 3년 간의 준비 끝에 2004년 발족한 정보통합기관이다. 정보 역량을 강화하고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목적으로 이뤄진 미국 정보기관 개혁의 결과물이다. DNI 홈페이지

미국 국가안보국장(DNI)의 로고를 이 기관이 담당하는 16개 정보담당 기관의 로고가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다. 관리 범위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DNI는 2011년 9.11 테러를 막지 못한 반성으로 3년 간의 준비 끝에 2004년 발족한 정보통합기관이다. 정보 역량을 강화하고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목적으로 이뤄진 미국 정보기관 개혁의 결과물이다. DNI 홈페이지

국내외 17개 정보기관 통합 관리 

2004년 발족한 DNI는 중앙정보국(CIA), 연방수사국(FBI), 각 군 정보국 등 산하 16개 정보기관과 자신을 포함해 모두 17개 정보기관을 지휘·통솔한다. 홈페이지에는 이렇게 대문자로 적은 짧은 문구로 기관의 성격과 목적, 그리고 성립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목적을 ‘더 강력하고 더욱 안전한 국가’로 설정하고 방법을 (시너지 효과를 얻기 위한) ‘정보 공동체 통합’으로 설정하고 있다.  
 
미국 국가안보국(DNI) 홈페이지. 정보기관을 통합 관리하는 DNI를 설립한 이유와 기관의 임무를 밝히고 있다.‘우리는 더 강력하고 더욱 안전한 국가를 위해 우리의 정보 공동체를 통합한다(WE UNIFY OUR INTELLIGENCE COMMUNITY TOWARD A STRONGER, SAFER NATION)는 내용이 선명하게 적혀 있다. 이 조직의 설립 이유이자 미국 정보기관 개혁의 목표다. DNI 홈페이지

미국 국가안보국(DNI) 홈페이지. 정보기관을 통합 관리하는 DNI를 설립한 이유와 기관의 임무를 밝히고 있다.‘우리는 더 강력하고 더욱 안전한 국가를 위해 우리의 정보 공동체를 통합한다(WE UNIFY OUR INTELLIGENCE COMMUNITY TOWARD A STRONGER, SAFER NATION)는 내용이 선명하게 적혀 있다. 이 조직의 설립 이유이자 미국 정보기관 개혁의 목표다. DNI 홈페이지

미 DNI, 정보기관 개혁으로 2004년 발족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들을 통합적으로 이끄는 미국의 DNI를 살펴본 이유는 2004년 발족한 이 기관이 미국 정보기관 개혁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마침 한국도 정보기관 개혁을 시동했다. 사실 2020년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정보’라는 단어가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키워드’였다. 이를 둘러싼 큼직한 일이 세 차례 발생했다. 첫째가 지난 7월 3일 문재인 대통령이 박지원 전 의원을 국정원장에 내정한 일이다. 4선의원 출신인 박 의원은 2000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최고지도자와의 남북정상회담 당시 막후 조정을 맡았다. 정보기관이나 군에서 정보 관련 업무를 직접 다뤄본 적은 없다. 둘째가 지난 7월 18일 발생해 여드레 뒤 북한 측 발표로 비로소 파악된 탈북민의 강화도 월북 사건이다. 탈북민의 월북과 관련한 정보가 사전에 수집되지도, 분석되지도, 공유되지도 않아 허를 찔렸다. 셋째가 지난 7월 30일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국가정보원 개혁 방안을 결정한 일이다. 정보 업무와 관련한 미국의 고민과 해법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정보기관 개혁을 살펴보고 벤치마킹할 이유다.    
지난 2018년 2월 13일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의 ‘전 세계 위협’에 관한 청문회에 출석한 크리스토퍼 레이 연방수사국(FBI) 국장,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 로버트 애슐리 국방정보국(DIA) 국장, 마이크 로저스 국가안보국(NSA) 국장, 로버트 카딜로 국가지리정보국(NGIA) 국장(앞줄 왼쪽부터). 코츠 국장은 ’북한은 2018년에 더 많은 미사일 실험을 강행할 것 같다“며 ’북한 지도자들은 협상으로 그것(핵무기)을 없앨 의도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김정은은 핵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한·미 동맹을 끝장내 한반도를 지배하는 전략적 야욕 달성의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며 ’북핵 위협에 어떻게 대응할지 결정할 시간이 어느 때보다 가까워지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ㅗ츠 DNI 국장은 대북 정보 평가에 대한 이견으로 2019년 7월 해고됐다. AFP=연합뉴스

