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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판 코로나 차별…동성애자라 '혈장 기증' 거부당한 이들

중앙일보 2020.08.01 05:00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을 이겨낸 미국 유명 TV 진행자가 혈장을 기증하려 했으나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지난 3월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음을 알리는 글을 올린 미국 케이블 채널 브라보TV 부사장이자 토크쇼 진행자인 앤디 코헨. [인스타그램 캡쳐]

지난 3월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음을 알리는 글을 올린 미국 케이블 채널 브라보TV 부사장이자 토크쇼 진행자인 앤디 코헨. [인스타그램 캡쳐]

 
지난달 29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미국 케이블 채널 브라보TV의 부사장이자 토크쇼 진행자인 앤디 코헨은 지난 3월 코로나 19에 감염됐다. 그 뒤 코로나 19를 이겨낸 그는 4월 코로나를 이겨낸 사람들의 혈장(혈액에서 적혈구·백혈구·혈소판 등을 제외한 액체)이 긴급히 필요하다는 뉴욕 마운트 시나이 병원 공지를 보고 혈장 기증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코로나 감염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완치자의 혈장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완치자의 항체를 환자에게 수혈하면 코로나를 이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려는 마음에 기증을 신청한 코헨은 건강한 코로나 항체를 갖고 있다는 판정까지 받았지만 결국 혈장을 기부할 수 없었다.
 
코로나를 이길 혈장이 있음에도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혈장 기증을 거부당하는 사례가 나왔다. [AP=연합뉴스]

코로나를 이길 혈장이 있음에도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혈장 기증을 거부당하는 사례가 나왔다. [AP=연합뉴스]

병원이 코헨의 혈장 기증을 거부한 것은 그가 동성애자이기 때문이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를 예방하기 위해 최근 3개월간 다른 남성과 성관계를 한 남성이 혈액·혈장을 기증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코헨은 "이들은 내 혈액 속에 HIV가 있을까 봐 걱정했다"면서 "하지만 나는 HIV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를 이겨낸 강력한 항체를 갖고 있지만 (이성애자들처럼) 바로 혈장을 기증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없었다"며 "좌절감이 든다"고 덧붙였다.
 
앤디 코헨(맨 왼쪽)은 자신의 이름을 단 TV 쇼를 진행하고 있다. [트위터 캡쳐]

앤디 코헨(맨 왼쪽)은 자신의 이름을 단 TV 쇼를 진행하고 있다. [트위터 캡쳐]

미국서 헌혈 줄며 동성애자 헌혈 규정 완화 

 
코헨의 사례처럼 동성애자가 코로나에 걸린 환자를 돕고 싶어도 도와줄 수 없는 이유는 미국의 동성애자 헌혈 규정 때문이다. 
 
뉴욕 혈액 센터에 기증된 혈장의 모습. 혈장은 약간 담황색을 띤다. [AP=연합뉴스]

뉴욕 혈액 센터에 기증된 혈장의 모습. 혈장은 약간 담황색을 띤다. [AP=연합뉴스]

CNN은 "미국에서 동성애자 남성들은 1980년대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이 퍼지던 초기에 시행된 규정 때문에 헌혈·혈장 기증을 거부당했다"면서 "이는 에이즈가 게이 남성들에 의해 옮겨진 병이라고 가정했기 때문이었다"고 보도했다.
 
과거 동성애자·양성애자 헌혈을 금지했던 미국은 지난 2015년부터 1년간 다른 남성과 성관계를 하지 않았을 경우 헌혈을 허용했다. 그러다가 올해 코로나 19가 만연하면서 헌혈자가 급속하게 줄어들자 동성애자의 헌혈 규정을 또 한 번 완화했다.
 
FDA는 지난 4월 코로나 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한 ‘긴급하고 즉각적인 혈액 필요’에 대응해 금지 기간을 12개월에서 3개월로 완화했다.
 
미국에서는 코로나가 7개월 넘게 장기화하면서 혈액·혈장 확보를 위해서라도 동성애자 헌혈 규정을 보다 완화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미국에서 성소수자 인권 단체가 FDA에 헌혈을 하고 싶어하지만 규정 때문에 헌혈을 못하는 수백만명이 있다는 글을 올렸다. [트위터 캡쳐 ]

미국에서 성소수자 인권 단체가 FDA에 헌혈을 하고 싶어하지만 규정 때문에 헌혈을 못하는 수백만명이 있다는 글을 올렸다. [트위터 캡쳐 ]

 
미국 ABC방송에 따르면 최근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 17명은 FDA에 서한을 보내 "편견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헌혈 제한 조건을 수정해달라고 요구했다. 미국 성 소수자 인권단체도 남성 성 소수자 헌혈 규제를 없애면 약 28만 2000L의 추가 헌혈이 이뤄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가마다 동성애자 헌혈 규정은 다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동성애자 헌혈을 전면 금지하는 국가(말레이시아·싱가포르 등)와 일정 기준을 만족하면 허용하는 국가(미국·호주·캐나다·한국 등), 제한이 없는 국가(이탈리아 등)로 나뉜다.
 
TV쇼 진행자이자 동성애자임을 밝힌 앤디 코헨은 코로나19에 걸렸다 완치돼 혈장을 기증할 수 있지만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바로 기증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좌절감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AP=연합뉴스]

TV쇼 진행자이자 동성애자임을 밝힌 앤디 코헨은 코로나19에 걸렸다 완치돼 혈장을 기증할 수 있지만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바로 기증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좌절감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AP=연합뉴스]

 
서유진 기자·김지혜 리서처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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