지난 2018년 2월 13일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의 ‘전 세계 위협’에 관한 청문회에 출석한 크리스토퍼 레이 연방수사국(FBI) 국장,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 로버트 애슐리 국방정보국(DIA) 국장, 마이크 로저스 국가안보국(NSA) 국장, 로버트 카딜로 국가지리정보국(NGIA) 국장(앞줄 왼쪽부터). 코츠 국장은 ’북한은 2018년에 더 많은 미사일 실험을 강행할 것 같다“며 ’북한 지도자들은 협상으로 그것(핵무기)을 없앨 의도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김정은은 핵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한·미 동맹을 끝장내 한반도를 지배하는 전략적 야욕 달성의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며 ’북핵 위협에 어떻게 대응할지 결정할 시간이 어느 때보다 가까워지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ㅗ츠 DNI 국장은 대북 정보 평가에 대한 이견으로 2019년 7월 해고됐다. AFP=연합뉴스

 

'정보 통합 주도해 최고의 정보 제공' 

DNI 홈페이지 대문의 아랫부분에는 ‘우리의 임무는 정보 통합을 주도하고 정보 공동체를 선도해 가능한 가장 통찰력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Our mission is to lead intelligence integration and forge an intelligence community that delivers the most insightful intelligence possible)’라고 적혀있다. 맡은 임무를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도 정확하게 밝혔다.  
구체적인 업무 대상으로 대테러임무(COUNTERTERRORISM), 사이버위협(CYBER THREATS),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COUNTERPROLIFERATION), 방첩 및 보안(CI & SECURITY)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이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국내외에서 정보수집과 판단, 조치, 보고, 작전, 공작을 벌인다. 국내외의 구분도, 수단과 방법의 구분도 없다. 모든 정보 업무는 오로지 ‘더 강하고 더욱 안전한 국가’라는 목적에 수렴된다.      
911테러 당시 미국 뉴욕의 월드트레이드센터에 두번 째 여객기가 돌진하는 장면. 당시 모사드는 테러 관련 정보를 사전에 입수해 미국에 전달했으나 미국은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정보실패'로 이어졌다. [중앙포토]

911테러 당시 미국 뉴욕의 월드트레이드센터에 두번 째 여객기가 돌진하는 장면. 당시 모사드는 테러 관련 정보를 사전에 입수해 미국에 전달했으나 미국은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정보실패'로 이어졌다. [중앙포토]

 

9·11로 충격받자 정보기관 개혁 

주목할 점은 DNI가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에서 대대적으로 벌어진 정보기관 개혁의 대표적인 결과물이라는 사실이다. 9·11테러를 당한 미국은 대체로 다섯 가지 점에서 경악했다. 첫째, 미국 본토가 공격당했다는 사실이다. 둘째, 그 공격이 국가도 아닌 비국가 조직인 알카에다가 주도했다는 점이다. 셋째, 미국이 거대한 정보기관과 보안 조직을 운영하고 있음에도 이런 대규모 테러를 제대로 막지 못하고 허를 찔렸다는 사실이다. 넷째, 사실은 미국의 일부 정보기관이 테러 조짐 관련 정보를 사전에 입수했음에도 이를 제대로 판단하거나 공유하지 못해 비극을 막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다섯째, 미국의 거대한 정보기관들이 자기부서 우월주의와 비밀주의에 빠져 다른 조직과 서로 협력하지 않아 그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도 제대로 시너지 효과를 얻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정보기관 개혁은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개혁 작업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더 강하고 더욱 안전한 국가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국가 기능을 위한 것이다. 당연히 미국 정보기관의 정보 수집과 분석, 판단 능력의 향상과 이를 기반으로 하는 즉각적인 안보·보안 분야 대응력의 강화가 목표가 됐다.  
2017년 6월 한국을 방문한 제임스 클래퍼 당시 미국 국가정보국장.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시 자리를 맡아 6년 5개월간 재임하며 조직을 강화했다. 공군 중장 출신의 클래퍼는 군과 행정부의 정보기관에서 굵직한 자리를 맡았던 정보 분야 베테랑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런 전문가에게 업무를 맡긴 뒤 그를 믿고 장기간 기용했다. 김경빈 기자

2017년 6월 한국을 방문한 제임스 클래퍼 당시 미국 국가정보국장.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시 자리를 맡아 6년 5개월간 재임하며 조직을 강화했다. 공군 중장 출신의 클래퍼는 군과 행정부의 정보기관에서 굵직한 자리를 맡았던 정보 분야 베테랑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런 전문가에게 업무를 맡긴 뒤 그를 믿고 장기간 기용했다. 김경빈 기자

 

3년간 공들여 정보기관개혁 법안 마련 

미국은 국가적인 정보 역량을 강화해 제2의 9·11테러를 막기 위한 정책적·제도적 방안을 마련하는 데 3년의 시간을 들였다. 근본적인 개혁 방안 마련을 위한 투자였다. 이를 위해 초당적인 의견 수렴과 토론, 표결 과정을 거쳤다. 국민의 안전과 국가의 보존을 위한 정보기관 강화 방안은 집권당과 야당의 목소리가 모두 들어갔다. 미국 의회는 ‘2004년 정보 개혁과 테러 방지 법(Intelligence Reform and Terrorism Prevention Act of 2004)’을 통과해 정보기관을 대대적으로 개혁했다. 서두르지 않고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해결책을 정밀하게 실현할 수 있도록 차분하고 신중하게 법안을 마련했다.
2019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대비한 '국가 대테러 종합훈련'이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야외 주차장에서 육군 특수전사령부 707특수임무단 대원들이 인질 구출을 위한 헬기레펠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훈련은 정상회의를 앞두고 동시다발 테러상황에 대한 대응능력을 점검하기 위해 마련됐으며, 중앙정부와 부산시가 합동으로 주관해 국가정보원, 국방부, 해양경찰청 등 9개 기관 500여 명이 참가했다. 송봉근 기자

2019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대비한 '국가 대테러 종합훈련'이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야외 주차장에서 육군 특수전사령부 707특수임무단 대원들이 인질 구출을 위한 헬기레펠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훈련은 정상회의를 앞두고 동시다발 테러상황에 대한 대응능력을 점검하기 위해 마련됐으며, 중앙정부와 부산시가 합동으로 주관해 국가정보원, 국방부, 해양경찰청 등 9개 기관 500여 명이 참가했다. 송봉근 기자

 

DNI에 인사·예산권 부여해 소통 총괄

미국의 정보기관 개혁 결과는 놀라웠다. 이 법은 장관급의 국가정보국장(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DNI) 자리를 설치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전까지는 CIA 국장이 사실상 미국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임무를 맡았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업무의 대부분이 CIA 통솔과 지휘였고 조직 간의 벽을 넘어 전체 정보 공동체를 파악하고 통솔해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이런 한계가 9·11테러를 허용하는 허점이 됐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 때문에 전체 정보기관을 전담하는 DNI를 신설한 것이다. 이 법에 따르면 DNI의 임무는 미국 정보 공동체의 17개 기관(DNI도 포함)의 최고 책임자를 맡고, 국가 정보 프로그램을 지휘·감독하는 일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DNI에 모든 정보기관의 예산과 인사 총괄 권한을 부여한 점이다. 이를 통해 실질적인 통솔이 가능해지다. 물론 각 정보기관의 정보활동을 각자 벌인다. 각 정보기관의 작전권과 지휘권까지 DNI에 넘기지는 않았다. 각 정보기관은 자율적으로 운영하되 DNI는 정보를 통합해 정보기관 간 소통, 대테러 대책센터 역할을 총괄한다.  

 
존 레트클리프 DNI 국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과 백악관 집무실에서 함께 찍은 사진. 레트클리프는 트럼프의 강력한 지지자로 알려졌다. [래트클리프 의원 트위터]

존 레트클리프 DNI 국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과 백악관 집무실에서 함께 찍은 사진. 레트클리프는 트럼프의 강력한 지지자로 알려졌다. [래트클리프 의원 트위터]

대통령에게 아침마다 일일 정보보고 

여기에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국토안보위원회(HSC)의 정보와 국가안보 관련 고문 역할을 한다. DNI 국장은 모든 정보기관에서 수집하고 분석한 정보를 바탕으로 ‘대통령 일일 보고서(PDB)’를 작성해 매일 아침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PDB는 대통령과 대통령이 승인한 인물만 열람할 수 있는 1급 비밀문서다. DNI는 대통령과 미국 최고 의사 결정권자와 보좌관들에게 직접 정보를 제공하는 임무를 맡은 셈이다. 결국 미국은 정보기관 개혁으로 기관들을 통합해 정보수집 역량을 강화하고 거기서 확보한 정보로 대통령의 국정을 보좌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명칭이 바뀔 국가정보원의 본원 모습. 당정청은 지난 7월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민을 위한 권력기관 개혁 당정청 협의'를 열고 국가정보원을 대외안보정보원으로 개칭하고, 직무 범위에서 국내정보 및 대공수사권을 제외하는 등 추가 개혁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뉴스1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명칭이 바뀔 국가정보원의 본원 모습. 당정청은 지난 7월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민을 위한 권력기관 개혁 당정청 협의'를 열고 국가정보원을 대외안보정보원으로 개칭하고, 직무 범위에서 국내정보 및 대공수사권을 제외하는 등 추가 개혁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뉴스1

 

국정원 자체 개혁 이어 제도적 개혁까지

한국의 상황을 보자 지난 7월 30일 열린 고위 당·정·청 협의회는 국가정보원의 명칭을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바꾸고 역할을 해외·북한의 안보정보 수집에 집중하며 국내 활동을 차단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당·정·청은 앞으로 법률 개정을 통해 국정원 직무 범위에서 ‘국내정보 및 대공수사권’을 삭제하고, 국회 정보위·감사원의 외부통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국내정치 참여를 더욱 엄격히 제한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감찰실장 직위를 외부에 개방하고, 집행통제 심의위원회를 운영하는 등 국정원 통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직원이 정치 관여를 비롯한 불법 행위를 할 경우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박지원 국정원장이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권력기관 개혁 당정청 협의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박지원 국정원장이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권력기관 개혁 당정청 협의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이번 조치는 문재인 정부의 정보기관 개혁 2탄에 해당한다. 1탄은 국정원의 자발적인 조치에 초점을 맞췄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직후 관련법 개정 없이 국정원이 국내 각 기관에 파견한 국내정보 담당관(IO·Intelligence Officer)을 모두 철수하고 국내정보 부서를 폐지하는 조치를 자체적으로 취한 조치다. 핵심은 국내정치 불개입에 맞췄다. 문 대통령은 2018년 7월 20일 국정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국정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정권에 충성할 것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당시는 물론 2019년에도 국정원의 자체 개혁에 대해 후한 점수를 줬지만 이번에 제도적인 개혁까지 추가한 것이다.    
신임 통일부 장관, 국가정보원장 및 경찰청장 임명장 수여식이 7월 29일 청와대에서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박지원 국정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함께 온 손자 주현군에게 선물을 주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중앙일보 김성룡 기자

신임 통일부 장관, 국가정보원장 및 경찰청장 임명장 수여식이 7월 29일 청와대에서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박지원 국정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함께 온 손자 주현군에게 선물을 주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중앙일보 김성룡 기자

 

정보업무 경험 없는 대북 밀사 박지원 

문재인 대통령은 7월 3일 신임 국가정보원장에 4선 의원 출신으로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밀사 역할을 했던 박지원(78) 전 의원을 내정했다. 박 전 의원은 현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국민회의에서 2015년 2월 8일 문재인 의원이 대표를 맡을 당시 안철수 세력, 동교동계 호남세력과 함께 탈당하고 2016년 국민의당 소속으로 목포에서 당선했다. 올해 4월 15일 총선에서는 민생당 소속으로 목포에서 출마해 낙선했다. 문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동지는커녕 사실상 등진 인물인 박 의원을 정보기관 수장에 지명한 것은 그의 대북 인맥과 경험이 아직도 유효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박 전 의원은 학력 위조설과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대북송금 관련 이면합의설 등 숱한 의혹 속에서 7월 27일 열린 인사 청문회를 통과하고 28일 문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29일 임기를 시작했다. 국정원 공채 출신으로 문재인 정권의 초대 국정 원장을 맡았던 서훈(56) 원장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의 후임을 맡았다.  
탈북민 김모씨의 월북 통로로 추정되는 강화군 월곶리 인근 배수로의 내부 모습. 군 당국은 김씨가 배수로 내 쇠창살 형태의 철근 구조물과 철조망을 통과한 뒤 월북한 것으로 추정한다. 뉴스1

탈북민 김모씨의 월북 통로로 추정되는 강화군 월곶리 인근 배수로의 내부 모습. 군 당국은 김씨가 배수로 내 쇠창살 형태의 철근 구조물과 철조망을 통과한 뒤 월북한 것으로 추정한다. 뉴스1

 

탈북민 월북 정보 말단에서 묵살됐나  

지난 7월 18일 탈북민 김모씨는 오전 2시 18분쯤 택시를 타고 강화도 연미정 인근에 도착했으며 인근 철책선 아래 배수로를 지나 74분에 걸쳐 약 2㎞ 거리의 한강을 헤엄쳐 건너 북한으로 넘어갔다. ‘개성 아낙’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탈북민 유튜버 A씨는 김씨가 자신의 차량을 빌려 간 뒤 돌려주지 않는다고 18일 4차례 112에 신고했으며 이 과정에서 탈북 가능성을 알렸으나 무시당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19일 오전 1시 1분에 신변보호 담당 경찰에게도 ‘달러를 바꿨다고 하네요. 어제 달러를 가지고 북한에 넘어가면 좋겠다면서 교동도를 갔었다네요’라는 메시지를 보내 월북 가능성을 알렸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차량과 관련해 A씨가 4차례 112 신고할 당시에는 월북과 관련한 내용은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탈북자의 월북 관련 정보가 제대로 인식되지도, 판단되지도, 공유되지도 않고 말단 조직에서 무시됐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미국 국토안보부 산하 CISA 홈페이지에 게시된 보안 위험 대처법

미국 국토안보부 산하 CISA 홈페이지에 게시된 보안 위험 대처법

 

시대 흐름 맞춰 정보기관 새로운 역할

문재인 정부와 거대 여당의 정보기관 개혁은 국정원의 국내 정보 수집기능과 정치적 역할 배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정원에서 대공수사 기능을 분리해 경찰에 넘기는 방안도 포함됐다. 기능 통합 대신 분할, 조직 강화 대신 분리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를 통해 국정원의 힘을 빼는 것이 핵심으로 보인다. 현 정부와 집권당이 오랫동안 추구했던 내용이다. 
톰 보서트 미국 백악관 국토안보보좌관(오른쪽)과 지나테 맨프라 국토안보부 부차관이 지난 2017년 12월 19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워너크라이’ 사이버 공격의 배후가 북한이라고 발표하고 있다. 사이버 공격은 새로운 아노 위협이 되고 있다.[로이터]

톰 보서트 미국 백악관 국토안보보좌관(오른쪽)과 지나테 맨프라 국토안보부 부차관이 지난 2017년 12월 19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워너크라이’ 사이버 공격의 배후가 북한이라고 발표하고 있다. 사이버 공격은 새로운 아노 위협이 되고 있다.[로이터]

문제는 시대 변화에 따라 국가정보기관에 새로운 역할이 요구되고 있으며 그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보사회를 위협하고 산업과 안보 정보를 빼가는 사이버 위협이나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포함한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방지, 다양한 종류의 스파이를 색출하고 정보를 보호하는 방첩 및 보안 업무, 그리고 국가를 공격하는 집단을 막는 대테러 임무가 그것이다. 그 기능을 강화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은 정부의 임무다. 변화하는 안보 환경에 맞춰 정보기관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정보역량을 강화해 더 강하고 안전한 국가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과거의 잘못을 고치는 것만큼 미래를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미·중 무역 전쟁과 정보전쟁, 지식재산권 전쟁의 파고가 높아지는 가운데 한국의 정보기관이 21세기에 당면한 엄중한 현실이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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